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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해외연수 때 ‘비행기깡’... 수백만원씩 꿀꺽

입력
2018.09.27 04:40
수정
2018.09.27 16:59
1면

 실제금액 적힌 E-티켓 대신 여행사 운임증명서로 증빙 

 광역단체 절반 증빙 허술… 시민단체 “외유성 연수 정비를” 

공무원 해외연수 ‘비행기깡’= 그래픽 김경진 기자
공무원 해외연수 ‘비행기깡’= 그래픽 김경진 기자

전국에서 선발된 기초단체 공무원 28명은 지난 2일 행정안전부 산하 지방자치인재개발원이 주최한 ‘제3기 글로벌리더과정 국정과제 정책연수’ 참여를 위해 유럽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11박 13일(2일~14일)간 일정의 해외연수는 지방 공무원들이 독일, 프랑스, 영국의 선진 행정과 시스템을 경험하고 학습할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연수 과정에는 이른바 ‘비행기깡’이라 불리는 공무원 사회의 오랜 부조리가 개입돼 있었다. 종류가 다양한 항공권의 특성, 그리고 실제 항공권을 확인하지 않는 감사기관의 허술함이 빚어낸 비위다. 저렴한 항공권을 구매해 연수를 다녀오고, 증빙은 항공운임증명서로 대신하는 시스템이 국내 항공사와 이를 진행한 여행사를 통해 확인됐다.

여행ㆍ항공 업계를 통해 본보가 확인한 해당 연수의 1인당 견적서에 따르면 지방자치인재개발원측에 제시된 1인당 유럽왕복 항공권 가격은 365만원(인천→프랑크푸르트ㆍ런던→인천). 이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일반석(이코노미) 항공권 가운데 최고가 수준임에도 운임은 별다른 문제없이 그대로 여행사에 지불됐다. 그러나 실제 이 여행사가 항공사로부터 구매한 항공권 비용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170만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출발일에 근접해도 좌석 확보가 용이해 일반 요금보다 비싼 정부항공운송의뢰제도(GTR)로 발권된 항공권도 아니었다. 1인당 차액(약 200만원)을 연수생 전체로 환산하면 5,500만원 가량 부풀려진 셈이다. 이 금액이 실제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거래내역에 드러나진 않지만 관계자들에 따르면 연수단의 부족한 일비를 보충하는데 일부 사용되었고, 여러 비용항목에 나뉘어 반영된 것으로 파악된다.

[저작권 한국일보]기초단체 공무원 28인의 ‘비행기깡’ 사례 그래픽=강준구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기초단체 공무원 28인의 ‘비행기깡’ 사례 그래픽=강준구 기자

본보가 입수한 연수 일정 견적서와 항공운임증명서에 따르면 이 연수 동안 석식(1회당 20유로ㆍ2만6,000원) 7회, 특식(1회당 40유로ㆍ5만2,000원) 5회 등 식비를 포함 1인당 총 682만원이 소요됐고 연수생들의 개별부담 비용은 없었다. 지방자치인재개발원 관계자는 “경비는 연수생 측과 여행사가 협의한 금액으로 우리가 직접 항공권 가격 결정에 관여하지 않는다”라며 “항공권을 따로 제출 받진 않았지만 여행사가 작성한 항공운임증명서를 증빙으로 보유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20년 경력의 한 여행사 관계자 A씨는 “682만원이면 가장 비싸다는 남미 연수를 진행하고도 남는 수준”이라며 “도시간 이동 교통비가 모자라 항공비 차액을 가져온다 해도 정도가 지나친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해외연수의 항공권 등 일부 비용이 실제 소요된 것보다 부풀려 지급되는 등 사실상 ‘용돈벌이’로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여행사와 결탁한 일부 공무원들이 해외연수를 갈 때마다 수 백만원을 챙기고 있다는 진술이 나오는 등 당국의 허술한 증빙서류 확인과 초과 비용 자부담을 회피하려는 경향에 횡령이라 보여지는 행위들이 서슴없이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다. 관광 일색인 엉터리 해외연수에 최근 5년(2012년~2016년)간 지방자치단체에만 3,480억4,000만원의 관련 혈세가 투입되면서도 이 중 일부는 공무원들의 쌈짓돈으로 쓰였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 같은 내용은 본보 보도(8월 23일자 1면ㆍ나라 망신시키는 공무원 ‘턴키 해외연수’) 이후 공무원 연수를 진행했던 여행사 관계자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파악됐다.

 ◇‘비행기깡’, 여행사가 만든 서류면 OK 

공무원 해외연수에서 가장 쉽게 횡령이 이뤄질 수 있는 부분은 항공권이다. 공무원 여비규정에 따르면 숙박비ㆍ식비ㆍ일비(시내 교통비 등 잡비) 등은 공무원의 등급과 출장 지역에 따라 상한선이 정해져 있지만, 항공권과 교통비(국가 간 이동)는 실제 지급된 만큼 주는 실비 개념이다. 문제는 실비 지급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실제 사용된 전자티켓(E-티켓) 등 증빙서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E-티켓은 항공권을 예매하면 이메일로 받을 수 있는 영수증으로 항공 일정과 편명, 좌석 등급은 물론 실제 항공권 구매 가격이 명기되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진짜 정보가 담긴 E-티켓을 내지 않고도 연수 진행을 위탁받은 여행사가 임의로 만드는 ‘항공운임증명서’만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항공운임증명서는 워드 등 임의 문서작성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한 장짜리 서류로 항공운임과 택스(세금) 등을 기입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 여행사가 구매한 금액과 상이할 수 있다. 여행사 대표 B씨는 “공무원 연수만 수 십 차례 진행해봤지만 단 한번도 실제 금액이 적힌 E-티켓을 제출해본 적이 없고 특히 기초단체가 심각하다”라며 “가까운 일본 등 아시아 국가로 가면 몇 십만원 정도 차액이 생기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으로 가면 1인당 100만~200만원까지 차액을 남겨 이를 연수기간 동안 선물 구입 등 경비로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본보가 17개 광역 지자체에 확인한 결과, 실제 발권금액이 적혀 있는 E-티켓을 반드시 증빙하지 않아도 여행사가 만드는 항공운임증명서만으로 증빙이 가능하다고 답변한 곳은 대전ㆍ강원ㆍ세종 등 절반이 넘는 9곳이다. 이들 지자체는 “항공편명과 일정만 잘 적혀 있으면 증빙이 가능하다”라거나 “E-티켓이 없는 경우도 있어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다”라고 답하는 등 증빙에 소홀한 인식을 드러냈다. 하지만 대한항공 관계자는 “개인이든 여행사가 단체로 구매하든 E-티켓은 당연히 발급이 가능하며 1년 이상 지나더라도 확인이 된다”고 말했다. 항공사에 전화 한 통이면 실제 발권 금액을 확인할 수 있지만 지자체들은 이를 지나쳐왔던 것이다.

이 같은 허술한 증빙은 대담한 횡령도 가능하게 만든다. 2016년 5월 서울시 공무원 3명은 이탈리아 베니스 공무국외여행 준비과정에서 ‘비행기깡’으로 620만원을 챙겼다. 상급자인 공무원 C씨는 일반석 왕복 항공권을 88만에 사놓은 뒤 528만원짜리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산 것처럼 항공운임견적서를 만들어 결제해 차액 440만원을 챙겼고, 연수 나흘 전 미리 피렌체에 도착해 개인 경비로 썼다. 함께한 나머지 두 명 역시 88만원에 비행기표를 산 뒤 179만원에 구한 것처럼 꾸며 경비로 사용했다. 이 같은 사안은 1년 뒤 감사원 기관 운영 감사에서 적발됐고, 서울시는 올해 2월에서야 E-티켓 증빙을 의무화했다.

[저작권 한국일보]17개 광역 지자체 항공권 증빙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17개 광역 지자체 항공권 증빙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이중 일정 만들고 용역비도 슬쩍 

심지어 기존 계획된 교통편을 슬쩍 바꿔 차액을 경비로 전용하기도 한다. 2014년 10월 경북 공무원교육원이 주관한 ‘제11기 중견간부양성과정 국외정책연수’를 통해 공무원 80여명 5개팀은 북미ㆍ유럽 등으로 연수를 떠났다. 이 중 북유럽팀(10월6~18일ㆍ12박13일)이 낸 항공운임 지급 신청서를 보면 스웨덴 스톡홀름→핀란드 헬싱키 구간을 스칸디나비아항공을 이용해 각각 51만원(1인당)이 소요된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공무원교육원에 확인한 결과 실제 이 구간은 숙박(2인 1실)이 포함된 실자(SILJA)라인 선박으로 밤에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교육원 관계자는 “교육에 참여한 연수생들이 여행사와 협의해 일정을 바꾼 것”이라며 “크루즈 이동에 식사, 숙박이 포함돼 있어 항공권과 가격이 비슷한데다 전체 여행 경비에서 조정된 것으로 자금 유용은 없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구간은 조식과 미니바가 포함된 중상급 객실인 디럭스가 310유로(40만6,000원ㆍ2인 기준)에 판매되고 있다. 1인당 20만원이면 교통과 숙박이 해결되는 셈이다. 애초 항공권이 51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선박 변경만으로 31만원(51만-20만원)에 숙박비까지 최소 40만원 가량을 남기게 되는 셈이다. 심지어 해당 구간은 당일 항공권을 구매하려 해도 23만원 안팎이면 될 만큼 애당초 항공권 비용도 부풀려져 있다. 경북 지역 여행사 대표는 “스톡홀름~헬싱키 구간은 선박으로 이동하면 시설이 좋은 크루즈를 경험할 수 있어 총 연수경비가 확정된 뒤에도 연수생들이 출발하기 전에 나중에 이 일정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하는 등 북유럽 연수팀은 한번씩 배를 탄다고 보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교통편을 바꿔 비용이 남게 되면 와인을 대접하는 등 특식을 먹는데 쓰인다”라고 말했다.

아예 용역비를 직접 공무원 계좌에 입금하는 경우도 있다. 북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통역 겸 가이드 D씨는 지난해 한 여행사 대표의 지시를 듣고 귀를 의심했다. 중앙부처의 중견간부급 공무원 4명의 연구 겸 연수 진행을 맡은 그는 시내 교통비와 자신의 인건비 등 필요한 경비를 계산해 총 300만원이 필요하다고 적어서 제출했다. 하지만 입찰 후 그가 할당 받은 예산은 800만원 이상이었다. D씨가 “예산이 잘못된 것 같다”라고 묻자 여행사 대표는 “필요한 경비를 빼고 400만원은 리드하는 공무원 계좌로 직접 입금하라”며 “그 분 용돈 쓰셔야 한다”라고 말했다. D씨는 “내 매출이 과대 계산되는데 따른 세금까지도 지급해줄테니 공무원의 계좌로 남은 금액을 입금하라고 했다”라며 “연수가 끝난 뒤 통역한 시간을 늘린 영수증을 만드는 등 증빙서류를 꾸미느라 애를 먹었다”라고 설명했다.

 ◇“일비 현실화 필요”…“엉터리 연수부터 수정” 

이 같은 관행은 경비가 현실에 맞지 않아 어쩔 수 없다는 게 공무원과 여행사 측의 항변이다. 국외여행(연수ㆍ출장 등)시 지급되는 여비는 운임(항공권 등)ㆍ식비ㆍ숙박비ㆍ일비ㆍ준비금(비자 발급비 등) 등 5가지 항목이다. 이 중 일비는 입장료, 현지 가이드비, 시내 교통비 등 다양한 항목에 쓰여진다. 3~5급 공무원이 유럽 연수를 갈 경우 일비는 30달러(3만3,000원)수준이다. 하지만 단체 연수 시 도시간 이동에는 전용버스를 빌려야 하는데 비용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해외여행 전문 여행사 관계자는 “보통 10명만 넘어도 트렁크 등 짐이 많아 48인승 버스를 빌리는 게 일반적인데 기사 인건비를 포함 하루 120만~150만원가량 필요하다“라며 “인원이 많으면 나눠 낼 돈이 적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일비만으론 감당이 힘들어 항공권 가격을 부풀린 뒤 차액으로 나머지 비용을 충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무원 여비 규정은 5년에 한번 심사를 거쳐 조정이 가능한데 현재 일비는 2001년 정해진 이래 17년간 변동이 없다.

하지만 애초 연수 내용이 엉망인데도 일비까지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한 여행사 대표는 “차라리 포상 성격의 연수란 걸 인정하고 보내면서 경비를 쥐어주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말도 안되는 정책 연수를 다녀오면서 일비까지 올리는 것은 지나친 심보”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이은미 팀장은 “연수비가 전부 세금인데 외유성 프로그램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예산을 올리는 일은 국민적 정서와 맞지 않는 일”이라며 “정부가 연수 성격과 목적을 타당하게 만드는 작업을 끝낸 뒤에야 논의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박수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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