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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좀” 시간 끌고… 측정기에 침 뱉고 “과잉 단속 폭로” 으름장

입력
2018.09.27 04:40
수정
2018.09.27 07:3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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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오후 11시 30분 여의상류IC에서 동작경찰서 교통외근4팀이 음주운전 단속중인 모습 이승엽 기자
8월 30일 오후 11시 30분 여의상류IC에서 동작경찰서 교통외근4팀이 음주운전 단속중인 모습 이승엽 기자

“명절에는 낮에도 음주운전하는 사람이 있어요.”

음주운전 단속경력만 12년인 김영길 서울동작경찰서 교통안전4팀장은 올 추석 연휴에도 거리로 나섰다. 작년 추석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전년보다 하루 평균 8.2건 증가한 60.4건을 기록한 터라 단속에 신경이 더 쓰였다. 김 팀장은 “명절 단속에 걸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차례를 지내고 음복 한 잔 했다고 변명하기 바쁘다”라며 “술을 한 잔이라도 마셨다면 당연히 운전대를 잡으면 안 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김 팀장 얘기처럼 올해 추석에도 음주운전 사고가 이어졌다. 25일 새벽에는 부산 해운대구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134% 상태인 박모(26)씨가 운전하던 BMW 승용차가 인도로 돌진하면서 군인 윤모(22)씨 등 2명을 치었다. 같은 날 충북 청주시에서는 A(26)씨가 몰던 외제 스포츠카를 뒤따르던 B(26)씨의 스포츠카가 추돌해 A씨가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B씨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준인 0.164%였다.

사실 음주운전은 추석이든, 주말이든 때를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크고 작은 사고들. 당연히 이를 막기 위한 단속이 있다. 눈물의 호소부터 반쯤 욕설을 섞은 윽박지르기까지 단속을 피해보겠다는 음주운전자들의 다양한 ‘잔꾀와 술수’가 펼쳐진다. 그들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경찰들의 단속 현장에 한국일보 기자들이 이달 초부터 수 차례에 걸쳐 동행했다.

음주운전자들의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꼼수, ‘시간 끌기’로 양측의 신경전은 비로소 시작된다. 운전자들은 측정을 1분이라도 지연해야 알코올 수치가 낮아진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갖은 핑계를 갖다 댄다.

2일 오전 6시40분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차병원사거리에서 스포츠카를 타다가 음주 단속에 적발된 최모(25)씨가 그렇다. 그는 “처음 단속에 걸려봤다”고 짜증을 내면서 측정기에 짧게 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경찰이 풍선 불 듯 길게 불라고 설득하던 찰나, 최씨는 이내 “전화 좀 하고 불겠다”라며 자리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음주 단속 거부하면 혈중알코올농도에 상관없이 면허가 정지된다”고 경찰이 제지를 하고 나서야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측정에 응했다. 혈중알코올농도는 0.158%, 면허 취소였다.

8월 30일 오후 11시 30분 여의상류IC에서 동작경찰서 교통외근4팀이 음주운전 단속중인 모습
8월 30일 오후 11시 30분 여의상류IC에서 동작경찰서 교통외근4팀이 음주운전 단속중인 모습

경찰은 그나마 지난해 음주측정 간격이 짧아지면서 단속이 수월해졌다고 말한다. 운전자가 측정을 거부할 경우 기존에는 10분 간격으로 3번 협조를 요청하도록 돼 있었는데 지난해 4월 5분 간격 3회로 간격을 대폭 줄인 것이다. 방식 또한 입 안 알코올이 빠져나갈 때까지 20분간 기다리는 것에서 헹굼용 생수를 제공한 후 바로 측정하도록 바꿨다. 경찰 관계자는 “정해진 대기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나중에 운전자가 이의를 제기할 때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예전엔 3회 측정 시도를 하려고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까지 한 자리에 꼼짝없이 대기를 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서만기 동작서 경위는 “시간이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현장에서 근무하는 경찰은 일하기 더욱 수월할 것”이라고 했다.

경찰의 고충은 ‘적반하장’식 폭언 등에서 극에 달한다. 최근 서울 강남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혈중알코올농도 0.077%(면허정지)로 적발된 이모(35)씨는 “전날 밤에 술을 마시긴 했지만 충분한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수치를 믿을 수 없다“며 “경찰이 음주운전한 사람만 잡아야 하는데 생사람까지 잡고 있다”고 고성으로 삿대질했다. 그의 입에서는 진한 술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헬멧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김용욱 강남경찰서 교통과장은 “이렇게 시비 거는 사람은 그나마 양반”이라며 “음주측정기에 숨 대신 담배 연기를 불거나 침을 뱉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만약 경찰이 조금이라도 과한 반응을 보이면 곧바로 ‘상부에 청원을 하겠다’거나 ‘과잉 단속으로 인터넷에 폭로하겠다’는 등의 협박이 돌아온다.

경찰이 궁여지책으로 꺼낸 대응책은 바로 휴대폰 촬영. 공무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는 음주운전자들 행패에 적절히 대응할 증거 자료 기록용이다. 김영길 팀장은 “대원 한 명당 한 개씩 영상 촬영을 위한 스마트폰이 지급된다”며 “단속에 비협조적인 운전자로 보이면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바로 동영상 촬영한다. 번거롭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음주 단속 기준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하다. 현재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는 0.05%. 그런데 실제 단속을 나가면 이보다 낮은 0.03%가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맥주 혹은 소주 한 잔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은 것인데, 엄연한 음주운전인데도 처벌 기준에 미달돼 돌려보낸다. 서울 시내 한 경찰서 교통과장은 “음주는 했지만 음주운전 수치에 미달되는 운전자가 최근 들어 증가하고 있다”며 “음주를 하고 운전했는데 적발이 안 되면 습관화할 가능성이 높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음주 단속 기준을 강화하는 법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2016년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시작으로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2017년),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2018년) 등이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기준을 0.03%(황 의원은 0.025%)로 낮추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냈다. 이 법안들 모두 심사조차 되지 못한 채 지금도 계류 중이다.

이한호 기자
이한호 기자

이런 가운데 음주운전 단속을 거부하고 도주하는 차량에 치여 단속 경찰이 다치는 사고가 빈발한다. 지난 6월에는 광주 광산구 우산동에서 정지 신호를 무시한 채 달아나던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음주운전 단속 중이던 의경이 다리를 다쳤다. 지난해 12월과 2월에도 경북 김천시와 광주 서구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경찰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강용익 동작서 순경은 “멈추라고 유도했는데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가장 위험하다”라며 “달아나는 차에 끌려가지 않도록 음주측정기를 차 안으로 깊숙이 넣지 않는 정도가 사고 예방책의 전부”라고 밝혔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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