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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렛일이라도” 전업주부 구직행렬… 거제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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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 남편 대신 나섰지만 일감 별따기
거제 실업급여 작년보다 50% 이상↑
군산 인구 급감 27만명선 붕괴 우려
산단 인근 원룸 공실률 85% 육박
“잘나가던 조선소 협력업체에 다니던 남편이 직장을 잃자 전업주부들이 일자리를 찾아 나서면서 주방보조 등 과거 거들떠 보지도 않던 허드렛일 자리마저 귀해졌어요.”
지난 7일 오후 경남 거제시 서문로 5길 거제고용복지센터. 게시판에 붙어 있는 거제지역 한 대형 리조트의 홀서빙, 주방보조 등 구인 광고지 여러 장에 ‘모집마감’이란 빨간색 도장이 찍혀 있었다.
센터 관계자는 “5년 전 거제에서 문을 연 또 다른 리조트가 당시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던 것과는 완전 딴판인 상황”이라며 “‘남편은 고소득 직장, 여성은 전업주부’라는 거제의 전형적 가정 형태가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ㆍ자동차 등 주력 산업 침체와 그에 따른 구조조정 여파로 거제, 통영, 울산, 군산 등 고용쇼크에 빠진 전국 공단지역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고용ㆍ산업위기지역’ 지정 등의 처방을 내렸지만 붕괴 직전에 놓인 해당 지역에서는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본보가 최근 통계청의 ‘2018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에서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 지역을 둘러본 결과 역대 실업률 조사 사상 최고치(7%)를 기록한 경남 거제는 가정 경제 붕괴 현상이 심각했고, 지난해 현대중공업에 이어 올해 한국GM 공장까지 폐쇄돼 1년 사이 실업률이 2.5%포인트나 상승(1.6→4.1%)한 전북 군산은 근로자들의 보금자리였던 오식도동 원룸 공실률이 85%에 육박하는 등 지역 경제가 붕괴 직전이었다.
과거 ‘완전고용’ 도시에서 최근 ‘고용ㆍ산업위기’ 도시로 추락한 경남 거제시 사등면 성내협동화공단은 이날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인상을 풍겼다. 대형조선소 협력업체들이 몰려 있어 ‘쿵쾅 쿵쾅’ 작업장 소리가 귀청을 두드려야 할 공장 내부에선 대신 인근 숲의 매미 소리가 가득했다. 지난해 5월 가동을 멈춘 A사는 일부 부서진 출입문 사이 안쪽에 트럭을 세워놔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이 업체는 조선업이 호황이던 7, 8년 전 근로자가 250여명에 이르렀지만 업황이 계속 나빠지면서 결국 모든 근로자가 회사를 떠났다. 대형조선소 협력업체 5곳이 모여 있던 이 공단은 현재 4곳이 문을 닫았고, 1곳만 4명의 인력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이 공단 협의회 소속 이성신 ㈜신성 대표는 “용접 등 조선 관련 일을 하던 전문 인력은 대부분 수도권 건설현장 등으로 떠났다”면서 “정부의 조선업 지원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진데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그나마 일감을 유지하려는 중소 협력업체들은 되레 고용난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공단과 규모가 비슷한 거제시 소재 4곳의 다른 조선기자재 공단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근로자들 대부분이 일자리를 잃었다. 거제지역 조선업 종사 근로자 수는 2015년 말 9만2,164명을 정점으로 매년 줄기 시작, 7월엔 절반 수준인 4만9,878명으로 곤두박질쳤다. 삼성중공업 사내 협력사에서 10여년 간 일하다 지난 7월 실직한 이모(53)씨는 “조선업 불황 여파로 연쇄적으로 지역경제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3년 전만 해도 구직자의 방문이 흔치 않았던 거제고용복지센터는 올해는 하루 평균 300명의 구직자들이 찾고 있다. 이 센터 윤철민 소장은 “당장 생계가 걸려 경력과 관계없이 최저임금 수준으로도 일을 하려 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다”면서 “7월까지 실업급여가 436억원이 지급됐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284억원보다 50% 이상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여파로 거제지역 출산율도 2016년 1.8명에서 지난해 1.5명으로 크게 낮아졌으며, 지난달의 경우 외국인 40명을 포함, 181명이 거제를 떠나는 등 ‘탈(脫)거제’ 현상도 계속되고 있다. 부동산시장도 직격탄을 맞아 주택 매매가는 33개월, 전세가는 27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실업과 가정경제 붕괴에 따른 주민의 심리적 위기감도 심각하다. 2016년 월 평균 95회이던 실직자 및 실직자 가족 등을 대상으로 한 복지센터의 심리상담 횟수가 지난해엔 166회, 올해는 190회로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석애란(47) 심리상담사는 “실직으로 인한 상실감 때문에 상담 도중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아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한때 2만명의 근로자들로 북적이던 인근 경남 통영도 중형 조선소의 잇단 폐업으로 근로자 수가 크게 줄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성동조선 마저 법정관리에 들어가 직원이 1,200명에서 840여명으로 줄었다. 통영시 도남동의 한 식당 사장은 “조선업체의 회식 예약이 끊긴지 오래다”고 말했다. 통영의 상반기 실업률은 6.2%로, 거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현대중공업의 4차례에 걸친 구조조정 여파로 7월 말 기준 사업장 소재지(동구) 인구가 3년 전인 1995년(19만1,632명)에 비해 2만5,000여명이나 줄었든 울산은 2001년 1분기 이후 가장 높은 실업률(5.0%)을 보이는 등 직격탄을 맞고 있다.
울산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동구의 경우 아파트와 원룸 공실이 증가하면서 거래가 끊겨 부동산 가격이 40% 가량 떨어졌다”면서 “3, 4년 전만해도 하루 30팀 이상 단체손님을 받던 대형 고깃집들이 손님이 10% 수준으로 급감하자 문을 닫을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조선소의 가동 중단과 한국GM의 공장 폐쇄로 고투하고 있는 전북 군산은 인구가 급감하는 가운데 실업률도 치솟아 지역경제가 붕괴조짐 마저 보이고 있다.
군산시 인구는 8월 말 현재 27만3,277명으로, 2년 전 같은 기간 27만8,005명에 비해 4,700여명이나 줄었다. 인구 감소가 계속되면서 최근 시민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27만명이 붕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외지에서 들어온 근로자의 ‘탈(脫)군산’을 상징하는 국가산단 배후단지 오식도동의 원룸 공실률은 85%에 이른다. 당연 매매가도 50%가량 떨어졌지만 이마저 거래가 뚝 끊긴 상태다. 정부가 4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군산을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과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했지만 체감경기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온승조 군산상의 기획관리부장은 “산단 주변의 위기가 도심으로 옮겨오면서 그 타격이 군산시내 전체로 번지는 등 연쇄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며 “지역 산업ㆍ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게 절실한 만큼 떠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도록 군산시와 전북도, 정부가 모두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거제ㆍ통영=권경훈 기자 werther@hankookilbo.com
울산=김창배 기자 kimcb@hankookilbo.com
군산=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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