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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울리는 놀이공원 ‘보호자 규정’

입력
2018.09.03 20:00
수정
2018.09.03 21:1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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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호자인데…” 뇌병변 장애인

초등생 인솔하고 갔다가 봉변

기구 타려면 나이 불문하고

비장애 성인 보호자 동반 요구

배려한다는 우선 탑승제도

장애 드러나 되레 이용제한 당해

“인권 침해ㆍ차별 즉시 폐지해야”

놀이공원에서 탑승을 거부당한 장애인들이 지난달 29일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제공
놀이공원에서 탑승을 거부당한 장애인들이 지난달 29일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제공
서울 한 놀이공원의 장애인 보호자 의무 규정.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제공
서울 한 놀이공원의 장애인 보호자 의무 규정.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제공

“제 나이 서른여섯인데, 제가 데리고 온 아이들보다 어린애 취급을 받다니요. 정말 화가 나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뇌병변장애인 전원용(36)씨는 얼마 전 같은 교회 초등 5학년생 7명을 데리고 경기 과천시 서울랜드를 방문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반드시 두 명씩 타야 하는 놀이기구가 있어 짝수를 맞추기 위해 본인도 이용권을 사려는데 놀이공원 직원이 “장애인은 비장애인 성인 보호자가 함께 있어야만 놀이기구에 탑승할 수 있다”고 전씨의 놀이기구 이용을 거부한 것. 전씨 본인이 아이들의 보호자라고 밝혔지만, 직원은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주일 뒤 항의하기 위해 서울랜드에 전화한 전씨는 더 황당한 답을 들었다. 뇌병변장애인라고 소개했는데도 직원은 전씨를 “정신장애인”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장애인이 탈 수 없는 놀이기구 목록에 회전목마도 포함돼있다고 했다. 전씨는 “관광지에 가면 사륜오토바이도 잘 타는데, 유독 놀이공원만 막는다”고 불평했다.

장애인들이 놀이기구 이용을 두고 차별을 호소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재화ㆍ용역 등의 제공자는 장애인이 해당 재화ㆍ용역 등을 이용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기회를 박탈하여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지만, 국내 유명 놀이공원들은 안전 등을 이유로 입장안내서부터 ‘모든 장애인은 신체 건강한 성인을 보호자로 동반해야 한다’고 규정해놓은 실정이다.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일방적인 기회 박탈에 앞서 세심한 배려가 아쉽다는 게 장애인들 얘기다.

[저작권 한국일보] 삽화=김경진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삽화=김경진 기자

장애인의 놀이기구 이용을 배려하기 위해 만든 ‘장애인우선탑승제도’가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청각장애인 배성규(39)씨는 4월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장애인우선탑승제도가 있으니 활용하라”는 직원 안내를 받고 장애인복지카드를 제시했다가 오히려 놀이기구를 못 타는 신세가 됐다. 다른 직원이 복지카드를 보고 배씨가 청각장애인임을 확인한 뒤, “비장애인 성인 보호자가 동승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기 때문. 배씨는 “지금껏 비장애인 줄에 서서는 아무 문제 없이 놀이기구를 이용했다”며 황당해했다.

오락가락하는 설명에 장애인들이 재산상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발달장애인 이찬(21)씨는 7월 어머니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에 방문해 “고난도 놀이기구는 직원이 함께 탑승해 준다”는 설명을 듣고 연간회원권을 샀다. 이후 5차례 방문에서 직원들이 이씨와 동승해줘 고난도 놀이기구를 탈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 이씨가 6번째 방문하자 직원들이 이번엔 “원래 모든 장애인은 성인 보호자가 동반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지금껏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며 동승을 거부했다는 게 이씨 얘기다. 아울러 이씨가 회원권을 구입할 때와 설명이 다르다며 환불을 요청하자, 롯데월드 측은 “환불은 50%만 가능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롯데월드 관계자는 “성인 보호자 규정이 있는데, 회원권 구입 당시 잘 전달이 되지 않았고 이후 일부 직원이 선의로 이씨와 함께 놀이기구를 타준 걸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별다른 이유와 설명 없이 장애인에게 비장애인 보호자를 동행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차별하는 것”이라며 “관련 규정을 즉시 삭제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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