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2018 당신이 영웅] 폐품 팔아 15년째 기부… “내가 땀 흘린 만큼 세상은 따뜻해지겠죠”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우유통 기부천사 이상일씨
20일 오전 11시 경기 안양시에서 만난 이상일(72)씨의 수레는 새벽 내 정리해 모은 박스와 폐품들로 이미 꽉 들어차 있었다. 고물상이 쉬는 일요일을 빼고는 매주 엿새간 새벽 6시부터 폐지를 줍는다는 이씨는 “오늘은 인근 상가에서 박스와 폐품을 가져가라고 연락을 먼저 준 덕에 고물상에서 1만원을 넘게 탈 수 있겠다”며 뿌듯해했다. 추운 날씨에 고물을 해체하고 옮기느라 두 손이 모두 하얗게 부르텄지만, “요새는 폐지 값이 워낙 싸기 때문에 기부로 더 많은 이들을 도우려면 서둘러야 한다”는 그의 눈엔 행복감이 가득했다. 이씨는 2003년부터 벌써 15년째 고물을 주워 판 돈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 아동ㆍ장애인시설, 소아암단체 등에 꾸준히 후원하고 있다. 폐지 값이 비쌀 땐 한 해 800만~900만원, 폐지 값이 싼 최근 몇 년은 매해 600만원 정도를 기부해왔다고 한다.
이씨는 34년 가까이 교도소에서 근무하던 교도관이었다. 그런 그가 넝마주이가 된 건, 2003년 정년퇴직 직후 동네에서 우연히 교도소에서 마주했던 퇴소자를 만나면서였다. 그가 동네에서 폐지를 주워 살아가는 것을 보고 격려 차원에서 동네에 버려진 계란판 등을 가져다 주다가, 본격적으로 고물 수거를 시작했다. 이씨는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나는 나라에서 연금을 타고 있어 생활이 여유롭지 않아도 버틸만한 수준”이라며 “씀씀이를 줄이고 일을 해 번 돈을 기부하는 보람이 커 15년간 지속해 오고 있다”고 했다. 처음 몇 해는 우유통에 차곡차곡 모은 돈을 담아 여러 기관에 무명으로 기부를 해 주변에서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우유통 기부천사’. 지난해에는 100일 동안 점심을 금식해 모은 돈을 자연재해로 고통 받는 국내외에 보냈다고 했다.
이씨는 현직에 있을 때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라면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퇴소자들이 남기고 간 담요나 책, 헌옷을 모아 깨끗하게 세탁한 후 복지시설에 보냈다. 심지어 한 라면 회사가 ‘라면 봉지에 붙은 쿠폰을 200장 모으면 대관령 목장에 견학을 보내준다’는 행사를 하자 교도소에서 배급 후 남은 라면 봉지를 수천장씩 모았다가 인근 보육원에 보내 그곳 아이들이 대관령 견학을 갈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면회자들이 남긴 종이컵을 일일이 닦아 말려 모종판을 마련하기 힘든 시골 농부들에게 모종 심는 데 쓰라고 보낸 적도 있다.
불황이 이어지는 데다 기부 손길이 얼어붙은 최근 이씨의 마음은 조금 다급해졌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남을 돕는 일이 더욱 뿌듯한 건 사실이지만, 기부나 봉사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사랑의 온도탑 속 온도가 좀체 안 오른다지요? 제가 조금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되니, 걱정은 없습니다.”
벌써 칠순을 훌쩍 넘은 이씨는 기력이 닿을 때까지 넝마주이의 삶을 유지하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했다. 고물상에서 번 돈을 수시로 입금하려고 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니는 이씨의 통장 맨 앞에는 그 의지를 대변하듯 ‘나눔에는 너와 내가 따로 없다. 씀씀이는 줄이고 나눔 봉사에 참여하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씨는 “다행히 퇴직 후 넝마주이로 부지런히 움직여온 덕에 삶이나 가정생활이 무너질 정도의 큰 질병은 앓지 않았다”라며 “건강이 안 좋아지더라도 교도관으로 근무할 때 받은 야근수당과 연금을 보태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야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