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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혐오는 개인 문제? 압축적 근대화의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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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사회’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5>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오늘날 청년과 노인의 세대갈등은 본질적으로는 신자유주의 확대로 인한 계급 갈등입니다. ‘노인혐오’나 ‘세대갈등’이라고 뭉뚱그려서는 현상을 제대로 직시할 수도, 정확한 대안을 논의할 수 없는 까닭이죠.”
최근 경기 수원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는 인간의 가치를 ‘생산성’으로 재단하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세대갈등은 필연적이며, 최근 갈등 양상이 노인에 대한 일방적인 혐오로 흐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노인돌봄 노동에 몸담으며 만난 독거노인 등 다양한 노인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최 작가는 “사회에서 무언가를 생산해낼 수 없는 노인은 신자유주의에서 가장 쓸모 없는 존재”라며 “노인복지에 들어가는 돈을 ‘비용’이라 보면서, 노인을 멸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결국 우리 사회에서 배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단언했다.
노인 가운데서도 ‘어떤 노인’을 사회가 멸시하는지 직시해야 갈등의 본질인 ‘계급 갈등’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억눌린 개인은 모멸감과 자기 불안 등 부정적 에너지를 대체로 더 약한 자에게 분출한다. ‘틀딱충’과 같은 노인 혐오 단어가 지하철에서 자리를 놓고 싸우거나 공공장소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교양 없고 빈곤한 노인의 이미지만 담을 뿐, 재벌 회장과 같은 부유한 노인을 연상케 하지 않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가난한 청년은 기사 딸린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비행기로 여행을 다니고, 고급 주택가에 거주하는 ‘부유한 노인’을 만날 수도, 혐오할 수도 없는 위치에 있어요. 세대 갈등이 ‘노인혐오’라는 큰 틀로 묶여 있지만 혐오하는 대상과 방향성을 따져보면 기저에는 노인의 빈곤 문제가 있어요. 청년들도 열심히 노력해 부유한 노인의 위치에 가고 싶지만, 계급이 고착화한 사회에서 불가능하니 매일 마주치는 가난한 노인과 싸우고 혐오하는 감정이 드러나는 겁니다.”
이어 그는 “어떤 대상에 대한 ‘혐오’는, 그 대상에 대한 ‘자기 불안’”이라 정의했다. 손수레를 끌며 폐지를 줍는 노인, 갈 곳 없이 우대권으로 지하철 여행을 하는 노인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젊은 세대의 자기 불안이 혐오로 발현된다는 일종의 ‘노화공포증’이다.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노년을 긍정하지 않고, 오직 불편함과 쓸모 없음으로 늙음을 정의해온 사회의 단편이다.
“우리 노인들의 현실을 보세요. 지금 세상이 노인을 혐오하는 것은, 정말로 노인들의 삶이 ‘혐오스러워서’예요. 기업은 ‘안티에이징’을 홍보하며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요. 미디어는 ‘노령화’를 문제라고만 하죠. TV보는 노인들에게는 그 말이 ‘노인이 너무 많으니 없어져야 한다’는 협박으로 들려요. 정치권은 노인 복지 비용으로 싸우고요. ‘모든 게 노인 때문’이라는 상황에서 그들이 어찌 유쾌할 수 있겠어요.”
‘노인 소외’가 짧게는 200년, 길게는 400년에 걸쳐 천천히 근대화를 이룬 서구사회에 비해 고작 한 세대 안에서 급속도로 성장한 ‘압축적 근대화’의 부작용이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1930년대 농촌봉건사회에서 태어난 80대 노인은 고작 한 세기 동안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자본주의가 확산되는 사회를 거쳐 IT시대까지 겪었다. 최 작가는 “4차산업혁명 흐름 속에서 노인들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이라 덧붙였다.
‘디지털 까막눈’ 노년층은 사회에서 차별받고, 배제되고, 소외된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7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평균을 100%로 봤을 때 70대 이상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25.1%로 현저히 낮았다. 노인들이 자주 모이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파고다공원) 인근 패스트푸드점조차도 무인계산기를 설치해 음식을 주문하는 것조차 어렵게 됐다. 디지털에 적응하지 못한 노인들은 영화관과 대중교통 등 일상 곳곳에서 밀려났다. 최 작가는 “돈이 되지 않는 가난한 소비자를 시장이 외면한 결과”라 설명했다.
노인들의 ‘인정 투쟁’이라는 측면에서는 ‘태극기집회’가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마음은 하나의 명분이었을 뿐, 이 사회에서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고 밀려난 노인들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마음껏 드러내고 울분을 분출하도록 허락된 유일한 공간이었다는 해석에서다.
불만, 소외감, 억울함 등이 해소되지 못한 상태로 쌓여만 가는 ‘앵그리 실버(Angry Silverㆍ성난 노인)’가 늘면서, 우리 사회의 노인 범죄는 급격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12~2017년 살인ㆍ강간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65세 이상 노인이 연평균 24%씩 증가해 같은 기간 노인 인구 증가율(연평균 4.5%)을 훨씬 앞질렀다는 통계가 그의 분석을 뒷받침한다. 최 작가는 “앞으로 노인 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라 예측했다. 최근 공저자로 참여한 저서 ‘노년 공감’에서 그는 “과거에는 소액 절도와 같은 생계형 범죄가 (노인범죄의) 주를 이뤘지만, 2017년에는 성범죄를 저지른 노인이 5년 전보다 91% 증가했다”고 봤다.
그는 심화하는 ‘세대 불화’가 결코 젊은이들에게도 이롭지 못할 것이라 단언한다. 1인 1표 민주주의 제도 아래서, 태극기집회와 같이 ‘정치세력화’한 노인들의 투표는 젊은 세대들의 정치적 입장을 얼마든지 덮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작가는 “19대 대선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직후였는데도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득표율이 24%나 됐다”라며 “청년 세대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도 노인과 화해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세대 갈등과 노인 혐오를 ‘개인적인 문제’로 몰고 가지 말아야 해요. 이 사회의 개인은 모두 피곤하고 지쳐있어요. 개인들의 행위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도적 고민이 선행돼야 합니다. 개인으로 하여금 ‘이런 사회라면 내가 가진 것이 별로 없지만, 약자에게 져 주기도 하고 양보도 할래’하는 마음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정치권과 언론 등이 노력해야죠.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공정한 분배가 핵심입니다. 노인혐오는 신자유주의 부작용을 극복하는 대안에서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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