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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생태!] 버드나무는 인류와 공생한 식물... 바이오 연료로도 한몫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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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양치질’이란 단어의 뜻은 ‘이를 닦고 물로 입 안을 가시는 일’입니다. 그 어원을 살펴보면 본래 ‘양지(楊枝)질’로, 버드나무 가지나 소금으로 입안을 청소하던 것을 나타낸 행위인데요. 양지질이란 단어는 오래된 한자어로 지금으로부터 약 900년 전(12세기) 중국 송나라 손목이 저술한 ‘계림유사’에도 나옵니다. 버드나무 가지를 이용하는 방법은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서 솔처럼 만들어 양치질을 하거나 뾰족하게 만들어 치아 사이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식이었습니다. 물리적 제거 효과뿐 아니라 살균 및 염증 완화효과가 있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예로부터 즐겨 이용돼 온 것으로 보입니다.
버들 양(楊)은 버들 류(柳)와 동일하게 버드나무를 의미하는 글자인데요, 예전에는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여 사용했습니다. 옛 문헌에 남아 있는 양(楊)자가 들어있는 지명을 현재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경기도 양주(楊州), 양평(楊平), 강원도 양구(楊溝) 등이 있습니다.
지명에 버드나무를 뜻하는 한자가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제로 앞서 언급한 세 지역에는 예전에도 지금도 버드나무 군락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세 지역 모두 유속이 느린 하천의 중ㆍ하류에 버드나무 군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버드나무가 자란 곳은 주변에 반드시 물이 흐르고 토양에는 유기물이 풍부한 게 특징입니다. 이는 물 확보가 용이하고 농사짓기 좋은 땅이라는 옛 사람들이 살기 좋은 조건과 겹치지요. 버드나무 군락이 있는 지역과 인간이 농경생활을 시작한 지역은 상당히 겹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세계 600여종 중 우리나라에는 40여종이 서식
버들의 속명인 살릭스(Salix)는 켈트어의 sal(가깝다)과 lis(물)의 합성어로 물 근처에 사는 나무로 인지하고 이름이 지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버드나무 종류는 낙엽성 교목, 아교목, 관목, 덩굴성 목본 등 전세계 600여 종이 확인되고 있는데요, 주로 북반구 온대와 한대지역에 분포합니다. 극한 환경에도 강해 북극의 툰드라지역이나 고산지역에서 서식하는 종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염습지, 소금평원 등에서 자생하는 수종도 있지요. 우리나라에는 40여 종류의 버드나무과 식물이 있고, 습지, 산지의 길가, 계곡 및 고산능선 등 다양한 곳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하천의 중ㆍ하류, 늪, 저수지와 같이 물 흐름이 느리거나 정체된 곳에 군락으로 발달하는 버드나무 종류로는 선버들, 왕버들, 버드나무 등이 대표적으로 꼽힙니다. 낙동강 배후습지인 창녕 우포늪에 가면 넓은 면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선버들 군락을 볼 수 있고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북 성주군 경산리 성밖숲에 가보면 소규모 하천인 이천의 퇴적 사면부에 거대한 왕버들 군락을 볼 수 있습니다. 선버들, 왕버들에 비해 버드나무는 한랭 습윤한 곳을 좋아하여 산간 지역에 위치한 오래 두어 거칠어진 묵정밭이나 고위도 지방에서 출현빈도가 높습니다.
하천의 상류와 같이 물 흐름이 빠른 곳의 물가에 발달하는 종으로는 갯버들이 있습니다. 비가 오면 유속이 빨라지고 자갈이나 모래가 자주 움직이는 불안정한 입지특성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런 장소에 사는 갯버들은 물리적 스트레스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높게 자라지 않는 대신 가지에 탄력을 더하여 세찬 물살에도 부러지지 않고 생존할 수 있지요. 또한 맹아(새로 돋아나오는 싹)를 많이 만들어 침수 시에도 기공을 통한 호흡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진화하였습니다.
이처럼 버드나무류는 물가에 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은 물가 이외의 장소에도 살고 있습니다. 토양에 자갈이나 굵은 모래가 많아 물이 잘 빠지고 때때로 침식이 자주 일어나는 산지 비탈면에서는 호랑버들, 떡버들, 여우버들 등이 자주 나타납니다. 이들 수종은 크게 자라지 않는 소교목으로 대부분 군락이 아니라 개체수준으로 산재하는 게 특징입니다.
높은 산지에서도 버드나무류는 발견됩니다. 한라산 해발 1,200 ~1,600m에서 자생하는 제주산버들, 백두산의 수목한계선을 넘어가는 해발 2,000m 이상의 정상부에 자생하는 콩버들입니다. 이들은 토심이 매우 낮은 암반 위나 계곡부 입지에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고산지대는 저해발보다 기압과 기온이 낮으며 수시로 우박, 번개, 눈, 비, 바람, 자외선 등에 노출되는 환경특성이 있어 일반적인 식물은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버드나무류는 공통적으로 지하부를 발달하거나 지면에 납작 엎드려 기어 다니듯 자라고 있습니다. 백두산 정상부는 고위도 지방의 극지 툰드라와 환경적으로 유사한데요. 툰드라는 산림한계선으로부터 극지에 이르는 한랭한 지역으로 지하에 1년 내내 녹지 않는 영구동토가 위치해 있습니다. 북극 툰드라에서 자라는 북극버들, 북극콩버들이 형태적으로나, 생태적으로 백두산의 콩버들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버드나무류가 다양한 환경에서 번성하는 이유
이렇듯 버드나무류가 지구의 다양한 환경에서 번성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대표되는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버드나무류는 암수가 다른 자웅이주 식물입니다. 암수가 한 그루인 자웅동주 식물에 비해 자가생식 확률이 현저히 적기 때문에 근친에 의한 유전적 취약성을 떠안고 가지 않아도 됩니다. 또 버드나무속 식물은 종간에 잡종이 많이 일어나는데요, 이러한 유성생식 능력은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갖게 하며 다양한 환경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게 됩니다. 버드나무 종자에는 솜털이 달려 있는데 이것은 바람을 타고 모주(어미나무)를 떠나 멀리 확산될 수 있습니다. 마치 민들레 씨앗에 관모가 있어서 멀리 이동하는 것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
종자에 의해 멀리 확산 될 수는 있지만 종자의 생명력은 단지 며칠 동안만 이어집니다. 발아하기 적합한 곳에 빨리 안착하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어 버리게 되지요. 한 해에 수많은 종자를 생성하지만 뿌리를 내리고 어른나무로 자라는 개체는 1%도 안 됩니다. 버드나무류는 생존을 위해서 유성생식 이외에 무성생식을 하기도 합니다. 눈이 있는 줄기나, 가지를 꺾어 흙 속에 꽂으면 쉽게 뿌리를 내리며 새로운 개체로 생장하게 됩니다. 자연에서는 부러진 가지나 줄기가 물 흐름을 타고 먼 거리로 이동하여 정착하기도 합니다. 또 수분 스트레스에 강하여 침수되더라도 오랜 시간 동안 견딜 수 있으며 침수에 의해 맹아발현이 촉진되는 수종도 있습니다.
◇다양하게 활용되는 버드나무류
요즘은 사람이 먹기 힘든 곡식의 껍질 등을 현대화된 정미 기계로 분리합니다. 반면 예전에는 사람이 일일이 선별해야 했지요. 그 당시 유용하게 활용된 도구가 바로 ‘키’ 였습니다. 곡식을 얹고 위 아래로 흔들어 선별하는 방식으로 이를 수 차례 반복하기 위해선 재료가 내구성도 있으면서 가벼워야 했습니다. 또 만들기도 편해야 했지요. 이런 기능에 적합한 게 바로 키버들의 줄기였습니다. 키버들은 또 ‘고리버들’ 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식물 이름에 접두어 ‘개’ 자가 붙을 경우 대부분 인간에게 쓸모가 없거나, 야생하는 것에 붙이는데요 ‘개키버들’ 은 ‘키’ 나 ‘고리’를 만드는데 부적합하여 붙여진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버드나무를 의학적으로 활용한 역사는 꽤 오래됐습니다. 약 2,500년전 그리스의 학자인 히포크라테스는 버드나무 껍질이 진통, 해열에 효과가 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버드나무 껍질에 있는 살리실산 성분이 앞서 언급한 효과를 나타내지만 pH 2.4로 강한 산성물질이며 위장장애를 일으키고 설사를 유발하기에 섭취가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18세기 독일 바이엘사의 화학자 펠릭스 호프만이 조팝나무류에서 추출한 살리실산을 아세틸화해 합성물질을 만들면서 부작용이 크게 감소되었습니다. 이 물질이 그 유명한 아스피린입니다. 현재는 통증 억제 역할로 사용되기보다 혈액순환 장애 개선 등에 주로 사용되고 있지요.
버드나무류는 수명이 짧고 생장이 빠른 식물입니다. 정부는 버드나무류의 생육특성을 감안해 나무 나이가 15~25년 될 때 바이오연료 공급 목적으로 활용되는 주요 수종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버드나무류는 인류 문명과 함께한 식물입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버드나무류에 숨겨져 있던 유용성의 발굴이 기대됩니다. 버드나무류는 미래에도 인류에게 주목 받는 식물로 자리 매김할 것입니다.
이창우 국립생태원 야외식물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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