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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쭉날쭉한 직권남용죄… MB는 모두 무죄, 박근혜는 대부분 유죄

입력
2018.10.08 04:40
5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월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월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법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 등 10명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 지난 5일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앞선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과 블랙리스트(특정 문화ㆍ예술계 인사 지원 배제) 사건 재판에선 대부분 유죄로 보았던 것과 대조되는 결과여서 직권남용 죄와 관련한 법원 잣대가 정확히 무엇인지 혼란스럽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정계선)는 5일 이 전 대통령을 다스의 실소유주로 보아 징역 15년을 선고하면서도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통령 재직 시절 다스의 미국 내 소송을 지원하고 차명재산의 상속세 절감 방안을 검토하는 데 공무원들을 동원한 혐의에 대해 “대통령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가 될 수는 있으나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지시가 외형상 대통령 권한에 속해야 하는데, 소송 지원이나 상속세 절감방안 검토가 대통령으로서 공무원에게 지시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은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압박해 보수단체에 지원금을 지급한 혐의(화이트리스트 사건)로 기소된 김 전 비서실장 등 8명,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에게 청탁해 옛 지역구 사무실 인턴직원을 채용시킨 최 의원에 대해서도 직권남용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역시 부당한 지시 내지 청탁은 존재했지만 “애초 공무원의 직무상 권한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저작권 한국일보]주요 사건 직권남용 혐의 법원 판단_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주요 사건 직권남용 혐의 법원 판단_신동준 기자

법원은 앞서 미르ㆍK스포츠재단 불법 모금 등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 전 대통령이 “정부 수반으로서 모든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직무를 수행하고, 기업체들의 활동에 있어 직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봤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국가 행정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기업 소송에 대해 검토하도록 지시할 직무상 권한이 없다”고 판단했다. 화이트리스트 사건에서는 “비서실ㆍ정무수석실이 다수 법령에 따라 민간에 협조를 요청할 권한을 가지고 있고, 공식 업무자료 및 지휘계통에 따랐다”는 검찰 주장을 “공익적 목적을 제시하지 않은 특정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 요구가 비서실장ㆍ정무수석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기각했다. 한마디로 행위의 불법성이 인정되지만 직무와 무관한 행위이기 때문에 직권남용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무죄 판단 취지다.

이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정확히 직권 내 행위만 대상으로 삼는다면 직권남용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범죄가 거의 없다”거나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처벌하지 말자는 것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최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판결에 앞서 "청탁에 따라 채용 비리를 저지른 관련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도, 채용 청탁을 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불공평할 뿐만 아니라 국민 법 감정에 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고민이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직권남용 자체가 원래 성립하기 어려운 죄라거나, 직권남용 혐의를 확대 적용하면 공무원의 정당한 직무집행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직권남용을 지나치게 넓혀 해석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맛에 맞지 않는 인사들이 전부 처벌될 것이라는 우려가 판사들 사이에 있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 등 고위 공직자 재판에서 직권남용 죄 적용 범위 판단이 한껏 넓어졌다가 좁아지는 등 “일관성을 잃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유사 범죄에 대해 법원 판단이 갑자기 엄격해짐에 따라 ‘사법농단’ 사건 관련자들의 주요 혐의가 직권남용인 것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전직 고위 법관들의 기소가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밑밥’을 깔고 있다는 시각이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법원이 전ㆍ현직 판사들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는 과정에서 이미 직권남용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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