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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캐슬’이 묻는다… 피라미드 정점에 선 당신, 행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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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짓밟고 올라서도 또 다른 피라미드 시작 ‘뫼비우스 띠’
악행ㆍ불법 저지르는 모습서 학벌ㆍ경쟁사회 치부 드러내
올바른 말하는 강남좌파ㆍ비뚤어진 모성신화에 불편한 시선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견고한 성, ‘SKY캐슬’은 결국 몰락할까.
종영을 앞둔 JTBC 드라마 ‘SKY캐슬’에 대한민국이 들썩인다. ‘아갈머리(입을 칭하는 속어)’가 더 이상 상스럽게 들리지 않고, 선생님을 자꾸 ‘쓰앵님’으로 발음하게 되는 당신이라면, 매회가 끝날 때마다 극 중 ‘떡밥(작가가 숨겨놓은 복선)’을 찾아 온라인 공간을 헤맸다면, 무슨 말로 시작해도 타인과의 대화가 결국 ’스캐(SKY캐슬의 약칭)’로 맴돈다면 헤어날 도리가 없다. 작가를 ‘전적으로’ 믿고 최종화를 기다리는 수밖에.
시청률만 봐도 가히 ‘현상’이라 칭할 만하다. 지난해 11월 23일 첫 방송 당시만 해도 1.7%에 그쳤지만, 19일에는 22.3%(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하며 비(非) 지상파 최고 시청률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아마 이 기록은 또 한 번 갱신될 가능성이 크다. 인물들 간의 갈등과 화제성이 정점에 오른 지금, 최종화를 목전에 두고 있어서다.
SKY캐슬은 한국 사회의 폐부를 직시한다. 그리고 예리한 도구로 아픈 곳을 후벼 판다. 비단 지난해 숙명여고 시험문제 유출 사건, 2015년 천재 소녀 하버드ㆍ스탠퍼드 동시합격 사기 사건 등 실제 발생한 일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가 등장해서만은 아니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에게 수십억 원을 쏟아붓고 목표를 위해 어떤 수단도 불사하는 모습에서 성공을 위해 핏발 서린 눈으로 편법을 자행하고 공정을 묵살했던 한국 사회의 단편을 읽는다.
경쟁에서 이기고자 악행과 불법을 서슴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은, 지금까지 한국 교육과 제도에 순응하는 개인이 견지했던 태도다. SKY캐슬은 4개의 대사와 결정적 장면에서 한국 사회가 원점부터 고민해 볼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묻는다. “그래도 전적으로 믿고 따르겠느냐”라고.
◇한국 사회의 압축판, 가파른 피라미드
”피라미드 밑바닥에 있으면 짓눌리는 거고, 정상에 있으면 누리는 거야.”
피라미드 모형을 책상 위 자녀들에게 보이며 "너희는 꼭대기에 올라가야 한다"라며 자식을 쥐어짜는, 야망의 화신 차민혁(김병철). 가난한 세탁소집 아들로 태어나 사법고시에 합격, 최연소 부장ㆍ차장검사까지 역임한 입지전적 인물. 그럼에도 빈곤을 혐오하고, 자신의 부와 지위를 자녀들이 ‘세습’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힌 모습은, 한국 사회가 낳은 과거 어느 ‘개천 용’에서 본 기시감을 준다.
민혁이 신봉하는 피라미드는 밀려나면 착취당하고 올라간 이는 과도한 특권을 누리는 사회의 축약본이다. 사회 전체가 정점을 욕망하며 내달리는 모습까지 똑 닮았다. 모두가 올라가려고 발버둥 치는 사이, 아래에 깔린 이들은 배제되고, 희생되고, 존재가 소거된다. 친구가 죽고, 그로 인해 다른 친구가 경찰에 체포되고, 전교 1등을 석권하던 또 다른 친구가 심적으로 동요하는 사이, 친구의 구명을 위해 탄원서를 받던 쌍둥이 아들에게 민혁은 외친다. “지금이야말로 니들이 등급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차민혁의 피라미드는 우리 사회의 끝 없는 경쟁구조라고 분석한다. 남을 짓밟으며 평생을 경쟁해 올라서도, 또 다른 피라미드가 시작되는 ‘욕망의 뫼비우스 띠’다.
“극 중에서 아이들은 명문대 합격을 위해 공부하는 기계로 전락하고, 대학병원 의사인 아버지들 역시 병원장 자리나 출세를 향해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그렇다고 병원장이 되면 행복한가요. 병원장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정계에 입문하기 위해 정치인과의 연줄을 찾아 헤매고 있죠. 피라미드 속에서 인물들은 서서히 몰락합니다.”
◇'올바른 위선자'를 보는 불편한 시선
"제가 엄마들에게 오는 전화는 다 차단해버리는 바람에. 엄마들이랑 어울리다 보면 자꾸 조급해지기도 하고, 이것저것 시켜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우주는 지가 원해서 중 1때 수학과외 정도는 시켰어도, 딴 건 안 시켰거든요."
올바른 말을 하는데 어딘가 얄밉다. 이수임(이태란)이 등장 인물들의 고급 집단 거주지 ‘스카이 캐슬’ 내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소설로 쓰겠다며 온 동네를 파헤치고 다니는 장면에서는, 차라리 딸을 서울대 의대로 진학시키겠다는 한서진(염정아)의 욕망이 순수해 보인다. 비정상적 사교육 폭주를 막고, 김주영으로 인한 한 가정의 파괴를 막는 선한 캐릭터 일진대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심지어 서진을 응원하기까지 한다.
우열로 사람을 판단하고 줄을 세워온 한국 사회에서 전형적인 교육을 받은 개인은 자신을 서진과 동일시하기 쉽다. 비천한 출신, 빈곤한 형편, 부족한 학력으로 차별당한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어서다. 윤석진 드라마평론가(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공적 입장(수임)과 사적 욕망(서진)이 충돌하는 현상이라 본다.
“수임의 말을 들으면 ‘그래 나도 알고 있어. 그렇지만 그런다고 해서 세상이 뭐 달라졌어?’ 하는 반발심이 생겨요. 동시에 서진처럼 내 자식을 성공시키려는 사적 욕망이 작동하지만 드러내고 싶진 않죠. 수임이 서진을 계속 자극하고 공격하는 것 같은 마음은, 사실 ‘나’의 무의식 속 욕망을 건드리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대중의 반감을 수임의 ‘위선적 태도’에서 찾기도 한다. 자신은 강남에 살면서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던 한 고위 인사의 모습에 대중이 분노한 것과 같은 이치다.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사람들은 단순한 악인보다는 위선자를 훨씬 혐오한다는 심리학 실험이 있다”라며 “강남에 살면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일종의 ‘강남좌파’적 면모를 드러내는 수임을 싫어하고, 솔직하게 ‘나’와 같은 욕망을 추구하는 서진을 응원하는 양태”라고 설명했다.
◇’자녀=엄마?’ 비뚤어진 모성신화
“어머니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서 학력고사 전국 1등까지 했고, 어머니가 의대에 가라고 해서 의사됐고, 어머니가 병원장 되라고 해서 그거 해보려고 기를 쓰다가, 내 새낀 줄 모르고, 내가 죽였잖아요. 저 이제 어떻게 하냐고요. (중략) 날 이렇게 만든 건 어머니라고요. 그까짓 병원장이 뭐라고. 내일모레 쉰이 되도록,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놈으로 만들어놨잖아요. 어머니가!”
명색이 대학병원 교수라는 인물의 절규라기엔, 유치하고 처절하다. 중년이 되도록 어머니의 과잉보호 아래서 인생의 험로를 순탄하게 넘겨온 ‘마마보이’ 강준상(정준호)의 외침에 시청자 중 몇 명이나 공감할 수 있었을까. 평생을 과잉보호의 대상으로 산 남자가 존재를 몰랐던 친딸 혜나(김보라)의 죽음을 계기로, 입시에 집착하는 부인에게 “당신도 욕심 내려놔. 예서 인생하고 당신 인생은 다른 거야”라며 각성하는 장면은 ‘극사실주의’ 속 유일한 판타지다.
드라마 안팎에서 엄마들은 아이의 삶을 손아귀에 쥐고 뒤흔든다. x값을 넣으면 y값이 나오는 함수처럼 인생을 통제한다. 애초에 자녀에게 올인하지 않는 어머니는, 같은 엄마들끼리 입시라는 자녀와의 2인3각 경기에 출전할 자격도 주어지지 않는다. 극의 초반, 김주영은 자신이 코디할 학생을 고르면서 “입시는 저, 학부모가 수험생에게 올인하는 3명의 게임”이라며 워킹맘을 배제한다. 자식 교육보다 주체적인 삶을 사는 엄마에게 돌아오는 건 ‘모성애도 없는 여자’라는 힐난이다.
모성을 강요하는 사회는 어머니에게도 자식에게도 끔찍한 결과로 되돌아 온다. 삶의 선택지가 획일화된 한국 사회에서 모성은 주로 자녀 교육으로 점철된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책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에서 "'나쁜 엄마'가 되지 않으려는 대부분 엄마는 모성 가득한 사람이 되어 육아에 전투적으로 매진하게 되고 그럴수록 자녀를 '소유물'로 인식해 자기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피라미드를 뒤집고 ‘진짜 행복’을 묻다
“피라미드에서는 미라가 맨 꼭대기에 있는 게 아니라 (가운데를 가리키며) 요기, 요기에 있대. 요기가 제일 좋은 거지. 중간이 최고야.”
그럼에도 드라마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는다. “중간이 최고”라는 아이의 말에서, “지구는 둥근데 세상이 왜 피라미드냐”며 아빠의 피라미드 모형을 깨부수는 다른 아이에게서.
민혁이 설파하는 피라미드론에 감탄한 우양우(조재윤), 진진희(오나라) 부부는 아들 우수한(이유진)에게 피라미드를 들이밀며 묻는다. “아들, 아들은 여기서 어디에 있고 싶어?” 부모의 눈치를 살피며 울며 겨자 먹기로 수한은 꼭대기를 가리키지만, “꼭대기에 가려면 ‘학생으로서’ 어떻게 해야겠느냐”라는 물음에는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똥 잘 싸는 것’이라는 현답을 내놓는다. 그리고 유유하게 떠난다. 사회가 곱씹어 볼 화두를 남기고서.
윤석진 평론가는 “인생사라는 것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게 이치”라며 “그런 점에서 꼭대기에서 버틴다는 것, 올라가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삶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타인을 짓밟고 피라미드의 정점에 오른다 한들, 한국 역사에서 그들의 끝은 비참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고 권력자인 전직 대통령의 말로가 대부분 비극이었던 것처럼요.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은 간단해요. ‘그렇게 기를 쓰고 올라갔을 때, 과연 그런 삶이 행복한 것인가’라는 겁니다.”
각자가 피라미드의 ‘어디에 있는 게 행복한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그 구조 자체를 전복해야 한다는 해석도 이어졌다. 박권일 비평가는 “한국 사회는 계급(class)은 있을지언정, 신분(status)은 없는 민주사회임에도 불구, 봉건제처럼 계급이 세습되거나 계급 간 벽이 뚜렷한 피라미드 구조를 유지해왔다”라며 “이제는 승자가 너무 많은 걸 가져가고, 한번 내몰린 패자는 인간의 존엄과 생명까지 위협당할 정도로 불공정한 자원 배분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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