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웹하드 업체와 유착 의혹에… ‘클린센터 도전’ 3개월 만에 멈춰 서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민간 주도 ‘디지털 성폭력 클린센터’ 개점휴업]
1700건 삭제 요청하고 DNA필터링 4만여건 차단
불법영상-저작물 구별 애매… 필터링 조치 풀기도
“저작권보호원처럼 디지털 성폭력 보호원 만들어야”
‘인권보다 지적재산권이 중요한가?’
웹하드 사이트에서 유포되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없애기 위해 동분서주해본 피해자, 그리고 이들을 돕는 활동가가 늘 마주하는 질문이다. 피해자의 신상이 드러나는 불법 촬영 영상이 웹하드 사이트에서 버젓이 거래되고 있는데 항의해 삭제하는 것도 잠시. 며칠만 지나면 파일명만 달라진 똑같은 영상들이 다시 웹하드 사이트들로 업로드된다. 영구 차단을 위해 디지털장의사 업체의 문을 두드리면 한 달에 약 200만원 가량을 내라고 한다. 6개월간 차단을 지속하려면 매월 200만원씩 총 1,200만원이 들어간다. 저작물은 웹하드 업체가 DNA필터링이라는 원천 차단 기술로 철저하게 감시하고, 별도 정부 기관이 24시간 감시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디지털 성범죄 영상 유출 피해자에게는 암담한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추적하고, 지우고, 차단하기 위해 노력한 단체도 있다. 정부는 팔짱을 끼고 웹하드 업체는 나 몰라라 하는 무관심 속에서 어떻게든 저작물에 적용되는 DNA필터링을 디지털 성범죄 영상에도 적용해 근절하겠다는 목적에서다. 2015년 소라넷 문제 공론화를 주도했던 ‘디지털성범죄아웃(DSO)’은 웹하드 사이트의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신고하고 피해자의 법률 지원을 도와왔다. DSO는 지난해 9월 디지털 성범죄 영상 피해자를 돕기 위한 비영리단체 디지털성폭력클린센터(DSAC·이하 클린센터)에 참여해 12월까지 뮤레카, 아컴스튜디오, 지란지교 등 필터링 업체들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웹하드 업체 모임인 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협회(DCNA) 회원사들의 협조를 구해 디지털 성범죄 영상 DNA필터링 차단을 요청하는 실무를 담당했다. 처음으로 디지털 성범죄 영상에 대해 무료로 DNA필터링을 통한 차단이 이뤄진 것이다.
민간단체와 기업들이 힘을 모아 출범한 클린센터는 그러나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에서 김삼화 바른미래당(당시 국민의당) 의원이 제기한 ‘웹하드사와 비영리 민간단체 간 유착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고, 악화된 여론으로 출범 3개월만에 활동이 흐지부지됐다. 지난해 12월 낸 결과보고서에서 DSO는 “웹하드 집중 모니터링으로 66개 웹하드 사이트에서 496명의 웹하드 아이디 제재와 1,700건의 삭제요청, 4만3,523건의 DNA필터링 차단을 했다”고 밝혔다.
◇ DSO-뮤레카-웹하드 협회 처음으로 공조
지금까지도 당시 3개월간 클린센터의 활동은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소유한 뮤레카가 클린센터 활동에 제일 먼저 나선 필터링 업체였고, 이번 양진호 사태의 공익제보자인 A씨가 2016년 뮤레카 법무이사를 거쳤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정부가 디지털성범죄 영상 삭제 지원을 발표하고 문재인 대통령도 불법 촬영물 유통 사이트 규제를 지시하면서 웹하드사들이 자율규제 주장을 위해 클린센터를 만들고, 여성단체를 내세운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다시 말해 웹하드 업체가 불법영상물 유통에 대한 화살을 피하려고 클린센터,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민간단체들에 지원을 하는 일종의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 벌어졌다는 의혹이 실상 클린센터의 단명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에 A씨는 “뮤레카에서 일한 2016년부터 디지털 성범죄 영상이 웹하드 사이트에서 유통되는 데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며 “위디스크 내부에서도 디지털 성범죄 영상만큼은 근절돼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소수 있었고, 동시에 정부와 언론에 DNA필터링으로 디지털 성범죄 영상 차단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고 항변했다. 여기에 저작권 변리사로 웹하드 업계의 구조를 잘 알고 있던 시민단체 오픈넷의 남희섭 전 이사가 주도적으로 클린센터 출범에 나서게 됐다.
여성단체들의 클린센터 참여 의사를 타진했던 남희섭 변리사는 “웹하드협회나 뮤레카는 웹하드 업계가 자정 노력하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이 문제를 바라본 반면, 웹하드 사이트의 디지털 성범죄 영상 근절이 마무리되면 더 심각한 해외사이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까지 활동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이런 운동은 결국 여성단체가 끌어가는 게 맞다는 생각에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와 DSO를 접촉했다”고 말했다. 한사성은 웹하드사와 가까운 인물들의 참여를 미심쩍어하며 참여 제안을 거부했지만 DSO는 참여를 결정했다. 하예나 DSO 대표는 “제안이 들어오기 전 우리가 먼저 뮤레카와 아컴에 DNA필터링을 무료로 디지털 성범죄 영상에 적용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묵살당한 적도 있었기에 무료로 DNA필터링을 해 주겠다는 제안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웹하드사 한마디에 필터링 풀려…수난의 3개월
클린센터가 가동되며 실무를 맡은 DSO는 3명을 고용해 웹하드 사이트에 올라온 음란물을 일일이 모니터링하며 디지털 성범죄 영상으로 추정되는 것들을 추려냈다. 하 대표는 “피해자가 삭제 요청한 디지털 성범죄 영상뿐 아니라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도 지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당 영상에서 추출한 해시값(파일형식이나 해상도를 특정하는 정보)들을 메일로 각 웹하드 사이트에 보내 삭제와 필터링 요청을 하고, 웹하드 업체에서는 DSO가 보내는 리스트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으로 간주하고 일괄 차단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이 작업은 초반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DSO가 웹하드사에 디지털 성범죄 영상으로 추려서 보낸 약 500개의 해시값 목록 필터링 조치 후 저작권자에게 항의가 들어온 것이다. 알고 보니 이 가운데 20여개가 저작물이었고, 어떤 것이 저작물인지 가려낼 수 없기 때문에 웹하드사는 DSO가 보낸 500개 모두의 필터링 조치를 풀었다. 문제가 된 영상은 게시물 제목에 ‘국산’ ‘유출’ ‘몰카’라는 말이 들어갔고, 불법 촬영물들과 흡사한 각도와 상황에서 찍혀 디지털 성폭력 영상으로 보였으나, 사실은 그런 연출을 한 저작물이었던 것이다.
하 대표는 “저작물로 등록된 영상이 주인 없는 피해자 영상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영상물등급위원회에도 무슨 기준으로 판별하고 저작물로 등록했냐고 문의를 했고, 자문위원으로 들어가 있는 여성가족부에도 도움을 요청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DSO는 아예 모니터링 때 ‘성폭행 영상처럼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추려냈으나 이중에서도 또 저작물이 발견돼 나중엔 한국에서 불법 음란물 기준인 성기 노출 유무로 영상을 걸러냈다. 동시에 이들은 피해자 신고를 받은 확실한 디지털 성범죄 영상에 대한 DNA필터링을 진행했고, 헤비업로더를 추적해 디지털 성범죄 영상 5,000여건을 포함해 2만6,000여건의 음란물을 웹하드에 업로드한 헤비업로더 3명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활동 두 달만에 ‘웹하드 업체 유착’ 의혹 터져
하지만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에서 터진 웹하드사-클린센터 유착 의혹은 활동에 치명적이었다. 클린센터와 웹하드업체 유착 의혹의 주요 근거로 DSO가 외부자금을 지원받는다는 점과 모니터링 대상인 웹하드 사이트에서도 여전히 디지털 성범죄 영상이 업로드 되고 있다는 점이 제시됐다. 남 변리사는 “종일 음란물을 보며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가려내야 하는 3명에 대한 인건비로 사비를 털어 활동기간 1,000만원 가량을 DSO 계좌로 보냈다”고 말했다. 하 대표는 “나머지 상근자들은 최저시급을 간신히 받거나 무급으로 자원봉사했다”라며 “음란물을 보며 증거물 작업을 한 모니터링 요원들은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는데, 웹하드 업체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시각은 너무 억울했다”고 말했다. 또한 필터링이 이뤄진 웹하드에서 디지털 성범죄 영상이 나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하 대표는 “예시로 제시된 영상은 모두 저작물로 등록된 웹하드사의 제휴영상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입장문까지 낸 DSO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국정감사의 파급력은 컸다. 피해자들의 연락도 줄어들고 웹하드 업체의 공조 수준이 떨어져갔다. 하 대표는 “웹하드사 측은 처음엔 무제한 DNA필터링을 해 주겠다 약속했다가 저작물 문제가 터진 후에는 피해자 영상에 대해서만 DNA 필터링을 한다고 했고, 국정감사 이후에는 피해자 10명까지만 DNA필터링을 해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말 결과보고서를 낸 이후 클린센터는 현재까지 개점휴업 상태고 DSO도 많은 상근자가 단체를 떠났다. 이달 중 DSO는 여성가족부 지원으로 디지털 성범죄 영상 차단 방법을 정리한 매뉴얼을 엮어 출판, 시민단체들에 배포할 예정이다.
DSO측은 ‘웹하드 업체를 잡기 위해 웹하드사와 손을 잡은 것’을 비판하는 시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클린센터를 통해 DNA필터링 요청을 직접 하면서 웹하드업체가 우리가 요청한 영상을 삭제하지 않는 이유, 정부 기관들의 역할을 자세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하 대표는 “디지털 성폭력 피해는 생명의 문제인데 생명보다 재산에 더 높은 가치를 둘 수 있나”며 “앞으로 정부가 저작물을 보호하는 저작권보호원처럼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 보호원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박주희 기자 jxp939@hankookilbo.com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