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완전범죄는 없다] 장례 뒤 화장까지 했는데... 전화 너머로 들리는 죽은 자의 목소리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31>강서 무속인 보험사기 사건
40대 무속인이 돌연 사망했다. 죽기 두 달 전 보험을 들어뒀다. 보험금은 30억원이 넘었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구나, 흘려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조금씩 그에 대한 정보를 캐갈수록, 의심을 부르는 냄새는 짙어만 갔다. 어쩌면 보험금을 노린 자살일 수도 있었고, 또 다른 살인이 연결돼 있을 수도 있었다.
서울경찰청 장기미제팀으로 2012년 4월 제보가 접수됐다. 발신자는 D보험사. 보험료를 내던 고객이 갑자기 집에서 쓰려져 숨졌다. 그는 죽기 전 딱 두 달치 보험료를 냈다. 그 대가로 보험사는 유족에게 무려 33억원에 달하는 보험금을 줘야만 했다. 그런데 뭔가 미심쩍다는 게 보험사 주장이다. 한 마디로 보험사기로 보인다는 얘기, 그러니까 수사를 좀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보험사는 일단 가입한 보험 자체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33억원짜리 생명보험인 만큼 매달 내야 하는 보험료는 124만원에 달했다. 몇몇 유명인이 아닌 바에야 사망자와 같은 무속인이 감당하기에는 사실 무리가 있는 액수다. 게다가 그 같은 고액보험에 가입하고는 고작 두 달 만에 사망. 보험사기로 의심 가능한 게 아니냐고 했다. “저희도 당연히 자체 조사를 했죠. 현장에도 나갔고요. 그런데 시신은 이미 한참 전에 화장을 했더군요. 구체적인 정황이나 증거는 물론 없습니다. 하지만 ‘뭔가 감춰진 게 있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이렇게 연락을 드립니다.” 보험사 직원의 말에는 답답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보험사기 수사 경험이 많은 강윤석 경위(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수사팀장)와 유영수 경사가 사건을 맡았다. 보험사에서 전한 사건 자료를 훑어보는 것에서 수사는 시작됐다. ‘사망자 44세 무속인 안모씨. 2012년 11월 24일 보험 가입. 같은 해 12월 31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에서 뇌출혈의 일종인 지주막하출혈로 사망. 보험금 수령 대상자는 안씨의 모친과 부친.’
“먼저 여러 가능성을 떠올려봤습니다. 기존에 경험했던 사건을 가지고 유추를 해보면, 안씨가 가족을 위해 보험금을 남기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음에 이를 숨기고자 했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자살을 한 경우 보험금 지급이 안 되니까요. 이전에도 그런 사례들은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례 절차가 눈에 거슬렸다. 안씨는 사망 다음날, 장례식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화장됐다. 그것도 시신 검안을 받은 병원이 아닌 인근 작은 장례식장에서였다. 유족들이 장례식을 안 할 이유가, 굳이 화장을 하기 위해 장례식장을 옮길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서류상 분명 보험금을 받아갈 안씨 부모는 화장을 하는 자리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확인해 보니, 부모는 딸이 죽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
부모 없는 장례식장에는 세 명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친언니(당시 47), 남자친구 김모(41)씨, 지인 최모(42)씨. 그 중 최씨는 마침 D보험사에서 일하는 보험설계사였다. “말하자면 이들이 이 사건에 등장하는 ‘주요 등장인물들’이었던 거죠.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왜 그렇게 황급히 시신을 화장해야 했는지 알아보자, 그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언니에게 초점을 맞췄다. 죽은 이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안씨가 사망했을 때 집에서 119로 전화를 걸어 “동생이 의식이 없으니 출동해 달라”고 신고를 한 당사자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사람을 죽이거나 할, 범죄와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유 경사는 경찰서로 나온 안씨 언니를 보자마자 ‘이 사람은 아니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했다. 마포구 상암동에 살면서 성북구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평범하디 평범한’ 중년 여성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폰 통화내역도 훑어보고, 사건 당시 위치도 파악해봤지만 역시나 의심스러운 정황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수사는 더뎠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수사에 들어간 지도 어느새 두 달이 지났다. “반장님 지금 여기 보문역입니다. 언니가 지하철역에서 공중전화로 어디엔가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별다른 단서가 나오지 않으면서 수사팀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언니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굳이 공중전화를 쓴다고?’ 뭔가 뒤가 구린 구석이 있는 게 분명하다 싶었다.
강 경위가 통신사로부터 공중전화 통화내역을 받아왔다.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만큼 통화 내역에 등장하는 이들도 몇 명 안 됐다. 그 중, 안씨 언니가 통화를 한 이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남성 A씨, 광주 월산동에 살고 있었다.
수사팀이 광주로 급파됐다. A씨 통화내역부터 뒤져봤다. 1월 초에 휴대폰을 개통한 뒤 그 달 중순 뜬금없이 도시가스공사에 전화를 건 기록이 남아 있었다. 공사에 문의하니 “해당 번호로 가정집에 도시가스를 설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군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A씨는 원래 식당을 운영하면서 광주에서 죽 살던 사람이고 최근에 이사한 적이 없던 걸로 파악이 됐거든요. 도시가스를 설치할 필요가 없었단 말인데, 왜 그런 전화를 했을까요?” 공사에선 다행히 통화내용이 남아 있다고 했다. 통화 내용을 들여다봐야 했다.
뜻밖이었다. 통화를 한 사람은 A씨가 아니었다. 여성, 그것도 강 경위와 유 경사가 모두 아는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2월 마지막 날에 숨진 안씨, 그가 1월 중순에 가스공사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A씨는 “친해진 손님이 신용불량자가 됐다면서 휴대폰 명의를 빌려달라고 했다”고 했다. 그 친해진 손님이 안씨였다. 혹시나 해 맡긴 음성 분석도 역시 ‘같은 사람 목소리’라는 결론을 전했다.
“죽은 건 사실이잖아요. 시신은 화장이 됐고, 사망진단서도 있고 검안서도 분명 있었어요. 그런데 정작 안씨는 멀쩡히 살아서, 도시가스를 설치해달라는 전화를 걸었단 말이죠.” 가능성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 시신을 가져다 자신인 것처럼 속인 것. “살아 있다는 게 확인됐으니, 안씨를 찾아야 했습니다.”
수사팀은 즉시 가스공사가 도시가스를 설치해준 곳으로 향했다. 집 앞에서 주차 문제를 핑계 삼아 초인종을 눌렀다. 안씨가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예상대로 안씨는 그곳에 살고 있었다.
안씨는 보험사기 혐의를 순순히 인정했다. “건물(경기 평택시)을 짓다 보니 빚을 지게 됐고, 결국 사채까지 끌어다 쓰면서 급전이 필요했어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다른 보험사에도 보험을 가입해 1억원을 이미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 대신 화장된 시신에 대해선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인터넷에서 모르는 사람한테서 시신을 샀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인터넷 사이트가 어디인지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있지도 않은 사람을 지어내서 말하면서 그 사람 통해서 구했다고 하고.”
강 경위와 유 경사는 안씨가 살인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실제 이를 의심할 정황들이 속속 발견됐다. 우선 안씨가 사건 직전인 2011년 12월 24일과 27일 이틀에 걸쳐 화곡동 집 근처 내과의원에서 언니 이름으로 수면제 14일분을 처방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또 안씨가 다른 사람들을 살해하려 했거나, 살해 연습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파악했다. 피해자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안씨를 대신할 수 있을, 40대 동년배 여성이었다.
조선족 백모(당시 47)씨는 2011년 12월 21일 안씨 지인 박모(당시 32)씨 소개로 파출부로 일하기 위해 안씨 집을 찾았다고 했다. “거기서 (안씨가) 보약이라고 준 음료를 마셨는데요, 마시고 나니 어지럽기도 하고 몸이 안 좋아서 파출부 일을 하지 않기로 하고 일당만 받고 나왔어요.” 노래방 주인 송모(당시 42)씨도 마찬가지 아찔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송씨는 노래방 손님으로 찾아와 갑자기 친해진 안씨 집에 같은 달 26일 찾았다가 녹차를 마시고 깊은 잠에 들었다 다음날 깨어나 귀가했다고 했다.
안씨가 사망신고 하루 전날인 2011년 12월 30일 평소에 잘 가지 않던 영등포역에 갔던 사실도 경찰의 의심을 키웠다. 영등포역은 서울역과 함께 노숙인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문득 강 경위 머릿속에는 시신을 염했던 장례지도사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상한 게 죽은 사람 발이 너무 거칠고 더러웠어요. 꼭 맨발로 다니던 사람 같았는데, 무당이라 작두를 타서 그런가 싶었죠.” 영등포역 노숙인을 관리하는 관할 지구대에서도 ‘2011년 연말 전후로 여성 노숙인 한 명이 사라졌다’는 말을 전했다. 사라진 노숙인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맨발로 다니곤 했다”고 했다.
경찰로서는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안씨가 살인을 했다는 쪽으로 정리를 하니, 사건의 퍼즐이 딱딱 들어맞았다. 안씨 언니는 안씨가 사망한 것처럼 119에 신고한 뒤 병원에서 안씨 이름 시신검안서를 발부 받고 시신을 화장하는 역할을 맡았다. 남자친구 김씨는 ‘이제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된’ 안씨 도피를 도왔다. 처음에는 안씨를 강원도로 데려가 몸을 숨기게 한 뒤, 광주로 함께 내려갔다. D보험사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던 최씨는 안씨가 고액 보험에 가입하도록 도왔다. 애초에 빚에 쫓기고 있던 안씨가 33억원에 달하는 고액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던 건 최씨가 손을 써준 덕이다. “이 사람들 모두 안씨가 보험금을 손에 넣으면 1억~2억원씩 나눠 먹기로 약속까지 했더군요.” 경찰은 안씨에게 살인ㆍ사체유기ㆍ특별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를 적용해 검찰로 넘겼다.
2012년 1심 법원은 안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다른 사람 시신을 본인으로 속인 점은 인정되지만, 직접 살인을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2심도, 대법원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살인은 무죄였다. 강 경위는 당시를 떠올리며 “안씨 이름으로 화장이 됐던 그 시신은, 과연 누구였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진실을 알고 있을, 안씨는 내년 출소가 예정돼 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