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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 입고 모인 유치원 원장들… 세무조사 카드까지 꺼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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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행동 여지 남긴 한유총 토론회
정부 정책 시행땐 어떻게 하나
스티커 설문에 폐원이 압도적
# 정부, 세무조사 카드까지 꺼내
집단행동땐 공정위 조사 방침
전방위 압박 역효과 우려도 나와
“초상집에 와서 무슨 얘기를 하라는 거에요? (말해도) 아무도 몰라주는데….”
30일 오전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 대토론회’에서 만난 유치원 원장 A씨는 ‘어떻게 왔냐’는 기자의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그를 비롯해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유치원 관계자들은 모두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힘을 잃은 사립유치원의 현실에 일종의 ‘상복(喪服)’을 입고 ‘셀프 조의’를 표하러 온 것이라 했다. 토론장을 오가는 참가자들의 어두운 표정은 토론회 플래카드에 담긴 ‘(사립)유치원 120년 역사의 자부심’이라는 글귀와 대비됐다.
이날 토론회는 ‘비리 사립유치원’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른 뒤 처음으로 열린 한유총의 대규모 행사로 주최측 추산 약 5,000명의 유치원 원장ㆍ설립자들이 참석했다. 명목상 토론회라지만 비공개로 진행되는데다, ‘유치원 당 반드시 2명 이상 참석’하도록 지도부가 독려를 한 터라 이날 행사는 사실상 집단행동을 결정하기 위한 총회가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듯 박수진 한유총 언론홍보이사는 “오늘은 폐원ㆍ모집중단 등 집단행동 여부를 다루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결정은 개별 원장들의 개인적 선택에 맡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론회에서는 ‘유치원 회계 투명화를 위한 구분 경리제도 도입방안’, ‘박용진 3법(유아교육법ㆍ사립학교법ㆍ학교급식법 개정안)’ 등과 관련해 전문가 강의가 있은 후 전체 참가자가 토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참석자들도 여론의 역풍을 의식한 듯 최대한 자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정부에 대한 불만이 얼굴 곳곳에 묻어났다. 인천에서 25년째 사립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원장 송모(58)씨는 “사립 원장들 자존감이 바닥을 치니 진지하게 폐원을 고려하는 사람도 많다”며 “사립유치원을 위한 재무회계규칙을 제대로 만들어주고 나서 비리를 얘기해야 하는데, 잘못했다고 하면서 맘대로 폐원조차 못하게 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도의 한 사립유치원 원장 B씨도 “감사 결과 공개로 가족이 파렴치한으로 매도되고 있어서 답답하다“고 토로했고, 또 다른 유치원 원장 C씨는 “이미 폐원서류를 받고 원아모집을 중단한다는 공문도 보냈다”고 했다. 실제 교육부에 따르면 29일 오후 5시 기준 폐원 신청서를 제출하거나 학부모들에게 폐원 안내를 한 유치원은 총 18곳에 달한다. 불과 사흘 전인 26일 9곳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급격한 증가세다. 교육부는 “대부분 운영 악화나 원장 건강 악화 등의 이유로 이번 사태와는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런 추세를 볼 때 내부 동요가 만만치 않음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 이날 행사장 내부에서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과 박용진 3법이 통과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스티커 설문이 진행됐는데, ‘폐원하고 싶다’는 쪽에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스티커가 빼곡하게 몰리기도 했다.
한유총은 이날 명시적으로 집단행동을 결의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하나다’라며 구호를 외치는 등 단결을 강조했다고 한다. 정부와 여론의 압박을 의식하는 듯 하면서도 집단행동의 여지를 남긴 셈이다.
이날 오전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유치원ㆍ어린이집 공공성 강화 관계장관 간담회’에서 한유총을 겨냥해 “정부는 학부모를 위협하는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는 특히 세무조사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설립자나 원장 등의 세금 탈루나 탈세 혐의가 드러나면 국세청을 통한 강력한 세무조사에 착수하겠다는 것이다. 집단행동이 있으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신속한 조사에 나서겠다는 방침도 재확인했다. 학부모 단체들도 가세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한유총 회원 300명이 지난 5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최한 토론회에 난입해 욕설을 퍼붓고 토론회를 중단시킨 것 등에 대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전방위 압박이 오히려 한유총 강경파들의 반발을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기 소재 한 사립유치원 교사는 “일부 지역 원장들 사이에서 수시로 휴원이나 전업 얘기까지 나오고 있어서 교사들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치원 원장 D씨는 "정부가 무조건 목을 죄는 대신 스스로 개선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협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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