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아하!생태!] 90% 넘는 식물과 공생관계… 곰팡이 없으면 푸른 지구도 없어요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곰팡이(진균ㆍfungi)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무엇일까요? 더럽다, 징그럽다와 같은 형용사가 많을 겁니다. 우리에게 진균은 이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로 굳어져 있는데요. 이유는 아마도 어릴 때 욕실에 피어있는 곰팡이를 보거나 부패해 곰팡이가 낀 음식쓰레기의 냄새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냄새를 피우면서 물질을 부패시키는 이러한 기능이 있기 때문에 진균은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더욱이 우리 인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많은 혜택을 주고 있지요.
◇지구 어느 곳에서나 살고 있는 곰팡이
진균은 습기가 있는 축축한 곳이라면 어디든 정착해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하나의 세포 즉, 단세포로 구성된 효모와 같은 형태로 존재하기도 하며, 여러 개의 세포가 연결된 버섯과 같은 다세포 생명체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실 버섯은 균사라고 하는 진균 세포의 연속체이자 중합제로, 균사가 점차 중첩되고 두꺼워지며 위로 자라서 버섯이 되어가지요.
진균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지구상에 넓게 퍼져 다양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균은 생태계 내 무게나 부피 측면에서 땅속이나 바닷속 식물과도 비교해 상당한 양의 생물량(biomass)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 역시 간과되어 있는데요. 이 진균의 주된 역할 중 하나는 바로 분해자(decomposer)라는 겁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고분자 물질(분자량이 큰 화합물)은 보다 작은 저분자물질(아미노산이나 탄소 등 분자량이 작은 화합물)로 분해되는데, 그 물질이 쪼개지는 과정에서 매우 주도적인 역할을 합니다.
예컨대 곰팡이는 소나무의 거친 나무껍질(수피)이나 나뭇잎(침엽)을 구성하는 셀룰로오스와 리그닌 등의 분해를 주도하는데요. 이렇게 분해된 잔해물을 통해 다른 생명체들은 대사작용으로 에너지를 얻습니다. 물론 곰팡이도 이 분해과정에서 에너지를 얻고요. 다른 점은 다른 곤충이나 초식동물은 자신의 내부에서 소화효소를 분비해 소화과정을 진행하는데 곰팡이는 다양한 소화효소를 외부로 분비해 소화합니다. 이 효소를 통해서 복잡한 구조의 유기물을 분해해 영양분을 획득하고 나머지는 자연으로 돌려보냅니다.
생명체가 유지ㆍ생장하는데 있어서 영양분은 절대적입니다. 식물도 영양분을 필요로 하는데 토양이나 대기 중에서 손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많은 영양분은 물에 잘 녹지 않는 복합체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식물은 분해자나 공생자를 통해서 제공되는 영양분이 필요하고, 이 영양분은 주로 식물의 뿌리를 통해서 흡수됩니다.
질소는 식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양분 중에 하나입니다. 질소는 대기 중에 풍부하지만 식물이 바로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대두 같은 콩과식물에서는 질소고정세균을 통해서 대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식물은 질소를 이온형태로 갖고 있는 암모늄이온과 같은 형태나 공생균(symbiotic funig)의 일종인 균근균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습니다.
진균은 단백질을 대사하고 무기형태의 질소를 배출해 식물의 뿌리가 이를 쉽게 흡수할 수 있게 만듭니다. 또한 육상 생태계에서는 땅 위나 땅 속에 있는 낙엽이나 나뭇가지 등을 저분자물질로 분해해서 다시 식물이나 다른 생명체에게 전달합니다.
지구상 식물의 약 90% 이상은 진균과 공생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류의 진균들을 앞서 언급한 공생균이라 통칭하는데요, 그 중에서 특히 식물의 뿌리에서 특별한 공생관계를 맺는 균류를 균근균이라고 합니다. 이 공생관계는 상호이익이 되는데요, 균근균은 토양으로부터 식물의 생장에 필요한 양분을 전달하며, 식물로부터 광합성 산물인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제공받습니다. 또 다른 형태의 공생관계로 진균과 조류(algae)가 같이 사는 공생 생물체인 지의류가 있습니다. 진균은 조류에 피난처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광합성을 통해 생성된 에너지원을 획득하게 됩니다. 사실 옛날 잡채에 고명으로 올려졌던 석이버섯은 실은 버섯이 아니라 지의류입니다. 요새는 그 자리를 목이버섯이 차지했지만요. 석이버섯은 엄밀히 말해 버섯이 아니니까 학문적으로는 “석이”로 지칭하는 게 맞습니다. 이 같은 지의류는 매우 느리게 자랍니다. 그리고 환경변화에도 취약하지요. 그래서 지의류의 다양성은 대기의 오염정도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생물 지표로도 사용됩니다.
◇동물들의 먹이와 감염원의 역할
인간을 포함해서 진균의 일부 또는 전체를 음식으로 사용하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초식성 동물 중 일부는 식물성 먹이가 부족할 때나 진균이 많이 발생하는 계절에 진균을 먹이원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 순록과 같은 동물은 먹이의 상당량을 진균으로 대체합니다. 극지방에 분포하는 순록은 나뭇잎을 얻지 못하는 겨울 동안 대부분의 먹이를 지의류로 대신합니다. 또한 호주의 긴코쥐캥거루와 같은 포유류는 버섯을 주 먹이원으로 삼고, 민달팽이 같은 여러 무척추 동물 역시 진균을 먹이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곰팡이는 다른 생명체에게 병을 일으키는 역할을 합니다. 식물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병을 발생시키며 또한 독성 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종도 있어 꽤 위험한 편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식물병원균으로 벼에 발병하는 벼 도열병이나 옥수수 깜부기병 그리고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감자역병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동물에게 있어서는 우리에게 몇 년 전 큰 뉴스거리였던 항아리곰팡이병이 있습니다. 주로 양서류에서 발생해 대상 동물의 피부에 침입, 피부호흡을 하지 못하게 함에 따라 양서류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병원성 진균의 생장과 확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온도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전 지구적으로 온도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균류가 서식하기 적당한 습도 또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에게 부정적인 병원성 진균들은 시간이 갈수록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곰팡이의 위기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지구 생태계에서 진균처럼 다양한 역할을 하는 생명체도 많지 않습니다. 미국 환경단체 어스와치는 2008년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생명체를 5가지 선정했는데 그 중에는 놀랍게도 진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타의 잘 알려진 생명체들을 뒤로 하고 진균이 선정된 것은 분해와 공생 같은 중요한 생태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기가 우리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것처럼 진균이 분해와 공생을 통해서 우리 지구를 그리고 거기에 속한 생명체를 지탱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기 어렵겠지만 지구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 진균도 기후변화와 인간에 의해 멸종되어가고 있습니다.
1995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화학자 파울 크뤼천은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개념을 2000년에 처음으로 주장했습니다. 인간이 원인이 되어 지구환경 체계가 급격하게 변하게 된 현재 시대를 칭하는 것입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국한된 범위에서 경작이나 벌채 등을 통해서 환경을 변화시켰지만 이제는 그 규모와 충격이 전 지구적이며, 토지이용의 변화, 기후변화, 질소의 침적 그리고 생물종의 비자연적 이동과 생물다양성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진균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약 150만종의 진균이 있다고 추정합니다. 그 중 우리가 연구한 건 얼마나 될까요? 약 7%정도에 불과합니다. 미지의 93%의 진균은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으며 더욱이 이 진균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특히 식물종이 멸종되면 그 식물과 특이 관계를 맺던 진균도 사라지게 됩니다. 아직도 많은 균류가 확보되거나 학술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상태를 감안할 때 전 지구에 걸친 생물다양성의 감소는 위급한 실정입니다. 이제라도 식물과 동물만큼이나 균류의 다양성 감소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진균의 역할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도 있습니다. 자연을 파괴하고, 이용하고, 착취하는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라 현재의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생물들과 함께 협력하며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진정 호모 사피엔스(현명한 인간)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주경 국립생태원 생태기반연구실 전임연구원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