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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성추행에 실형… 가혹한 판결일까

입력
2018.09.11 04:40
수정
2018.09.11 07:3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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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탕집서 여성 추행 혐의 기소 

 법원 “피해자 진술 구체적이고 

 피고인 반성도 없어 엄중 처벌” 

 “억울…” 국민청원 25만 돌파 

 판사 “진술만으로도 종종 유죄” 

 법조계 “실형은 상당히 이례적” 

[저작권 한국일보]김경진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김경진 기자

최근 법원이 식당에서 회식 중 옆 테이블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실형 선고를 내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논란이 뜨겁다. 폐쇄회로(CC)TV 등 물증 없이 피해자 진술로만 유죄가 인정됐고, 결백을 주장한 이 남성에게 관련 전과가 없었다는 점에서 ‘가혹한 재판’이라는 지적이 빗발친다. 다만 성범죄는 진술만으로 유죄가 나오는 사례가 종종 있어, 쉽사리 판결을 폄훼할 수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10일 법원 및 피고인 가족 등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부산지법 동부지원 김동욱 판사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그를 법정구속했다. 김 판사는 “A씨가 피해자 엉덩이를 움켜잡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 진술이 구체적이고 그 내용이 자연스럽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는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할 마음도 없어 초범임에도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1월 부산의 한 곰탕집에서 옆 테이블 B씨를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술을 마신 A씨가 식당 현관 근처에서 일행을 배웅하던 중 피해자 B씨 옆을 지나갔고, 이 때 A씨 손이 B씨 엉덩이에 닿았다. A씨 측은 “어려운 자리에 있다 보니 손을 앞으로 모은 것일 뿐 추행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사건 당시 CCTV 영상에는 A씨의 손이 신발장에 가려 보이지 않아 범행 장면을 정확히 녹화한 증거는 없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물증도 없이 진술만으로 멀쩡한 가장을 한 순간에 구속시켰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A씨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청원이 25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이 같은 비판에 현직 판사들은 피해자 증거에 의지하는 판결이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성범죄는 피해자와 가해자 두 사람만 있는 상황이거나 두 사람만 알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양측 진술이 엇갈리면 사건 발생 전후의 정황과 이를 설명하는 두 사람 진술의 일관성, 구체성 등에 기반해 잘잘못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벌금 300만원을 구형한 데 비춰 A씨의 혐의를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법조계에선 성범죄 특성상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점은 수긍한다 하더라도 검찰 구형보다 훨씬 엄하게 실형을 선고한 양형은 이례적이란 의견이 많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최근 3년(2014~2016년) 성범죄 1심 판결에서 실형이 선고된 비율은 18~22%로 집행유예(32~37%)나 벌금형(29~35%)보다 낮다. 여기에는 강간 등 더 중한 범죄나 재범 사례가 포함돼 있어 단순 강제추행 초범이 실형을 받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게 사실이다.

다만, 피고인 태도에 따라 예외적으로 실형이 선고되기도 하기 때문에 판결을 지나치게 부풀려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피고인이 범행을 전혀 반성하지 않거나 상대를 일방적으로 매도했다면 재범 우려 등을 고려해 초범이어도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A씨가 재판 중에 B씨를 ‘꽃뱀’으로 몰아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공소유지를 맡았던 검찰 측 관계자는 “그런 사실은 보고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동부지원 관계자는 “판사 입장에선 가해자와 피해자 중간에서 가해자의 행위와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피해를 감안해 선고했을 것”이라고 경위를 설명했다. 원래 김 판사는 공보판사였으나, 법원은 이번 논란이 불거지자 김 판사 보직을 바꿨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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