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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대한항공 경영참여 ‘10%룰’이 발목 잡나

입력
2019.01.31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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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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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경영 관여에 대한 국민연금의 결정이 임박한 가운데 이른바 ‘10%룰’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영 참여를 선언한 지분율 10% 이상 주주에게 의무 적용되는 이 법령에 따라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와 단기 주식매매 차익 가운데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기로에 선 모양새다. 국민연금을 앞세워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경영 관여) 활성화를 꾀하고 있는 정부 방침도 자칫 10%룰에 막혀 좌초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주식매매 수익 막는 10%룰

30일 국민연금,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다음달 1일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 회의를 열고 대한항공 지분 보유 목적을 현행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바꿔 공시할지를 결정할 예정이다. 대한항공 지분을 11.56%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 경영참여를 선언할 경우 ‘주요 주주’에 편입돼 △이사 선임ㆍ해임 △사외이사(감사) 후보 추천 △정관변경 관련 주주제안 △의결권 위임장 대결 등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가능하다. 현재 국민연금은 △비공개 서한 발송 △비공개 대화 △경영진 면담 △이사 선임 반대 △이사ㆍ감사 보수한도 승인 반대 등의 소극적 주주권만 행사할 수 있다.

관건은 10%룰이다. 자본시장법과 같은 법 시행령에 있는 이 규정은 경영참여를 목적으로 특정 기업의 지분을 10% 이상 보유한 주요 주주에 대해 의무사항을 정해두고 있다. 이들이 경영에 관여해 얻은 기업 내부정보를 활용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조치로 △지분 변동사항 5일 이내 공시 △6개월 이내 단기 매매차익 반환 등이 주요 내용이다.

국민연금은 특히 매매차익 반환 규정에 민감하다. 경영참여를 선언한 순간부터 대한항공 주식에 대한 단기매매가 사실상 금지돼 수익에 지장이 생기는 탓이다. 보건복지부와 기금운용본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주식을 거래하며 거둔 단기매매 차익은 최소 108억원에서 최대 469억원으로 추산된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국내주식 투자에서 수익률 -16%의 저조한 성적을 낸 상황에서 주요 수익원 중 하나가 차단되는 셈이다. 기금위 자문기구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자책임위)에서도 위원 다수가 10%룰을 들어 대한항공 경영참여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이 10% 이상 지분 보유한 기업. 그래픽=신동준 기자
국민연금이 10% 이상 지분 보유한 기업. 그래픽=신동준 기자

◇스튜어드십코드 출발부터 삐걱

국민연금은 난감한 표정이 역력하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23일 “스튜어드십코드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이행하겠다”고 강조하면서 대한항공 경영 참여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행사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대한항공 경영권을 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가 갑질 사태, 탈세 및 횡령ㆍ배임 의혹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어 분위기는 무르익었지만 10%룰이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이렇다 보니 벌써부터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다른 기업으로 확대 적용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4분기 공시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10%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국내 기업은 31곳이다.

국민연금은 금융당국의 유권해석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 25일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에 국민연금이 매매차익 반환 규정의 예외로 적용 받을 수 있는지 유권해석을 신청했지만, 금융위는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민연금에만 특혜를 주면 다른 투자자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이날 “조만간 결론을 내겠다”는 입장만 내놨다.

국민연금 내부에선 대한항공 경영 참여에 나설 경우 이전 매매차익까지 반환해야 한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수탁자책임위의 한 위원은 “일단 경영참여 목적을 밝히고 나면 이전에 진행된 대한항공 경영진과의 비공개 대화 등도 주주제안 전 단계로 간주돼 경영참여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단계여서 생기는 논란”이라며 “금융위가 명확하게 해석을 내려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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