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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공금은 원장 옷값ㆍ술값ㆍ기름값… 전국적 ‘판박이 비리’

입력
2018.10.26 04:40
수정
2019.02.12 16:4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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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비리 유치원’ 2086곳 명단 공개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전국 17개 시ㆍ도교육청이 25일 실명으로 공개한 최근 5년(2013~17년) 유치원 감사 결과는 대다수 사립유치원 경영자들이 유치원 재산이 곧 본인 재산이라고 여기며 아무 거리낌없이 개인 금고처럼 사용해왔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날 실명이 공개된 유치원은 총 2,086곳(일부 시ㆍ도교육청은 연도별 중복 적발 시 누적 집계)으로 이중 사립유치원이 1,825곳으로 87.5%에 달했다. 전체 사립유치원이 3월 기준으로 4,220곳이고 감사 결과에 반발해 소송 중인 유치원 일부는 실명이 공개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거의 절반 가량이 최근 5년간 비리로 적발된 셈이다.

◇생활비, 유흥비 그리고 ‘셀프 배당’까지

드러난 내용을 보면 사립유치원은 그야말로 비리백화점이었다. 유치원 공금을 설립자나 원장의 생활비나 유흥비에 사용한 경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서울 문성유치원의 설립자는 자신이 집에서 타고 다닐 차량을 빌리면서 약 5년간 렌트비ㆍ주유비 명목으로 5,000만원 가량을 횡령했다. 경기 화성오산 하늘꿈유치원 원장은 유치원 돈으로 자신 명의 저축보험에 2억7,000만원을 가입했고, 원장이 단란주점에서 사용한 금액(인천 강화 삼성유치원)이나 한의원에서 사용한 비용(인천 미추홀구 그립나라유치원)을 유치원 예산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개인의류와 화장품을 사는데 두 달간 324만원을 써버린 원장(충북 동청주유치원)도 있었다.

유치원 예산에 대놓고 ‘사유재산’ 딱지를 붙인 곳도 있었다. 충북 청주 BK유치원의 설립자는 가칭 ‘사유재산 공적 이용료’ 명목으로 2015년 3월부터 12월까지 매달 300만원씩 총 3,000만원을 임의로 자신의 계좌에 이체했다. 유치원을 개인 재산으로 세운 만큼 설립자에게 건물 이용료 등 일정 수준의 이익을 보장하라는 것이 사립유치원 측의 주장인데, 이곳 설립자 역시 그와 같은 논리로 일종의 ‘셀프 배당’을 준 셈이다.

◇가족 곳간처럼 쓰고, 교원 인건비는 빼돌리고

유치원은 경영자 개인 뿐 아니라 가족들의 곳간이기도 했다. 제주 새순유치원은 2011년부터 2년간 해외 체류중인 원장의 아들에게 통학차량 운전기사 월급 명목으로 2,600만원을 지급했다. 실제 통학차량을 운전한 것은 행정실장인 원장의 남편이었다. 이 유치원은 2016년엔 교사들이 참여해야 할 일본 유아프로그램 체험 연수에 남편과 아들을 보냈다. 경기 남양주 서울유치원은 설립자는 2013년 시설공사 및 교재교구 구입비에 대한 허위서류를 작성해 아버지와 장인의 계좌에 2억여원을 보내기도 했다.

교원 인건비를 횡령하는 경우도 많았다. 인천 햇살유치원은 2013년 교사 3명을 채용하면서 처우개선비를 월급에 포함해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처우개선비는 시교육청의 지원으로 교원 1인당 지원되며 유치원 월급과는 별도로 지급돼야 한다.

전체 4,801곳(3월 기준)의 국공립유치원에서 비리가 적발돼 실명이 공개된 곳은 5% 남짓인 261곳. 사립유치원에 비해 적발 비율도 낮았지만 내용도 출장여비 지급 업무에 소홀하거나, 구매한 물품을 등재하지 않는 등의 다소 가벼운 지적사항이 많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직원이 유치원회계에서 수천만원을 유용하는 등의 비리도 드러났다. 옥천 삼양유치원의 행정8급 직원은 2014년 3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총 138차례에 걸쳐 유치원회계 및 법인카드 통장에서 본인이나 배우자, 언니, 대부업자 등 20여명에게 총 1억3,000여만원을 송금했다. 이 직원은 감사를 앞두고 통장과 회계장부의 잔액을 맞추기 위해 회계장부를 조작하기도 했다.

◇솜방망이 징계 바뀔까

감사 결과에 대한 처분은 대부분 솜방망이였다. 서울의 경우 전체 지적사항 249건 중 시정이나 통보를 제외한 신분상 처분은 132건이었는데, 이중 사립에는 경고 68건과 주의 40건, 국공립은 주의 처분만 24건이 내려졌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실명 공개한 감사 적발 유치원수=그래픽 강준구 기자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실명 공개한 감사 적발 유치원수=그래픽 강준구 기자

각 시도교육청은 이날 명단 공개를 하면서 교육부와는 별도로 자체 유치원 공공성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부산교육청은 교육부가 제시한 5년 주기 종합감사가 아닌 4년 주기 감사를 도입해 유치원 비리를 더 강력하게 관리하고 특정감사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사립유치원에는 ‘유치원급식소위원회’를 설치해 학부모들의 급식 모니터링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광주교육청은 사립유치원 집중 감사팀 7개를 구성해 내년 1월까지 70~80곳을 감사하고, 내년에는 유치원 감사 전담팀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교육청은 일부 유치원들의 원아모집 포기 및 입학설명회 연기 등을 겨냥해 “휴업ㆍ폐원 등 집단행동에 행정조치 등으로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ㆍ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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