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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 강제입원 쉽게 하는 법안은 反임세원법"

입력
2019.02.11 04:40
수정
2019.02.11 04:42
13면

 16개 단체, 여당 개정안 반대 

 정신질환자 입원, 법원이 심사 

 입원 결정 가족도 4 촌 이내 확대 

 국공립병원 의사 참가 의무 삭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임세원법 입법 공청회’에 참석한 정신질환 환자단체·환자가족단체 회원들이 비자의입원(강제입원)을 요건을 완화하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민호 기자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임세원법 입법 공청회’에 참석한 정신질환 환자단체·환자가족단체 회원들이 비자의입원(강제입원)을 요건을 완화하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민호 기자

 “강제입원만 쉽게 하고 사회 속 치료 돕는 내용 없어” 

“정신병원에 3번이나 입원하고 퇴원을 반복했던 지난 13년간, 약은 매달 타서 먹었어요. 그런데 의사를 제대로 만난 것은 처음뿐이었어요. 나머지는 길어야 5분 봤습니다. ‘잘 자냐, 기분은 어떠냐’를 묻고 약 용량만 조절해줬어요. 투병이 길어지면서 제 상황이 바뀐 걸 몰랐지요. 결국 환자들끼리 알음알음으로 알게된 ‘친절한 의사선생님’을 찾아갔죠. 40분간 면담하고 약을 바꾸고 나서야 편히 잘 수 있었어요.”

◇환자단체… 강제 입원 규정 반대

조현병 환자인 정모(42)씨가 털어놓는 얘기는 정신질환자들의 뿌리 깊은‘입원 트라우마’를 함축한다. 치료의 질은 낮은데 입원이 장기화·반복되면서 인간관계가 끊어지고 사회에 복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게 환자들 불만의 요체다. 실제로 2015년 기준으로 한국 조현병 환자의 입원기간(221일)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1위다. OECD 평균(49일)의 4배에 달한다.

지난해말 진료 중 정신질환자의 흉기에 찔려 숨진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의 사건을 계기로 여당에서 강제입원(비자의입원)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환자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임세원 법안(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공청회에는 환자와 가족 100여명이 몰려 법 개정 움직임에 항의했다. 이날 논의된 법안은 윤일규 더불어민주당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임세원 교수 사망 이후 민주당이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논의 끝에 도출한 사실상의 여당안이다.

법안의 골자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주장해왔던 ‘사법입원제’ 도입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환자가족 등으로 구성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가 강제입원 요건을 심사하는 현행제도를 바꿔 가정법원에 심사를 맡기자는 내용이다. 가족의 범위도 직계와 배우자에서 4촌 이내 등으로 확대했고, 입원진단 시 반드시 1명이 국공립병원 의사여야 한다는 조항도 삭제됐다.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강제입원의 책임을 법원에 떠넘기고, 강제입원을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라는 게 환자ㆍ가족단체들의 주장이다. 이날 공청회에서 환자ㆍ가족단체들로부터는 “반(反)임세원법 반대”라는 구호까지 나왔다. 고(故) 임세원 교수가 평소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없고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개정안처럼 법원이 입원을 결정하면 오히려 환자에 대한 범죄자 낙인효과가 생긴다는 게 환자ㆍ가족단체의 주장이다. 정신건강서비스정상화촉구공동대책위원회에는 환자·가족단체를 중심으로 모두 16개 단체가 참여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확산된 고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원작자는 늘봄재활병원 문준 원장이다. 연합뉴스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확산된 고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원작자는 늘봄재활병원 문준 원장이다. 연합뉴스

◇실질적 지원논의 들어가야

환자·가족단체들은 이 법안이 입원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환자를 사회로 복귀시켜 치료하는 내용은 없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의사들의 진료편의성에만 방점이 찍혀있다는 주장이다. 권오용 한국정신장애인연대 사무총장은 “임 교수의 비극을 빌미로 의사들이 원했던 입원절차만 완화하려 하는 게 이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예컨대 자살예방 등 다른 업무가 많아 본업인 환자사례관리에 집중할 수 없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대한 예산지원을 강화해야 실질적으로 환자에 도움이 되는데 이런 부분을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다.

조현병 자녀를 둔 광주의 오모(55)씨도 직접적인 치료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이가 투병 첫 10년간 해마다 반년씩 입원했다가 퇴원하곤 했지만, 곧 병이 재발하곤 했다”며 “사회에서 환자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또래끼리 어울릴 공간은 있는지, 취업은 어떻게 할지 도와줄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준 고려대 의대 교수는 “한국은 중앙정부 예산의 1.5% 정도가 정신질환 몫인데, 선진국은 5% 수준”이라며 결국 관련 예산 확보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관건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역사회의 정신보건은 법만 개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복지 등 지원을 확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과 관련 최준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는 “이번 법안이 입원치료영역을 넓히거나 환자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라며 “정신질환이 심각한 환자의 입원을 위한 합리적이고 명백한 기준을 마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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