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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자 1명당 일자리 1.88개… “내년 졸업 日 대학생 완전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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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가 여름방학 전에 취업 내정
1곳 이상 내정도 많아 회사 골라가
남은 학기 여유롭게 추억 만들기
게이오(慶應)대 법학부 4학년생인 히로베 나오토(廣部尙仁)는 여름방학을 활용해 벤처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이미 6월 1일 구직자들이 선망하는 일본 3대 메가뱅크 중 한 곳에 취업 내정을 받았지만, 직장생활을 미리 경험하면서 다른 업계 분위기도 익히기 위해서다. 내년 3월까지는 졸업논문을 준비하면서 취업활동을 마친 친구들과 해외 여행 등을 다니면서 대학생활의 마지막 추억을 남길 계획이다.
히로베는 “처음부터 원하던 회사에 내정되면서 다른 회사와의 면접 약속을 전부 취소했다”며“주변 친구들은 여러 회사로부터 내정 받아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들이 대졸예정자 채용에 적극적인 걸 보면 경기가 좋아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10년 전인 2008년 리먼 브러더스사태 등으로 인해 고용시장이 얼어붙었던 취업빙하기 때와 다른 분위기라고 했다.
릿교(立敎)대 법학부 4학년생인 이토 요시미(伊藤良美)도 5월 중순 대형 온라인 쇼핑몰 업체로부터 취업 내정 연락을 받았다. 다른 회사로부터도 통보가 왔지만 이 가운데 회사 분위기와 급여 수준, 입사 이후 자기계발이 가능한 곳인지 등을 꼼꼼히 따져 결정했다. 그는 “대부분 대기업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면서도 “상대적으로 업무가 많은 대기업에 비해 근무시간에 대한 재량권이 있는 벤처회사를 선택하거나 학생시절부터 창업에 뛰어드는 친구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도쿄(東京)대 등 국립대와 명문 사립대 4학년생들은 6월 이전 내정 통보를 받는 경우가 흔하다. 최근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외국계 회사나 IT회사, 벤처회사 등 일본 최대 기업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 회원사가 아닌 곳을 중심으로 6월 이전부터 채용전형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 목표가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이들 회사로부터의 내정을 보험 삼아 더 나은 조건의 회사를 찾아 취직활동을 계속하기도 한다. 취업정보회사 리쿠르트커리어의 조사에 따르면, 게이단렌의 채용일정이 시작되는 6월 1일 기준 대졸예정자의 68.1%가 1곳 이상의 기업으로부터 취업이 내정된 상태였다. 두 달 뒤인 8월 1일엔 이 비율이 88.0%에 달했는데,내년 3월 졸업 때까지는 대학 4학년생들은 사실상 모두 취업이 결정되는, 실질적 완전고용 상황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잃어버린 20년’ 마감한 아베노믹스
확실히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중반 이래 계속되어온 ‘잃어버린 20년’시대를 마감한 듯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2차 내각이 출범한 지난 2012년 12월 이후 6년째 경기 확장세가 지속되면서 기업들의 실적 개선, 주가 및 부동산 가격 상승, 고용시장의 일손부족 현상 등이 두드러지면서 일본은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난 달 일본 내각부는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이 개인소비와 설비투자 등의 내수 확대로 1.9%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1분기엔 0.9% 감소했으나 다시 플러스로 돌아선 것이다. 작년 4분기까지 8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일본 경제는 분명 장기불황을 벗어나 안정 성장궤도에 진입해 있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아직까지 일본 국인들의 일상적 씀씀이(민간소비)는 여전히 인색하고, 외국인 투자 역시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지만, 그래서 일본 경제가 과연 체질적으로 전환되었는지에 대해선 비관적 시선도 있지만 어쨌든 경제는 살아나고 있고 그것이 ‘아베노믹스’의 효과란 사실에 대해선 누구도 의심하지는 않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의 경기회복은 통화ㆍ재정ㆍ규제완화 정책의 삼박자가 잘 맞아 들어간 결과”라며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 제조업이 경쟁력을 상당히 잃었지만 정부의 세금 감면 등으로 기업환경이 개선되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권영준 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도 “금리를 고정시킨 한국과 달리 일본 중앙은행은 과감히 금리를 내리는 등 적극적 통화정책을 실시했다”며 “현재까지는 아베의 용감한 경제정책의 효과가 나온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이 체감하는 경제회복의 훈풍은 고용시장에서 먼저 확인된다. 실업률은 5월 2.2%로, 1993년 이후 24년 9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 같은 규모의 경제에서 2%대 초반 실업률이면 사실상 완전고용상태나 다름없다.
이제 일본의 대학졸업예정자들은 취직활동 중에 가고 싶은 기업을 고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구직자에 비해 일자리가 더 많은, 기업들이 오히려 취업희망자들을 모셔가려고 경쟁하는 ‘꿈의 일자리 환경’이 형성된 것이다.
◇”인재 뺏길라” 中企는 1년 내내 상시채용
일본 채용시장의 변화, 특히 기업 간에 인력확보 경쟁이 치열해진 배경은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가 가장 큰 요인이다. 일본의 유효구인배율(구인자 수를 구직자 수로 나눈 수치) 조사 결과가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지난달 31일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7월 유효구인배율은 1.63으로, 197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구직자 1명당 1.63개의 일자리가 있는 셈이다. 내년 3월 대졸예정자를 대상으로 한정한 리쿠르트커리어 조사에선 구인배율이 1.88로 집계됐다. 전국 민간기업의 구인자 수는 81만4,000명, 취업희망자는 43만2,000명으로 기업 입장에선 38만명 이상의 일손이 부족한 것이다.
다만 기업규모와 업종에 따라 구인배율은 엇갈린다. 리쿠르트커리어 조사에서 종업원 5,000명 이상 대기업의 구인배율은 0.37이었다. 대형기업의 경우 세 명이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셈이다. 훈풍이 부는 고용환경이지만 대부분 급여와 사원복지를 잘 갖춘 대형 업체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대기업 입사의 문은 상대적으로 비좁은 편이지만, 채용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감원공포에 늘 떨어야 했던 ‘잃어버린 20년’시기에 비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비해 종업원 300명 미만 기업의 구인배율은 9.91로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일을 찾는 사람은 한 명인데 일자리는 9개가 넘는다는 얘기다. 업종별로는 ▦금융업(0.21) ▦서비스ㆍ정보업(0.45) ▦제조업(1.97) ▦건설업(9.55) ▦유통업(12.57) 순이었다. 그러다 보니인력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관련 업계들은 1년 내내 상시 채용을 실시하는 경우가 확대되고 있다.
◇기업들, 교류모임 등 ‘내정자 단속’ 안간힘
일자리가 늘어나다 보니 이젠 대기업들도 상시 채용에 나설 채비다. 게이단렌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회장은 지난 3일 사견임을 전제로 “2021년 대졸예정자부터 현행 채용일정 지침을 폐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게이단렌은 기업간 무리한 아오타가이(青田買いㆍ입도선매)를 막기 위해 매해 6월 이후 졸업예정자들의 채용을 시작하는 자율 지침을 지켜왔는데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인력부족 심화로 기업간 인재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 지침을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이는 ‘구직자 우위’인 일본 고용시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때문에 일본 정부와 대학 측에선 게이단렌이 채용일정을 폐지할 경우 취직활동의 장기화에 따른 대학교육의 부실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대기업들은 합격내정자들이 다른 기업으로 옮겨가지 않도록 단속에 각별히 신경을 쓰기도 있다. 일본 대기업의 한 인사담당자는 “구인난이 심각해 예전 같으면 채용하지 않을 학생까지 잡아두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대기업들은 내정된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내정자들의 연락망을 만들어 교류모임을 자주 열거나 대학 3학년인 후배들을 자사에 인턴으로 데려오게 해 미리부터 소속감을 높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
실제로 가구업체인 니토리는 학생과 부모에게 회사 내 수당종류와 여성사원의 근무방식 등 자사의 복리후생제도를 정리한 자료를 보내고 있다. 부모가 안심하고 자녀들의 입사를 독려하도록 ‘오야카쿠(親確ㆍ부모 확인)’ 전략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라인(LINE)은 입사 이전 아르바이트를 할 경우 별도의 낮은 급여체계가 아닌 입사 후 연봉을 기준으로 시급을 지급하면서 내정 수락율을 높이고 있다. 취업을 위해 대학졸업을 유예하고 온갖 스펙을 쌓으면서 수십 장의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 입사 후에도 온갖 회사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의 젊은이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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