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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한국일보 신춘문예] “어둡고 아픈 자리에서 환하게 동심 피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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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부문 최영동씨 당선 소감
제 청춘의 보금자리였던 노고산동이 아프게 떠오릅니다. 서울 신촌 고지대에 위치한 이 동네는 지금 재개발로 오래된 가옥들이 모조리 헐리고 벌거숭이로 변한 상태입니다.
집으로 가려면 높은 산비탈 계단을 올라야 했습니다. 오를 때마다 숨이 턱에 걸렸습니다. 저는 그 계단을 백팔계단이라 불렀습니다. 백팔번뇌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만큼 높은 계단이었습니다.
백팔계단 끝에서 옆집 청년이 키우던 고양이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사 간 옆집 청년이 이 아이를 놔두고 떠난 것입니다.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그 고양이는 매일 백팔계단 주변을 머물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건물 주인과 아무리 수소문을 해도 옆집 청년과는 연락이 닿질 않았습니다.
살던 집 보일러실 구석에 고양이가 머무를 집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름부터 지어주었습니다. ‘하늘처럼 훌륭한’이라는 뜻을 담아 ‘하륭이’라고 불렀습니다. 얼마나 착하고 예쁜 아이였는지 모릅니다. 출퇴근길마다 그림자처럼 저만 졸졸 따라오던 하륭이는 어느 날부터 친구들과 무리를 이루어 새로운 영역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아픔의 장소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노고산동 일대를 걸으며 백팔계단에 머물다 사라진 것들을 떠올렸습니다. 터줏대감 어르신들의 웃음과 한숨소리, 골목가게의 작은 불빛들, 계단을 오르던 아이들 발소리 그리고 제가 꿈꾸던 동심의 세계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빈 칸의 무게를 치우고 다시 뭔가를 쓰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작심하고 펜을 쥐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저를 보던 하륭이의 검은 눈동자였습니다. 하륭이의 눈동자에 비친 풍경을 상상하며 제 안의 침묵을 뚫고 써내려간 글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께 새해 선물을 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보석처럼 빛나는 조카 루오와 늘 고마운 누나, 매형에게도. 20, 30대 인생의 백팔계단을 함께 오르내려준 친구 구자와 유, 그리고 나의 소중한 오랜 벗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어두운 길목마다 불빛이 되어준 존경하는 동료 선생님들께도.
부족한 작품에 희망의 돛을 달아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이야기보따리를 가득 싣고 자유롭게 멀리멀리 항해하겠습니다. 가장 어둡고 아픈 자리에서 가장 환하게 동심을 피워 올리는 이야기꾼이 되겠습니다.
최영동
△ 1981년 부산 출생
△ 서강대 언론대학원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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