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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아닌 것 같다” 사흘 상봉했지만 끝내 ‘반신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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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것 같아.”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첫 날인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첫 일정인 단체 상봉이 시작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이재일(85)ㆍ재환(76) 형제는 ‘북측 조카라며 자리에 나온 리경숙(53)ㆍ성호(50)씨가 헤어진 형의 자녀가 아닌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테이블에는 북측 조카들이 가져온 결혼 사진,가족 사진 등이 10장 이상 펼쳐져 있었다.
이씨 형제는 1950년 6ㆍ25 전쟁 발발 후 납북된 형 이재억씨를 만나고자 상봉 신청을 했다. 생사확인 회보를 통해 형이 1997년 4월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았고,대신 두 명의 조카를 만나고자 금강산을 찾았다.
재환씨는 “아무리 돌아가셨어도 아버지 나이도 모르냐, 어떻게 사망했는지도 모르고”라고 화를 내며 “형님이라고 하는데 사진을 보니 아니다”고 주장했다. “(형님이) 살면서 남쪽에 있는 형제 얘기를 한 마디도 안 했다는 거냐,말이 되냐”며 그는 급기야 상봉장 밖으로 나가버렸다.경숙씨가 재환씨에게 “(돌아가신)아버지가 맞습니다, 모습이 (작은아버지와)비슷합니다”라고 설득했지만 소용 없었다.
테이블 일대 소란이 일자 이산가족 확인작업을 담당한 북측 관계자가 다가와 호적으로 추정되는 서류를 가져와 “이두희(이씨 형제의 큰아버지)알지요?” “이병희(이씨 형제의 삼촌)알지요?”라고 짚으면서 가족이 맞는다고 설명했지만 형제는 수긍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러나 한번 ‘가족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사소한 실수도 못미덥게만 보였다. 21일 오전 개별 상봉 및 점심 식사 당시 이재환씨는 북측 가족에게 호적과 가족 앨범이 든 쇼핑백을 줬으나, 북측 조카들은 이를 복도에 그냥 두고 갔다.이씨는 “왜 두고 갔냐”며 따지듯 물었고,조카들은 “북측 보장성원이 ‘복도에 짐을 두고 가면 일괄 수거해 차에 실어준다’고 했다”고 해명하며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씨 형제는 상봉을 포기하진 않았다. 첫날 재환씨가 단체 상봉 중간 나가버렸던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정은 다른 이산가족들과 함께 동일하게 참여했다. 그러나 사흘이라는 시간은 북측 조카들이 정말 자신의 조카들인지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데 부족했던 듯 하다. 재일씨는 조카들의 이야기를 듣고 가족으로 받아들였으나,반신반의하며 상봉을 마무리한 재환씨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대한적십자사(한적) 관계자는 “과거 상봉에서 진짜 가족이 아니라고 판단하시는 분들은 아예 상봉에 참가하지 않고 돌아가겠다고 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이 분들의 경우 상봉을 계속하셨으니 개인적으로는 상봉이 이뤄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다른 한적 관계자는 “촌수가 먼 가족들이 생전 처음 만나고 하다 보니 반신반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시다. 그러나 저희가 당사자에게 가족이 맞는다고 설득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고 했다. 행사 종료 뒤 본인이 요청하면 추가 확인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금강산=공동취재단ㆍ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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