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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 ‘조현병=위험 인물’ 편견에 취업 번번이 퇴짜

입력
2019.04.09 04:40
수정
2019.04.09 08:49
12면

 <27>취업길 막힌 중증 정신질환자들 

 ※ 대부분의 사람은 적어도 한 두 가지 측면에서는 소수자입니다. 자신의 불편은 크게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의 소수자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냉소적인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화요일 한국 사회에서 유독 힘들게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모습을 들여다 봅니다.

조울증으로 어려웠던 시기를 극복한 장우석(43)씨가 지난해 서울 양천구의 한 대형서점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책 ‘당신은 아파했던 만큼 행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출간 기념 강연을 하고 있다. 과거 2년간 조울증을 앓다 극복한 뒤 현재 사회복지사로 활동 중인 장씨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질병 속에 머물지 말고 취업을 통해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우석씨 제공
조울증으로 어려웠던 시기를 극복한 장우석(43)씨가 지난해 서울 양천구의 한 대형서점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책 ‘당신은 아파했던 만큼 행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출간 기념 강연을 하고 있다. 과거 2년간 조울증을 앓다 극복한 뒤 현재 사회복지사로 활동 중인 장씨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질병 속에 머물지 말고 취업을 통해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우석씨 제공

5년 전 조현병 진단을 받은 대전의 강성희(가명ㆍ49)씨는 지난해 중순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다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대전의 한 교육기관에서 수업을 받던 중 조현병 환자라는 사실을 알렸다가 자격증 시험 응시를 거부당한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강씨가 충분히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소견서를 써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강씨는 “간호가 적성에 맞고, 실습성적도 좋았다”며 낙망했던 심정을 전했다.

강씨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병범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부회장은 “교육기관을 관할하는 대전시 담당부처가 ‘불가’ 의견을 냈기 때문”이라면서 “노인복지법에 전문의 판단을 따르라고 해놓고는 행정기관이 마음대로 거부하니 의사도 황당해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중증 정신질환자는 요양보호사의 결격사유지만 전문의가 요양보호사로 적합하다고 인정한 사람은 예외가 인정된다. 강씨는 올해 들어 전문의가 조현병이 아닌 산후우울증이라고 진단을 내리면서 가까스로 시험 응시자격을 얻었지만 “아직도 지난해엔 왜 시험을 못 치게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털어놨다.

 

[저작권 한국일보]지난해 주요 장애유형별 취업자수와 고용률. 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지난해 주요 장애유형별 취업자수와 고용률. 신동준 기자

 ◇잠재적 범죄자란 편견에 눈물 

중증 정신질환자들에게 취업은 발병 이후 인간다운 삶의 회복을 위한 필수 절차다. 조현병ㆍ조울증ㆍ우울증 환자들은 발병 이후 치료 과정에서 사회적 편견에 부딪히는데 이때 자신감을 잃고 집에 틀어박히기 쉽다. 치료를 멀리하다 결국 입ㆍ퇴원을 반복하는 만성기에 접어들고 사회로 복귀할 힘을 잃는 경우가 흔하다. 2014년 기준 등록 정신장애인의 56%가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현실에서 취업은 이런 악순환을 자연스럽게 끊을 수 있는 수단이다.

조울증을 극복한 뒤 최근 8년간 정신질환자들을 돕는 사회복지사로 일해온 장우석(43)씨 역시 환자들에게 취업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장씨는 20대에 발병해 2년간 병원에 입원했지만 노래방 직원, 태권도 사범 등 여러 직업에 꾸준히 도전하면서 30대엔 대학에 진학해 사회복지사의 꿈을 이뤘다. 그는 “일이 없으면 또래집단에서 소외되고 사회에서 고립되면서 치료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라면서 “취업은 질병 속에 머물지 않고 삶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신질환자=위험인물’이라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중증 정신질환자들에게 취업의 장벽은 높다. 조현병 환자의 경우 강력범죄자 중 조현병 환자 비율은 0.7%에 불과, 평생 유병률로 추정한 조현병 환자(25만명)의 0.1% 수준이다. 하지만 취업문은 좁은문이다. 치료를 받아서 겉보기에는 병력을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취업이 어렵다. 실제로 정신질환자의 취업률은 신체 장애인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실태조사’(2016),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2018) 등에 따르면 전국의 중증 정신질환자는 39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법적 장애인으로 등록된 정신장애인은 10만1,148명인데 이들의 고용률(15세 이상)은 전체 장애인(35%) 평균보다 크게 낮은 12%다. 경제활동참가율 역시 20%로 전체 평균(47%)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제작=김민호 기자, 게티이미지뱅크
제작=김민호 기자, 게티이미지뱅크

사회복지사들은 2016년 정신질환을 부각한 ‘강남역 살인사건’ 보도가 정신질환자 취업에 직격탄을 날렸다고 입을 모은다. 정신질환자 자립지원시설인 서초열린세상의 사회복지사 문경진씨는 “장애인고용공단을 어렵게 설득한 결과, 한 업체가 정신질환자들을 대거 채용하기로 했지만 사건 이후 사업을 연기하다 취소했다”면서 “사무보조로 일하던 정신질환자를 외근업무로 돌리는 업체도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들은, 정신장애인은 사회생활에서 감정표현과 대인관계를 어려워 해 스스로 불안해할 뿐 범죄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설명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장애인고용공단의 취업 알선에서도 뒷전이라고 정신질환자들은 자조하곤 한다. 경남지역에 거주하는 조울증 환자인 김석환(가명ㆍ31)씨는 지난해 가까스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지역 장애인고용공단에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전화를 했다가 상처만 받았다. 상담사가“손이나 발이 아픈 장애인과 달리 정신장애인은 기업들이 기피한다”고 답했기 때문. 김씨는 “장애인 고용을 돕는 공공기관마저 정신질환자에겐 살갑지 않아 마음이 쓰렸다”고 토로했다.

올해 초 의정부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는 3년 전에 진료를 받았던 우울증 환자가 다시 찾아와‘이상이 없다’는 소견서 발급을 요청하기도 했다. 회사 상사와의 면담에서 과거 병력을 이야기했다가 “당신이 지금은 정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문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고용공단이 알선해 취업에 성공한 비율은 정신장애인(31%)이 전체 장애인 평균(42%)보다 10%포인트 낮았다.

[저작권 한국일보]정신질환자 규모 추정치. 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정신질환자 규모 추정치. 신동준 기자.

 ◇정신장애인 취업 막는 제도도 여전 

정신질환자를 터부시하는 사회적 편견이 반영된 법과 제도도 취업의 걸림돌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4월 노인복지법(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업법(사회복지사)등 27개 법률이 정신장애인의 자격ㆍ면허 취득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결격조항을 폐지하거나 완화하라고 국무총리에게 권고했다. 정신질환은 치료가 가능하고, 환자마다 경중도 다른데 일률적으로 자격 취득을 막는 것은 문제란 이야기였다.‘전문의 판단’을 따르도록 한 일부 법률마저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인권위는 지적했다.

인권위 권고 후 1년여가 지났지만, 인권위는 권고가 제대로 이행됐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국무조정실이 관계 부처와 협의해 이행계획을 인권위에 제출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다. 인권위가 추가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국조실은 아직도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 현재 개별법이 어떻게 개정됐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이와 관련, 국조실 관계자는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면서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정신질환자의 정의가 ‘망상이나 환청 등으로 일상생활에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으로 축소됐다”면서 “실제로 권리를 제한당하는 환자의 수가 10분의 1정도로 줄어들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개정이 필요한 일부 법은 담당 부처별로 입법논의가 진행 중이어서 인권위에 내용을 공개하지 못한 것”이라며 “연내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신질환자 당사자들은 정부가 규제 폐지에 미온적이라고 주장한다. 정신질환자를 결격사유에 포함시킨 이유, 즉 정신질환자가 정말 위험한지 또는 왜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계속 차별적 제도에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면 피해는 계속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인권위 지적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아직 사회적 공감대와는 거리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작=김민호 기자, 게티이미지뱅크
제작=김민호 기자, 게티이미지뱅크

 ◇조금만 도와주면 문제없어요 

여기에 정신ㆍ신체적 기능이 떨어지는 정신질환자들은 스스로도 취업을 주저하는 상황이다. 정신장애인은 스스로 장애로 인해 경제활동에 참여하기 어렵다고 인식하는 비율이 다른 장애 유형보다 매우 높다. 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정신질환자가 직장을 구하지 않은 주된 이유는 장애로 인한 업무수행의 어려움(72.5%)이 가장 많았다. 전체장애인 평균(40.5%)보다 30%포인트나 높다. 23세 때부터 조현병을 앓아온 박민준(가명ㆍ39)씨는 “장애인단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 기업에 취업하면 복용약을 숨겨야 하는 등 정신적 스트레스가 크다”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질병 관리가 어려우니 취업을 유지하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들이 직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를들면 현재 정신질환자 취업을 연계하는 장애인고용공단의 경우 활동이 ‘취업알선’에만 집중돼 있는데, 이에 탈피할 수 있는 대안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치료를 잘 받은 환자를 다른 환자를 상담해주는 동료지원가로 양성하거나, 사회복지사를 이들 환자들의 직무지도원으로 활용하는 방식들이 거론된다.

복지부도 국가 표준교육훈련 과정을 만들어 동료지원가를 양성하고 정신의료기관 등에서도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직무지도원으로 지적장애인의 콜센터 업무를 돕고 있는 장우석씨는 “매일 함께 출근해 업무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듣고 해결책을 조언해준다”면서 “특히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조율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라고 설명했다.

정신질환자 당사자들 역시 직장에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더라도누군가 작은 조언만 해주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2012년부터 경북의 한 신문사에서 사무보조로 일하고 있는 조현병 환자 박민영(가명ㆍ44)씨는 “힘들 때 정신재활센터 소장님이나 평소 진료받던 의사선생님에게 전화해 털어놓으면 바로 진정이 된다”라며 “고등학교 때부터 병의 증상이 나타나서 사회훈련을 제대로 못했지만 회사에서 배려해 준 덕분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가끔 화를 많이 내는 환자도 있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착하고 약을 먹으면 사고도 치지 않는다”면서 “주변에서 정신질환자를 봐도 무섭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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