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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칼럼] 한반도 탈냉전과 동북아 신냉전

입력
2018.10.23 13:24
수정
2018.10.23 17:41
30면

남북 ‘일민족 평화주의’로는 평화 한계

미중 무역분쟁과 군사대립 주시해야

동북아 신냉전 대비한 안보정책 필요

한때 일본에서 “일국평화주의” 담론이 논쟁의 대상이 된 바 있다. 즉 냉전시대 진보적 지식인들이나 정치가들은 일본이 미국이나 소련의 어느 편에 가담하지 않고, 평화헌법 체제하에서 비무장 중립체제를 유지한다면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현실주의 성향의 식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일국(一國)평화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진정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미일동맹을 유지하고, 자위대의 전력증강을 추진하는 길이 현실적인 방책이라고 주장하였다. 결국 후자의 보통국가화 국가전략이 “일국평화주의”를 대체하여 일본의 안보전략이 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우리 정부에서 발신되는 담론을 듣다보면 “일민족 평화주의”의 경향을 느끼곤 한다. 지난 4월 공표된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의 공동합의문은 양측 간 불가침 합의 준수, 단계적 군축,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 등을 통해 한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할 것을 천명하였다. 10월의 교황청 방문을 통해서도 대통령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냉전체제”를 해체하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하기도 하였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평화통일”의 의무는 성실하게 수행되어야 하며,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은 완화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일관되게 북한과의 대화와 신뢰 구축에 의해 북한 비핵화를 실현하려 하고, 국내외에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있는 노력은 평가되어야 한다. 다만 한반도에 남아 있는 “지구상 유일한 냉전체제 해체”가 설령 이루어진다고 해도,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지역에 진정한 평화가 도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과 중국 간에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상에서 전개되는 전략적 대립, 그에 더해 무역분쟁의 양상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연말 발간된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에 도전하는 수정주의 세력으로 평가하면서, 중국에 의한 남중국해 도서의 군사화와 지정학적 도전을 안보위협요인으로 지적한 바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10월 4일, 허드슨 연구소에서의 연설을 통해 중국이 미국에 대한 경제 침략과 아울러 군사적 도전을 감행하고 있다고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중국을 협력의 상대로 간주하였던 이전 정부들의 대중 정책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987년 체결되어 탈냉전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였던 미러 간 중거리 핵 전력 폐기 조약의 탈퇴마저 선언하였다.

이에 대해 중국은 이미 2015년에 공표한 군사전략서를 통해 아태지역에서의 미국 군사력 강화 및 동맹체제 강화를 우려사항으로 지적하면서, 종전의 대륙지향적 전략에서 벗어나 해양전략 강화를 국방정책의 중요 과제로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남중국해 및 서태평양 해역에서의 해ㆍ공군력 활동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고, 러시아와의 연합군사훈련도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미중 간 전략대립의 심화 속에서 양측 함정의 근접 항행과 같은 우발적 군사 충돌 가능성도 상존한다. 미중 간의 전략적 대립이 격화된다면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와 평화체제 구축과 같은 “일민족 평화주의”의 입장은 설 자리가 좁아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한반도의 탈냉전화와 동시에 동북아의 신냉전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안보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곧 개최될 한미 간 한미안보협의회의(SCM)와 한미군사위원회(MCM) 회의를 통해 미국의 지역전략과 한국의 평화체제 구축 정책이 정합성을 갖도록 밀도있는 협의를 가져야 한다. 경우에 따라 일본, 호주, 인도 및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의 속에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협력의 어젠다를 적극적 다자외교 일환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북한을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의 비핵국제기구에 재가입시키거나, 한중일 협력기구 등에 관여시킴으로써 북한발 불안요인을 완화하는 외교노력도 필요하다. 동북아 신냉전 질서의 도래가 한반도 탈냉전화의 노력에 암운을 드리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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