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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가 부른 ‘8호 감방의 노래’ 100년 만에 되살아났다

입력
2019.02.23 04:40
수정
2019.02.26 10:0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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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삼월의 노래’ 일환 싱어송라이터 안예은 음원 제작

“유관순 열사뿐 아니라 김향화·권애라 등 당시 여성들도 열심히 싸웠다는 걸 기억해 주길”

21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여옥사 8호감방 앞에서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이 '8호 감방의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유관순 열사와 감옥 동료들이 ‘선죽교 피다리’라는 곡을 개사해 100년 전 불렀던 노래가 새롭게 탄생했다. 박소영 기자[저작권 한국일보]
21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여옥사 8호감방 앞에서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이 '8호 감방의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유관순 열사와 감옥 동료들이 ‘선죽교 피다리’라는 곡을 개사해 100년 전 불렀던 노래가 새롭게 탄생했다. 박소영 기자[저작권 한국일보]

유관순 열사와 감옥 동기들이 부른 옥중 창가 ‘8호 감방의 노래’가 100년만에 새롭게 탄생했다. 3ㆍ1운동, 임시정부 설립 100년을 맞아 진행하는 한국일보의 연중기획 ‘다시 부르는 삼월의 노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2일 오후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이 작곡한 ‘8호 감방의 노래(Women’s march)’가 음원으로 제작돼 공개됐다.

‘8호 감방의 노래’가 100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된 계기는 극적이다. 지난달 1일1919년 3ㆍ1운동을 주동한 죄목으로 서울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 감방에 수감된 유관순 열사 외 6명이 감옥에서 만들어 부른 노래 두 곡의 가사가 한국일보 보도를 통해 최초로 공개됐다.(▶관련 기사보기)두 곡의 가사를 공개한 심명철(본명 심영식ㆍ1896~1983) 지사의 아들 문수일(81)씨는 당시 원래 불리던 곡을 개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 곡의 제목은 ‘선죽교 피다리’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권애라(1897~1973) 지사가 개사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문씨는 노래의 멜로디를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보도 후 당시 개성의 3ㆍ1운동 주도자 중 한 명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있었던 허내삼(1888~1964) 지사의 막내아들인 허상희(80)씨 측에서 한국일보에 ‘선죽교 피다리라는 곡을 알고 있다’고 연락을 취해왔다. 허씨는 개성지방에서 널리 불렸던 ‘선죽교 피다리’의 가락을 기억해 생생히 재현했다. 옥중에서 붙여진 가사와 원곡의 멜로디가 드러남에 따라 실제로 유관순 열사와 감옥 동기들이 100년 전 서대문형무소에서 함께 부르며 독립의지를 북돋웠던 노래가 다시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심명철 지사의 아들 문수일씨가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8호 감방’의 노래 가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이진희 기자
심명철 지사의 아들 문수일씨가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8호 감방’의 노래 가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이진희 기자

100년 전 가사와 멜로디를 바탕으로 8호 감방의 노래를 되살린 가수는 싱어송라이터 안예은(27)이다. 안씨는 SBS ‘K팝스타5’ 출신으로, 경연 당시에도 자작곡들로 무대를 꾸몄다. 또한 안씨는 오디션 프로그램방송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티셔츠를 입고 나와 화제가 됐으며,여성 인권문제를 다루는 시위에 참여하는 등 꾸준히 사회문제에 대한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8호 감방의 노래’에서 그는 현악기를 주로 활용하며 피아노 선율과 함께 서정성과 결연한 분위기를 강조했다. 애초 두 곡으로 나뉘었던 가사를 한 곡으로 합쳐 연결성을 두드러지게 했다. ‘대한이 살았다/대한이 살았다’라는 3ㆍ1운동의 결기를 보여주는 가사는 노래의 후렴구로 배치했다. 안씨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조명된다는 취지가 좋고, 이들이 실제로 불렀던 가사에 곡을 붙일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영광스러웠다”며 프로젝트 참여 취지를 밝혔다.

2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여옥사(女獄舍) 앞에서 만난 안씨는 “‘피눈물로 기도했네’라는 가사를 본 순간, 슬프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뭉클한 무언가가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냥 기도한다는 것도 아니고, 피눈물로 기도한다는 가사를 보며 전투적이라는 느낌이 들만큼 결연한 인상을 받았어요. 요새로 치면 시위 트럭에서 진두지휘하면서 부르는 노래처럼요.”

안씨는 “하지만 결연한 가사와 달리 원곡인 ‘선죽교 피다리’의 멜로디는 밝고 희망찬 느낌이 더 컸다”며“개사한 가사와 원곡 음의 박자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아 원곡에 그대로 가사를 얹기는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역사의 피해자로서의 모습만 부각하는 게 아니라 주체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담자는 취지를 더해 ‘8호 감방의 노래’는 새로운 노래로 재창조하게 됐다.

안씨는 ‘8호 감방의 노래’의 절정 후렴부인 ‘대한이 살았다’ 부분의 합창을 인상적인 지점으로 꼽았다. “코러스를 함께 해준 친구 3명 모두 20대 여성인데, 100년 전10대, 20대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부른 노래를 현시대의 여성들이 함께 부른다는 의미에서 무척 뜻있는 작업이었어요.마치 일제강점기시대에 나도 같이 만세 운동을 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는 만세 운동을 하고 난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셨다는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와 감옥동기들이 감옥에서까지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어요.곡 작업을 하면서 이들이 힘든 상황일수록 오히려 더 밝게 노래를 불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이 노래를 통해 그 시대의 여성들도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는 것, 유관순 열사뿐 아니라 김향화 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임명애 어윤희 노순경 지사도 감옥에서까지 뜻을 꺾지 않고 함께했다는 점을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8호 감방의 노래’ 음원은 22일 오후 각 음원 사이트에 공개됐으며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여옥사에서 제작된 라이브 영상은 같은 날 한국일보 영상채널 프란의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계정에 공개됐다.

[저작권 한국일보]서대문형무소 여옥사_신동준 기자/2018-12-31(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서대문형무소 여옥사_신동준 기자/2018-12-31(한국일보)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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