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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체불에도 환자 곁 떠나지 못하는 요양보호사들

입력
2018.09.06 04:40
수정
2018.09.06 07:29
9면

 노인들 책임감 볼모 삼아 

 월급 떼먹는 사업주 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요양보호사 이순복(49)씨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5월까지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파킨슨병과 치매를 앓고 있는데다 온종일 누워 지내는 김명화(84)씨의 짓무른 몸을 매일 닦아주고 살뜰히 보살폈지만, 이씨가 소속된 복지시설 대표는 서슴없이 “돈은 못 주겠고, 봉사로라도 일해달라”고 말했다. 4년이나 돌본 김씨를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이씨는 백방으로 방법을 찾았고, 다행히 자신과 김씨 모두를 받아주겠다는 시설로 옮겼다. 이씨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같은 시설의 요양보호사 박진애(67)씨 역시 9개월째 월급을 못 받고 있고 앞으로도 받을 기약이 없지만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2년간 매일 찾아가 돌본 주남용(59)씨가 눈에 밟혀서다. 박씨는 “내가 돈을 받지 못한다고 일을 그만두면 그 사람은 굶어 죽는다”라며 “사람을 먼저 살리고 봐야지 어떻게 외면하겠냐”고 반문했다.

오랜 기간 돌봐 온 노인들에 대한 책임감과 측은지심을 볼모 삼아 요양보호사들의 임금을 떼먹은 서울 서대문구 A재가노인복지시설 대표 신모(70)씨가 근로기준법 위반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혐의로 최근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 입건됐다. 5일 서부지청에 따르면 이씨와 박씨 등 피해자 9명에 체불 임금 액수는 1억3,000만원이다. 이미 수 차례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은 터라 임금 지급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요양보호업계에서는 “비슷한 일이 가끔 벌어지지만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로 요양보호의 특징과 임금체계 문제가 꼽힌다.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노인 한두 명을 도맡아 직접 집으로 방문해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재가노인복지시설 요양보호사는 보통 수년씩 대상자와 함께하다 보니, 이번 사건처럼 당장 임금을 못 받더라도 돌보는 노인들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또 복지시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장기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고, 시설이 이를 다시 요양보호사들에게 분배하는 임금체계 구조라 시설 대표가 중간에서 가로채면 속수무책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부실한 관리도 한몫 한다. 실제 신씨는 상조회사와 휴대폰대리점 등 다른 사업에서 손실이 발생하자 요양보호사의 임금을 유용해 메우고, 요양보호사에게 상조 서비스 가입과 휴대폰 구입을 종용하기까지 했지만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 공단 관계자는 “복지시설과 요양보호사 간의 근로계약 문제까지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는 2012년 19만2,830명에서 2016년 25만9,595명으로 늘었다.

이길원 대한민국요양보호사노동조합 위원장은 “특히 재가노인복지설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은 시간제 계약을 해 월 100만원 남짓 받는데다, 담당 노인이 병원에 들어가거나 사망하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계약이 해지돼 일자리를 잃게 된다”며 “임금을 못 받아도 문제를 제기하면 결국 시설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함구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임금 체불은 훨씬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세훈 기자 comingh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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