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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 중] 민주콩고의 디지털 민주주의 ‘실험’… 첫 평화적 정권교체 가져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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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 대통령 선거… 2년 미뤄지다 결국 실시
18년째 장기집권 카빌라, 논란 속 전자투표 도입
부패ㆍ독재 염증에 야권 우세… 부정선거 우려 여전
아프리카 중부 내륙의 콩고민주공화국(이하 ‘민주콩고’)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아픈 역사’를 지닌 나라다. 제국주의가 아프리카 대륙을 휩쓸던 1878년 벨기에의 통치를 받기 시작해 1908년 식민지로 공식 편입됐고, 이로부터 다시 반세기가 지난 1960년에야 독립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역사도 국명이 무색할 만큼,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혼란의 와중에 권력을 쥔 이는 1965년 군부쿠데타를 일으킨 ‘모부투 세세 세코’였는데, 30년 이상 철권통치로 집권하다가 1997년 반군 출신 로랑 카빌라의 쿠데타로 축출됐다.
하지만 카빌라의 반대 세력 제거 과정에서 새로운 반군이 형성됐고, 그 결과 무려 500만명의 사망자를 낳은 ‘콩고 내전’(1998~2003년)이 시작됐다. 2001년 카빌라가 암살된 뒤에도 권력은 그의 아들 조지프 카빌라(47)에게 승계됐다. 아들 카빌라는 내전을 끝내며 출범한 과도정부 대통령에 오른 뒤, 2006년과 2011년 두 차례 대선 승리를 거쳐 지금까지 18년째 장기집권 중이다. 그러나 두 번의 대선 모두 부정선거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독재자의 ‘이름’만 바뀐 셈이다. 다시 말해 민주콩고는 단 한 번도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독재자 대통령, 충성파 앞세워 ‘상왕’ 꿈꾸나
이처럼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민주콩고에서 2년간 미뤄졌던 대선이 오는 23일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다. 사실 2011년 재선된 조지프 카빌라 현 대통령의 임기(5년)는 2016년 12월 19일로 끝났다. 그런데 그 해 11월 17일로 잡혔던 대선을 정확한 유권자 수 미집계,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무기한 연기했고 이는 격렬한 퇴진 시위를 불렀다. 정부는 2017년 12월 19일을 선거일로 지정했지만, 또다시 약속을 깼다. 대통령 3선을 금지한 헌법 때문에 출마 자체가 불가능한 카빌라 대통령이 ‘대선 연기’ 꼼수로 시간을 벌어 집권 연장의 길을 내보려 한다는 건 누가 봐도 뻔했다. ‘합법을 가장한 쿠데타’라는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도 ‘3연임 포기, 2018년 12월 대선 실시’ 압박을 가하자 결국 카빌라 대통령은 지난 8월 8일 불출마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카빌라가 내준 자리에는 최소 20명이 나섰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크게 볼 때 3파전이다. 우선 범여권연합인 콩고공동전선(FCC)에선 카빌라 대통령이 낙점한 에마뉘엘 라마자니 샤다리(57) 전 내무장관이 후보로 나선다. 대중적 인지도가 낮고, 독립적 권력 기반이나 재력도 없는 그가 후계자가 된 건 그야말로 ‘깜짝 발탁’이었다. 게다가 그는 시위 유혈진압 문제로 EU 제재명단에 올라 국제무대에서 운신의 폭도 매우 좁다. 그러나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의 존 무쿰 음바쿠 비상임연구원은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샤다리를 ‘카빌라 충성파’로 규정한 뒤 “카빌라의 정치적 야심 실현에는 약점이 많은 샤다리가 완벽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카빌라가 향후 헌법 개정을 통해 2023년 세 번째 대선 출마를 노리고 그때까지 대통령 자리에 잠시 세워둘 ‘허수아비’ 역할을 샤다리한테 맡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전문가들 다수는 샤다리 발탁을 ‘카빌라의 정치적 미래ㆍ이익 확보를 위한 마지막 단계’로 본다. △전직 대통령의 재임 시절 범죄에 대한 면책 법안 의회 통과 △행정부와 사법부, 군부 등에 충성파 심어두기 △퇴임 후 정치적 영향력 유지 위해 FCC 내 최대 정당인 재건민주국민당(PPRD)에 총재직 신설 등의 조치를 이미 취했다는 것이다. 알자지라는 카빌라의 이런 행보를 “17년 만에 권좌에서 물러나더라도 자신이 통제하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새로운 정치 계급’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쪼개진 야권동맹… 그래도 여론조사선 앞서
이에 맞서 야권에선 ‘시민과 발전을 위한 참여당(ECIDE)’을 이끄는 마르탱 파율루(62)를 단일후보로 내세웠다. 원래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로는 전국 지지율 1위 정치인 모이스 카툼비(54) 전 카탕가 주지사, 군벌 출신이자 전직 부통령인 장 피에르 벰바(56) 등이 꼽혔다. 하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검찰 수사 중 해외망명(카툼비),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전범 혐의재판(벰바, 1심 유죄ㆍ2심 무죄) 등의 이유로 두 사람의 후보 등록을 불허했다. 그러자 야권 지도자들이 지난달 11일 스위스 제네바에 모여 파율루로 후보 단일화를 한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미 석유메이저 엑손 모빌에서 근무한 바 있는 그는 수도 킨샤사에서 벌인 풀뿌리 운동으로 명성이 높은 인물이다.
그러나 제1야당 민주사회진보연합(UDPS) 대표이자, ‘제네바 회동’에도 참석했던 펠릭스 치세케디(55)가 24시간 만에 반기를 들면서 야권동맹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 나라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존재인 에티엔 치세케디의 아들인 그는 ‘야권 내 경쟁’에서 뜻밖의 패배를 당하자 독자 출마를 선언했다. 곧이어 콩고국가연합(UNC) 당수인 비탈 카메르(59)도 이탈했다. 그리고 약 2주 후, 이들은 ‘치세케디 대통령-카메르 총리’ 카드로 손을 잡았다. 영국 가디언은 “단일화 붕괴로 집권당에 맞서는 야권의 전투력도 크게 약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가정하면, 여전히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음바쿠 연구원은 “카빌라 통치 시기에 종파 간 폭력과 빈곤, 부패, 반정부 여론 탄압 등이 모두 늘었다”며 “국민들은 과거보다 전혀 나아지지 않은, 극도로 빈곤한 삶에 좌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10월 한 여론조사에서 각 후보별 지지율은 치세케디 36%, 카메르 17%, 샤다리 16%, 파율루 8%의 순으로 나타났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5일 이내 결선투표를 하는 것도 야권엔 불리하지 않다.
문제는 부정선거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국은 여당 집회는 허용하는 반면, 야당에 대해선 철저한 단속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현지 선거감시단체는 비판한다. 음바쿠 연구원도 “남은 몇 주간 야당을 ‘악마화’하면서 샤다리를 승자로 만들려는 집권 세력의 노력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야권의 유력후보 파율루와 치세케디의 선거유세 현장에서 지지자와 경찰의 충돌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벌써부터 선거가 유혈 사태로 번질 조짐까지 보인다.
특히 최대 논란 거리는 이번에 처음 도입되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전자투표시스템(TVS)이다. 투표 집계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지만, 선거 결과 조작이나 해킹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선진국도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200여개 종족에 240여개 언어를 쓰고 문맹률은 90%에 달하는 이 나라 유권자 4,600만명 중 상당수는 터치스크린 같은 첨단 정보기술(IT) 장비를 접해 본 적이 없다. 총선, 지방선거도 함께 치러져 투표 과정도 복잡하다. 야권과 시민단체, 미국, EU 등이 한 목소리로 “기존 종이 투표보다 결과 조작에 취약해 신뢰성을 장담할 수 없다”면서 철회를 주장하는 이유다. TVS 공급업체로 한국의 미루시스템즈가 선정된 입찰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도 의혹을 키우고 있다.
선거를 불과 열흘 앞둔 13일 수도 킨샤사의 전자투표기기가 보관된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킨샤사에 쓰일 기기 1만개 중 7,000여개가 훼손되는 사건도 발생했지만 민주콩고 정부는 전자투표 진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민주콩고가 디지털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큰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이를 ‘위험한 베팅’이라고 표현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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