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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도시, 평양의 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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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색, 겨자색, 녹청색… 다양한 파스텔 톤 색으로 단장한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동화 속 도시를 현실로 옮겨놓은 듯한 이곳은 평양 시내 대표 주거 지역인 ‘동대원 구역’ 일대. 알록달록 산뜻함을 입은 이 도시가 평양이라니.
숨 막히는 ‘잿빛 도시 평양’에 익숙한 우리는 최근 드러난 평양의 변화가 놀라울 따름이다. 2005년 동일한 지역을 촬영한 사진 속에서 건물 대부분이 무채색을 띠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물의 외벽뿐 아니라 내부 인테리어에 적용한 색상 역시 다채로운 것을 알 수 있다. 새로 수리한 대형 음식점부터 체육관과 대학 강의실, 심지어 노동당 대회가 열리는 강당까지 하늘색과 핑크색이 찬란하다.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색의 향연은 거리를 달리는 전차와 승용차, 택시에서도 이어지고 무채색 작업복을 입은 공장 노동자들은 원색의 앞치마와 두건으로 색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지난 4월 ‘남북평화 협력 기원 평양 공연’을 다녀온 연예인이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수행한 정치인들 역시 방북 소회의 일성으로 화려해진 ‘평양의 색’을 언급했다. 투박한 체제 선전 구호와 거대 조형물이 거리를 압도하던 평양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2015년 패키지 관광으로 평양을 둘러본 영국의 디자인 평론가 올리버 웨인라이트는 본인이 쓴 책 ‘인사이드 노스 코리아(Inside North Korea)’에서 “이 도시를 걷는 것은 무대 세트를 통과하는 것 같다. 유치원을 연상시키는 파스텔톤 색채 속에 머무르면 체제의 고통과 신념은 가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평양의 색에서 김정은 체제를 유지하고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묻어난다는 주장이다.
채도가 높은 원색에 비해 차분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 파스텔 톤으로 주민들에게 현 체제의 편안함과 만족감을 세뇌시키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 같은 해석에 따르면 평양 시내의 건물의 다양한 색깔은 3대째 권력을 세습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민들의 불평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고안한 고도의 심리 전략일 가능성이 크다.
과연 평양의 변화는 김정은 집권 이후 체제 선전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만들어진 작품일까. 국내 북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강주원 서울대학교 북한생활문화연구단 전임교수는 “김정은 체제 이후 북한이 급속도로 변했다는 시각은 틀렸다. 오히려 2000년대부터 북한의 사회, 경제가 서서히, 꾸준하게 변화, 발전해 왔다는 것이 관련 연구자들의 결론”이라면서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10년간 우리가 완전히 놓치고 있던 사실들이 최근 교류 활성화에 힘입어 뒤늦게 알려지고 있을 뿐”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김정은 집권 전인 2009년 촬영한 동대원 구역 사진을 보면 일부 건물이 핑크와 연녹색으로 칠해져 있는 등 4년 전에 비해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강 교수는 “대북 제재 속에서도 변화의 흐름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정권의 자체 동력 외에도 주거 및 여가 트렌드에 대한 주민들의 자발적 요구와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진단했다.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북한 도시 읽기’를 펴낸 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평양의 변화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임 교수는 “평양은 그동안 남북관계와 무관하게 발전해 왔다. 시장경제 확대로 자본가 계층이 늘어나고, 이들이 사회 불만 세력으로 자리 잡지 않기를 원하는 정권과의 역학 관계가 형성되면서 지속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 같은 발전과 변화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평양이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시각에 대해 임 교수는 “특정 프레임에 갇힌 미디어를 통해 전해진 이미지만으로 그 이면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평양도 사람 사는 도시”라고 말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수행한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방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우리가 북한을 그동안 너무 몰랐구나 하는 반성도 들었다. 북한의 모습이 그전에는 어땠고 실제로 어떤지 우리가 과연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에 의문을 남기고 싶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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