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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섭기자의 교과서 밖 과학]현생인류는 모두 잡종… 국적 달라도 유전 차이는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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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류를 비극에 빠뜨렸던 순혈주의가 최근 극우 정당의 약진, 반(反) 난민 정서를 등에 업고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순혈주의는 꽤 비과학적인 개념이다. 황인ㆍ백인ㆍ흑인 모두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아종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분류될 정도로 차이가 없다. 게다가 호모 사피엔스 자체가 아주 오래전 다른 고대 인류와 교배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순혈주의는 성립하기가 불가능하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ㆍ캐나다 토론토대ㆍ영국 옥스퍼드대 등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진은 지난 2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러시아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뼛조각 화석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네안데르탈인 어머니와 데니소바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아이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자를 공유(각 40% 이상)하고 있는 ‘혼혈 소녀’는 약 5만 년 전, 13세의 나이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여아의 뼛조각은 2008년 네안데르탈인과 다른 고대 인류 데니소바인 화석이 발굴된 데니소바 동굴에서 2012년 발견됐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교배했음을 증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공통 조상에서 약 39만년 전 분리됐다.
시베리아 데니소바 동굴에 살았던 혼혈 소녀는 현생인류의 유전자도 일부(1.7%) 갖고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이 서로 교배했단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5만~6만년 전 지구에는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최소 3종의 인류가 함께 공존했다. 그러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4만~5만년 전부터 사라지기 시작해 멸종했다. 스반테 페보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장은 “서로 다른 인류 간의 교배가 기존 생각보다 더 빈번히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국제학술지 ‘셀’에도 현생인류의 혼혈설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은 유럽ㆍ미주ㆍ아시아ㆍ오세아니아 등 각지 5,639명의 유전체(유전자 전체)를 비교한 결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두 차례에 걸쳐 중국ㆍ일본 등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흘러든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동아시아에 도착한 현생 인류가 이미 그곳에 살고 있던 데니소바인과 만나 피가 섞이고, 아시아 남쪽에서 데니소바인과 교류한 또 다른 현생인류가 동아시아로 이주하면서 동아시아에 두 집단의 데니소바인 유전자가 섞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은 데니소바인과 약 5%의 유전적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인 유전자는 분석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중국ㆍ일본인이 데니소바인의 유전자 일부를 가진 것으로 나온 만큼, 한국인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다.
앞서 2010년 5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는 네안데르탈인 뼛조각을 분석한 결과, 유전자가 현생인류와 99.7% 같았으며, 현대인의 유전자 안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1~4% 섞여 있다는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연구결과가 실렸다.
2016년 2월 이 연구소는 “현생인류가 기존 학설보다 훨씬 더 빠른 10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났으며 네안데르탈인과도 교배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결과를 네이처에도 발표했다. 시베리아 남부 알타이산맥 동굴에서 나온 네안데르탈인 화석의 유전자를 분석했더니 21번 염색체에서 인간 유전자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화석이 1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 만큼 현생인류의 이동시기는 물론, 네안데르탈인 간의 교배 시기도 앞당겨지게 됐다. 그간 학계에선 약 20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현생인류가 6만 년 전 유라시아로 이동하면서 이곳에 살던 네안데르탈인과 피가 섞였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 게놈연구소장은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이라도 유전적 차이는 최대 0.1% 정도에 불과하다”며 “특정 집단 혈통이 순수하고 우수하다고 믿는 순혈주의는 의미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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