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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10년] ‘탐욕의 족쇄’ 풀린 월가… 금융위기 악몽의 그림자

입력
2018.09.13 04:00
수정
2018.09.14 16:3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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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유동화증권 신규 발행 규모. 그래픽=강준구 기자
전 세계 유동화증권 신규 발행 규모. 그래픽=강준구 기자

미 뉴욕 월스트리트의 대형 투자은행(IB) 직원들이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감독관을 배웅하며 환하게 웃는다. 연준 감독관은 이들에게 “구제금융이 또 필요하면 바로 전화해”라고 말한다. 6월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월가의 승리’(A Win for Wall Street)란 제목의 만평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도드-프랭크법 개정안(경제성장ㆍ규제완화ㆍ소비자보호법)에 서명함에 따라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월스트리트 IB의 탐욕에 제동을 걸어 온 각종 금융 규제들이 다시 풀리게 된 것을 꼬집은 것이다.

오는 15일은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만 10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과 이를 모아 짜깁기한 파생상품의 연쇄 붕괴가 초래한 미국발(發) 신용 경색은 유럽 등으로 전이되며 전 세계 경제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회사 중 하나로 꼽혔던 리먼 브러더스의 직원 2만5,000명은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에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금융 위기의 주범인 IB의 도박성 투자를 막고, 이들의 건전성을 깐깐하게 감독하는 규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풀린 막대한 자금은 시간이 지나며 결국 월스트리트의 IB의 몸집을 오히려 더 키웠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정부의 금융규제마저 허물고 있다. 다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연될 수도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와 터키 등 신흥국 금융 불안도 되풀이되고 있다. 리먼 사태 10년에도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월가의 ‘도박’과 글로벌 금융위기

2008년 9월 15일 새벽 1시45분(현지시간) 세계 4위 투자은행(IB) 리먼 브러더스가 법원에 파산보호(챕터11)를 신청했다. 같은 날 또 다른 4대 IB중 한곳인 메릴린치도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매각됐다. 뉴욕 다우지수는 9ㆍ11 사태 이후 최대 낙폭인 504.48포인트(4.42%)나 주저앉았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단은 2000년대 초반 정보기술(IT) 거품이 붕괴되며 금리를 1%까지 인하한 것으로 올라간다. 저금리발(發) 유동성은 주택시장으로 몰려갔다. 은행도 대출확대에 주력했다. 2004년부터 저소득층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불어났다. ‘일자리나 자산, 수입이 없는(No income, No Job or AssetㆍNINJA)’ 고위험 채무자에 집값을 빌려주는 ‘닌자대출’이 판을 쳤다. 은행들은 이들에게 주택자금을 빌려주고 받은 대출채권을 리먼 등 IB에 팔았다.

IB들은 모기지 수천 개를 묶어 이를 담보로 주택저당증권(MBS)을 발행했다. MBS는 선순위(저위험ㆍ저수익) 중순위 후순위 조각으로 나뉘어져 프레디맥 등 정부기관이나 투자자에게 팔렸다. 각 부도율 10%인 모기지 3개를 묶어 MBS를 발행한 경우, 3개 중 1개 모기지에서 부도가 나면 후순위 투자자가 원금을 모두 잃고 그 이상 부도가 나면 중순위가 순실을 보는 구조다. 전국 집값이 동시에 하락하지 않는 한 선순위 손실 가능성은 이론상 0.1%에 불과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덩어리를 안전자산으로 변모시킨 구조화 금융의 ‘연금술’이다. 나아가 IB들은 시장에서 인기가 없는 후순위 MBS조각을 묶어 다시 이를 담보로 부채담보부증권(CDO)을 발행, 이를 전세계 연기금 보험사 헤지펀드 등에 무차별적으로 팔고 일부는 직접 보유했다. 금융위기 직전 3년간 무려 1조2,500억 달러 규모의 CDO가 발행됐다.

그러나 금리 상승으로 집값이 전국적으로 하락하고 모기지 연체율이 급증하자 MBS, CDO는 모두 휴지조각이 됐다. 리먼 파산에 이어 AIG, 씨티그룹 등이 휘청거렸다. 미국 정부는 부실은행을 살리기 위해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투입했다. 4~5% 수준이던 미국 실업률은 2009년 10월 10%까지 치솟았다. 세계경제 성장률은 1961년 세계은행 집계 이래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미국에서만 900만명이 집을 잃었다.

◇월가의 탐욕에 재갈 물린 ‘도드-프랭크법’

2010년 7월 당시 오바마 미 대통령은 월가의 탐욕과 투기를 근절하기 위한 ‘도드-프랭크법’에 서명하며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금융개혁법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3,500쪽에 걸쳐 4,000개의 하위 법안을 담고 있는 이 법은 대형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도드-프랭크법의 핵심은 ‘볼커룰’(2014년4월 발효)이다. 이 법안은 은행이나 은행지주회사, 그 계열사가 더 이상 목돈(자기자본+차입금)을 주식이나 파생상품 같은 고(高)위험 상품에 투자(자기계정거래)하지 못하도록 했다. ‘대형 IB의 도박성 투자→부실→예금자 및 시스템 전반 위협→혈세 투입’의 악순환과 그에 따른 IB의 도덕적 해이를 막자는 취지였다. 실제 씨티그룹의 경우 2008년 말 트레이딩 계정(3,776억 달러)에서 파생상품과 유동화 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36%에 달했다.

◇몸집 커진 월가, 규제 푸는 트럼프 행정부

USA투데이에 따르면 2015년 미국 상위 5대 은행은 전체 은행 자산의 46%를 차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45%)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지난해 월스트리트 종사자들은 1인당 평균 18만4,220달러(약 2억원)의 보너스를 받아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글로벌 경제 애널리스트인 라나 포루하는 저서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에서 “(금융위기 이후) 월가는 부활한 정도가 아니라 몸집이 더 커졌다”며 “2008년 이후 JP모건은 170억 달러가 넘는 실물 상품 보유고를 기록해 상품 시장에서 엄청난 괴물이 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도드-프랭크법상 구멍으로) 은행과 헤지펀드들은 국제 외환시장에서 리스크가 높은 외환 파생상품 거래를 계속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금융 규제는 더 완화되고 있다. 작년 초 트럼프 행정부 출범 당시엔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 스티브 배넌 백악관 선임고문,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 골드만삭스 인맥이 요직을 꿰차며 ‘거번먼트 삭스(Government Sachs)’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정확하게 예견했던 라구람 라잔 전 인도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NYT 인터뷰에서 “과거 1930년대 구축된 (강력한) 금융규제가 허물어지는 데 30~40년이 걸렸는데 지금은 10년 만에 이 같은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라잔 전 총재의 해당 발언이 담긴 NYT 사설의 제목은 ‘(미국이) 또 다른 금융위기를 자초하고 있다’(Inviting the Next Financial Crisis)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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