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단독] 박근혜 정부, ‘위안부’ 책 이유로… 학술서적 해외 출판 지원서 배제

입력
2018.09.10 04:40
수정
2018.09.10 08:18
13면
구독

 

 심사위원들 “한일 관계 악영향” 

 ‘일본군 성 노예제’ 보류 판정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을 일으킨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의 외교 마찰을 우려해 ‘위안부 관련 학술서적’을 해외출판사업지원 리스트에서고의적으로 뺀 정황이 드러났다.

9일 국회 외교통일위 소속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은 2016년 11월23일 진행한 ‘2017 출판지원사업’ 심사에서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이 신청한 ‘일본군 성 노예제(Military Sexual Slavery of Imperial Japan)’를 ‘지원 보류’로 판정하고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

출판지원사업 심사에서 보류 평가가 나온 건 이례적이다. 2014년부터 5년간 심사 대상에 오른 104종 중 보류 판정을 받은 건 해당 서적이 유일하다. 특히 해당 서적은 1차 심사에서 평가 대상 서적 15종 중 두 번째로 높은 86.67점을 받았다. 점수만 보면 배제될 이유가 전혀 없는 셈이다. 반면 이 책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13종은 모두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교류재단이 해당 서적을 지원할 경우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교류재단 미디어분과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A위원이 “2번(‘일본군 성 노예제’)은 전반적으로 지원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분은 없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B위원은 “(지원하게 되면) 이 책에는 재단 로고가 박히게 되는데, 한일관계가 썩 좋은 편이 아니라서 나중에 저희가 사업을 할 때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C위원은 “책과 재단의 공식적 입장이 동일시 될 수도 있다. 오인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며 가세했다. 분과위원들은 결국 해당 서적 지원을 보류로 평가하고, 교류재단이 외교부와 논의한 뒤 내부 정책에 따라 결정하라며 재단에 판단을 위임했다.

당시 심사를 맡은 교류재단 미디어분과위원은 이화여대 교수인 유세경 위원장을 비롯해 이인희 경희대 교수, 민경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본부장, 조삼섭 숙명여대 교수, 이종혁 광운대 교수 등 5명이다. 이 가운데 유 위원장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됐다. 이 밖에 재단 직원 5명도 회의에 참석했다.

판단을 위임 받은 교류재단은 이후 별다른 논의나 조치를 하지 않았다. 심사 시기가 한일 위안부 합의(2015년 12월28일) 1주년을 1개월 정도 앞둔 터라, 사업취지보다정치적 판단을 앞세웠다는 게 이 의원의 주장이다. 당시 재단을 이끈 이시형 이사장은 2016년 5월에 취임했고,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를 지냈다. 이 의원은 “위안부 문제는 적극적으로 세계에 알리고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재단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이를 보류해 사업을 진행시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