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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영 비밀이라 내용 공개 못해” 비싼 등록금에 입 닫은 예술대

입력
2018.09.18 04:40
수정
2018.09.18 04:5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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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경영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므로 공개할 수 없습니다.”

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학생회가 지난달 2일 정보공개 청구를 하자 학교 측이 한 달 만에 내놓은 답의 전부다. 학생회가 공개를 요구한 정보는 ‘예술디자인계열 등록금 사용내역’이다. 학생회장 박성진(23)씨는 “경영상 이유라면 더욱 공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업으로 치면 학생들은 학교운영비의 절반 이상을 등록금으로 부담해주는 ‘최대주주’다. 최대주주에게 경영 정보를 공개 안 하는 기업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건국대만의 얘기는 아니다. 17일 예술계열 대학생 학생회 모임인 예술대학생네트워크에 따르면, 예술관련 학과를 보유한 4년제 대학 141곳 중 105개가 ‘예술대학 등록금 사용내역’ 공개를 거부했다. 중앙대 건국대 이화여대 동덕여대 등은 경영상 이유를, 국민대 추계예술대 한국교원대 등은 등록금 결산 및 회계자료가 없다는 이유를 댔고, 삼육대 중원대 등은 아예 회신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연세대 고려대 등 일부 대학은 정보공개 청구 자체가 막혀있어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이번 청구는 지난달 2일 동시에 진행됐다.

유독 예술학과 학생들이 등록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대놓고 궁금해하는 건 ‘예술계열 차등등록금’이라는 제도 때문이다. 전국 약 23만명에 달하는 예술계열 대학생들은 최저등록금을 내는 인문사회계열보다 적게는 32만8,000원(서울시립대), 많게는 165만원(연세대)을 더 납부하고 있다. 1인당 추가 부담은 한 학기 평균 80만원으로, 이런 차등등록금 1년치를 모으면 3,200억원에 달한다는 게 예술대학생네트워크 설명이다.

[저작권 한국일보]예술대학 등록금. 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예술대학 등록금. 신동준 기자

정작 예술계열 대학생들은 추가 납부한 등록금이 다른 단과대학과 비교해 더 나은 ‘서비스’나 ‘교육 활동’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예술계열 대학생 1만160명을 대상으로 ‘등록금이 교육 여건 등으로 환원되고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은 1.6%에 불과했다. “작업실 같은 공용시설 수준이 형편없는데도, 장비사용료나 전공수업 특강비, 전시비, 실습비 등 추가로 내야 하는 비용이 적지 않다”(동국대 조소과 A씨)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학들은 구체적인 사용내역은 공개하지 않으면서 차등등록금의 근거로 ‘예술계열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예술 교육은 재료비, 시설비 등 비용이 다른 계열에 비해 더 들어가니 등록금을 더 내야 한다는 논리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예술계열 차등등록금은 법적 근거나 비용 산정 근거도 없이 1989년 대학 등록금 자율화 이후 대학들이 마음대로 올려 받고 있는 것”이라며 “관성으로 받아온 차등등록금을 학생들의 교육에 실제 사용하는지 공개해야 하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등록금을 받아가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예술대학생네트워크는 관련 집회를 다음달 6일 서울에서 열 예정이다. 신민준 예술대학생네트워크 공동대표는 “‘깜깜이 차등등록금’은 예술을 하려면 소득이 높아야 한다는 그릇된 인식을 전파하고 있다”라며 “대학들은 등록금 사용내역을 공개하고 높게 책정됐다면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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