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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한국일보 신춘문예] "차분한데 날카롭고, 위트있지만 시니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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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 본심 통합 소설 부문 심사평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는 예심과 본심이 통합되어 진행되었다. 다섯 명의 심사위원이 함께 작품을 읽고 마지막 작품을 선정하기까지 신중하면서도 자유로운 의견개진이 가능했던 것 같다. 올해 투고된 600여편의 작품들은 뚜렷한 경향이 없는 것이 경향이라고 말해질 정도로 작품의 소재나 형식이 다양했다. 1인칭 독백이나 자기 고백적 소설, 게임이나 요양, 자살이나 질병, 불임을 다루며 인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종말론적인 면을 부각시킨 소설들이 많았다. 장황하고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있거나, 자기 안에 갇혀서 심리적인 서술만을 부각시키는 소설도 많았는데, 신춘문예의 특성상, 간결하고 선명한 스토리를 다루고 있되,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 참신함이나 의외성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작품들이 심사위원의 눈을 더 끌었던 것 같다. 긴 논의 끝에 심사위원 다섯 명의 공통적인 지지를 받은 작품은 안혜림의 ‘종이남자’, 전양정의 완벽한 계획’ 그리고 진예진의 ‘어느날 거위가’ 이렇게 세 작품이었다.
‘완벽한 계획’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들을 대하는 어머니의 심리가 실감나게 드러나 있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현 세태의 문제점을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구체성을 통해 보편성을 잘 획득하고 있는 작품이었지만, 작품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인물의 행동에 대한 개연성을 섬세하게 포착하지 못했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종이 남자’는 흔히 봐왔던 소재와 주제를 다루고 있었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읽는 사람의 기대를 묘하게 배신하는 식으로 전개되면서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문장의 세밀함과 단정함은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봤던 발상이라는 점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어느날 거위가’는 좀 특이한 소설이었다. 기발한 상상력이 바탕이 되고 있지만, 이 소설을 이루고 있는 주된 정조는 차분하고 현실적이며, 때로는 섬뜩했다.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차분하지만 날카롭게, 위트있지만 시니컬하게 서술하는 균형감 있는 전개 방식은 결국 심사위원들이 이 소설의 손을 들게 만들었다. 단단하게 두 발을 땅에 딛고 있는 듯한 안정감을 주면서도 읽는 사람을 매혹시키는 힘이 있었다. 사족이지만, 심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어디선가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의미없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최종심에 오르신 분들이 고군분투를 멈추지 않아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은희경 작가, 이광호ㆍ신수정 문화평론가, 백가흠ㆍ손보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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