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250개 한달간 이 잡듯 뒤지자... 딱 걸린 뺑소니 ‘외눈박이 SUV’

입력
2019.03.28 16:18
수정
2019.03.28 19:01
11면
지난달 24일 서울 청담동 도산대로에서 검정색 SUV차량이 사람을 친 뒤 달아나는 장면. 경찰은 이 차량의 왼쪽 안개등이 고장난 것을 단서로, 한 달 간 추적 끝에 운전자를 검거했다. 강남경찰서 제공
지난달 24일 서울 청담동 도산대로에서 검정색 SUV차량이 사람을 친 뒤 달아나는 장면. 경찰은 이 차량의 왼쪽 안개등이 고장난 것을 단서로, 한 달 간 추적 끝에 운전자를 검거했다. 강남경찰서 제공

지난달 24일 새벽 4시 15분. 서울 청담동 도산대로를 달리던 검정색 스포츠유틸리티자동차(SUV) 한 대가 ‘쿵’ 소리와 함께 잠깐 휘청댔다. 지나가던 A(25)씨가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잠시 주춤하던 이 차량은 오히려 굉음을 뿜으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학동사거리에서 언주로 방향으로 우회전한 뒤론 속도를 더 높였다. 신호등 5개를 무시해가며 달아나더니 성수대교를 건너 동부간선도로로 진입, 간선도로의 차량 흐름 속으로 숨어들었다.

A씨는 팔, 다리 등에 골절상을 입어 전치 16주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고 차량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남은 건 주변의 폐쇄회로(CC)TV, 그리고 사고 당시 현장 주변 차량들에게 협조를 구한 차량용 블랙박스 화면 몇 개뿐. 반복해서 돌려보며 열심히 추적했으나 깊은 새벽이라 화질이 좋지 않았다. 번호판 확인에 실패하면서 뺑소니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는 듯 했다.

그 때 CCTV 화면을 유심히 들여다 보던 한 경찰관 눈에 사고 차량의 조금 다른 점이 띄었다. 차량 정면 하단 좌우에 설치된 안개등 중 왼쪽이 고장 났던 것. 사고 현장 CCTV를 시작점으로, 이 ‘외눈박이 SUV’를 찾기 시작했다.

단서는 오직 하나, ‘안개등 하나 고장 난 검정색 SUV’ 뿐이었다. 차량이 동부간선도로로 흘러 들어간 것까진 CCTV를 통해 확인했으니, 이제 이 외눈박이 SUV가 어디로 흘러갔는지 찾아야 했다. 편도 6차선 규모인 동부간선도로는 총 길이가 32.5㎞에 이르는 데다 설치된 CCTV도 거의 없었다. 동트기 전 새벽 시간임에도 차량이 많아서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동부간선도로에서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30여 개 램프 구간에 설치된 CCTV를 모두 다 뒤졌다. 그렇게 250여 대의 CCTV를 다 확인해본 뒤에야 용의자 장모(29)씨가 사고 뒤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 같은 작업이었다. 사고발생 1달 만인, 지난 25일이었다.

경찰에 불려온 장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사건 당일 새벽까지 친구들과 청담동의 한 노래 주점에서 만나서 함께 놀았고, 맥주 2캔을 시켜 한 캔은 친구가 다 마시고 자신은 한 모금 정도 마셨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교통사고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고 시치미를 뗐다. 경찰이 CCTV 추적 영상을 증거로 들이밀며 추궁하자 이번엔 “덜컹 하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게 사람인 줄은 몰랐다”라고 발뺌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8일 장씨에 대해 도주치상 및 난폭운전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장씨는 끝까지 “사람을 친 줄은 몰랐다”라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장씨가 덜컹거린 느낌을 받은 직후 과속과 신호위반을 해가면서 성북구 자신의 집까지 11.5㎞거리를 8분 만에 운전해 도착한 점, 그 다음날 바로 차량수리를 맡긴 점 등등 볼 때 뺑소니 사고를 알고 있었다고 봤다. 경찰 관계자는 “장씨가 술을 한 모금만 마셨다고 진술했지만, 시간이 경과돼서 특정할 수 없어 음주운전은 범죄사실에 넣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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