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300만 독립운동가 중 1만5000명만 서훈… 여성은 2.4% 그쳐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3ㆍ1운동, 임정 100년-다시 부르는 삼월의 노래]
보훈처, 남편자료 등 인정폭 넓혀 지난해 여성 유공자 60명 추가
이봉창·윤봉길 도운 이화림 지사 한국전 중국군 경력, 두 번 탈락
北 정권 확립에 직접 관여 안 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서훈 검토
김구의 애국단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봉창과 윤봉길의 조력자, 조선의용대 여자복무단 부대장, 그리고 한국전쟁에 중국인민지원군 의무병으로 참전한 이화림(1905~1999) 지사. 이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 독립운동가이지만 그는 지금까지 서훈(敍勳)을 받을 수 없었다.
평양이 고향인 이화림 지사는 1930년대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애국단에서 활약하면서 1931년 이봉창 의사가 일본 일왕 폭살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갈 때 폭탄을 넣을 고쟁이를 만들어주고, 이듬해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虹口) 공원 폭탄 투척 당시 감시를 피하고자 동행했고 거사 현장을 목격했다. 이후 조선의용대에 참여해 중국 전역을 돌며 독립투사들을 치료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사회주의자였던 이 지사의 행적은 백범일지에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으며, 한국전쟁에서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해 의무병으로 활동한 행적으로 인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하며 대중의 기억에 남지 않았다.
지난달 1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 사업회와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공동주최로 진행된 토론회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이화림 지사를 통해서 본 서훈방향'에선 300만명(추산)에 달하는 독립운동가 가운데 고작 1만5,000여명에만 서훈이 이뤄진 현실에 대한 개선책들이 두루 논의됐다. 이 지사처럼 공적이 뛰어남에도 서훈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날 토론회는 지난해 광복절을 기점으로 여성 및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발굴을 확대하겠다는 보훈처의 기조아래 주목 받았다. 그간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서훈은 ‘반쪽짜리 선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2017년까지 서훈받은 여성운동가는 297명에 불과했고, 항일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사회주의 진영 독립운동가 조명이 옅었기 때문이다. 보훈처에서는 2017년부터 전문용역을 통해 기준 개선을 검토, 지난해 광복절 서훈부터는 개선된 기준으로 진행 중이다.
◇남녀 동일 기준 심사, 여성 운동가에 불공평
그간 독립운동의 ‘조연’으로 치부돼 온 여성의 서훈 기준에 대한 논의가 최근 활발히 진행 되고 있다. 독립유공자 후손 이원표씨는 조부부터 온 가문이 독립운동에 투신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지만, 유독 어머니만 서훈 포상에서 제외된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씨의 아버지 이윤철씨는 광복군 제5지대 전신인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해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고 할아버지와 삼촌, 이모도 모두 서훈을 받았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 한국독립당 소속이었던 이 씨의 어머니 민영애 여사는 서훈 심사에서 두 차례나 제외됐다. 이 씨는 “아버지는 평소 ‘아내와 8년이나 연애했는데 그 시절 남녀가 어떻게 자유롭게 만났겠냐. 항일운동 단체 활동이 아니면 만날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남편이기 때문에 아내의 항일운동 증인이 될 수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라며 “아버지는 유언으로 ‘나의 아내뿐 아니라 동지였다는 점이 인정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말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보훈처의 독립운동가 서훈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김형목 독립기념관 연구원은 “어느 대통령이나 독립운동가 서훈에서 여성 비율을 높이라고 했지만, 남녀 독립운동가에 대한 기준이 같아서는 도저히 발굴이 안 된다. 여성은 자식과 시부모를 부양하고 독립운동가 남편이 돌보지 않는 가정사를 책임지는 상황에서 남성과 동일한 기준으로 심사해서는 이들이 서훈을 받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말했다.
신영숙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도 “부부가 독립운동을 함께 했다면 남편과 아내 모두에 서훈이 이뤄져야 한다. 당시 여성이 살림하면서 경제적으로 보좌하지 않았다면 남성의 항일 활동이 가능했을까”라며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서훈 심사에서 자료 제시를 못 하는 게 그 시대 여성의 입장이었고, 가부장제 때문에 말할 수 없었던 여성들의 피해였다”고 말했다.
◇회고록, 남편 자료, 학적부.. 입증 자료 다양화
이러한 지적에 따라 보훈처는 기존 증거주의에 입각, 공적 서류에 독립운동 행적이 나타나야 서훈이 가능한 기준을 개선해서 후대에 나오는 것이라 해도 일기나 회고록, 남편의 자료를 적극적으로 검증 받아 여성 서훈 비율을 높여가는 방향으로 전환 중이다. 또한 학생 독립운동가의 재평가도 이뤄지고 있다. 과거에는 학생들의 경우도 일반인과 차이 없이 옥고 3개월을 치러야 서훈받을 수 있다는 기준을 적용했으나 학생은 실제로 체포나 재판, 옥살이까지 하지 않고 대신 퇴학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참작했다. 광주학생항일운동, 6ㆍ10만세 운동 등 학생들이 중심이 된 항일운동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학생이라는 특수 신분을 감안하고 학적부 기록상 퇴학자들의 경우 가장 낮은 등급이라도 서훈하는 방향으로 개선했다.
이런 방침으로 2018년에 서훈받은 여성 독립유공자가 60명이 늘어 총 357명이 됐다. 비록 전체 독립유공자(1만5,180명)의 2.4%에 불과하지만 최초 포상이 실시된 1949년부터 2017년까지 297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서훈한 데 비하면 크게 늘었다.
보훈처의 독립운동가 발굴 업무는 12명가량의 공훈발굴과 공무원들이 전담한다. 독립운동가 발굴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이들은 60~70년전 자료를 토대로 공적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향과 사망 일시, 공적 내용으로 이뤄진 기본적인 사항이 확립돼야 하는데 새로운 자료를 발굴해도 성명만 나와 있으면 기본 내용구성이 되지 않아 서훈까지 갈 수 없어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가짜 독립운동가 서훈 문제 역시 서훈 초기 입증 자료 부실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가짜 독립운동가라고 밝혀진 사례들은 모두 1960년대 초 서훈”이라며 “자료 입증 환경이 취약했을 때 집중적으로 (심사가)이뤄진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사회주의자 서훈 느는데… 쟁점은 북한 연계성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은 광복 50주년인 1995년 사회통합 차원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을 창당한 이동휘 지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포상한 이후 점차 확대돼 왔다. 지난해 더 확대된 기준에서는 1945년 광복 이후 1948년 정부 수립 전까지의 해방공간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가운데 북한 정권 확립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 않은 경우 서훈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했다.
황후연 보훈처 공훈발굴과장은 “이화림 지사는 1995년, 1997년 두 차례 공적 심사가 있었고, 2019년 3ㆍ1절 포상자 심사 대상에 포함돼 있다”며 “이 지사의 서훈 여부는 심사위원회의 소관이라 알 수 없지만 해방공간에서 북한정권 수립에 관여하지 않은 운동가에 포상하기로 한 보훈처의 방침에 따라 이분도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독립유공자 서훈과 관련해 가장 풀기 힘든 난제는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거나 한국전쟁에 중국인민지원군이나 북한군으로 참전한 독립운동가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의열단(義烈團ㆍ항일무력독립운동 단체)부터 임시정부와 광복군 활동까지 두루 족적을 남긴 독립투사 김원봉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서훈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이화림 지사의 서훈에서도 한국전쟁에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한 이력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일부 학계나 독립운동가 시민단체들은 북한 정권이나 한국전쟁 참전자일지라도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로를 인정해 서훈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5년 광복절을 앞두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는 남북 간의 체제 경쟁이 끝났으니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독립운동대로 평가하고, 해방 후의 사회주의 활동은 별도로 평가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중국 유학 당시 이화림 지사의 회고록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토론회에서 “이 지사는 공산주의자였고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했지만 나라를 잃은 조선의 한 여인으로서 역사의 순간마다 불어 닥친 온갖 고난과 역경에 당당히 맞서 평생을 독립과 인민의 구제에 헌신했다”라며 “훗날의 편향된 정치와 이념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되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라며 이 지사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촉구했다.
하지만 남북의 특수관계를 감안할 때 북한 정권, 한국전쟁 인민군 참전자의 독립유공자 서훈은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훈처 공훈발굴과 관계자는 “남북 대결 과정과 한국전쟁 발발로 잃은 목숨이 너무나 많고, 이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기도 하다”며 "역사적 측면이나 법적 측면에서 봤을 때 심사당국, 심사위원 당장의 획기적인 판단 변화로 서훈이 이뤄질 수 있는 문제로 보이지는 않고, 사회적인 합의와 공감대 형성을 통해 서서히 풀어갈 사안이다"고 말했다.
독립유공자 서훈에 앞서 이들의 독립운동 행적부터 차근차근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윤정란 서강대 종교연구소 연구원은 “이화림 지사의 사례와 같이 기준미달, 좌익활동 등으로 서훈이 미뤄진 분이 3,000명 정도로 파악된다”라며 “먼저 현재 독립기념관에서 추진 중인 독립운동가인명사전에 등재해 국민에게 이들의 독립운동 행적을 알리고 이후 남북교류가 활발해지면 역사학자들이 남북 공동으로 정치적 문제로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에 대해 깊은 논의를 거쳐 남북한 공동으로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 방법을 찾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