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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떨어진 창고로 발령"…"고용 승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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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서비스 팀장’에서 ‘해고자’로, ‘청소파트근무자’ 였다가 ‘영화관 티켓발행 근무자’로….
대형 리조트에서 31년간 일하다 지난해 1월 전남 구례군 구례클러스터(현 오가닉클러스터)에 팀장으로 입사한 문석호(58)씨가 불과 1년 8개월 동안 겪은 일이다. ‘빈 책상’ 대기 근무ㆍ2개월 정직까지 겪은 그는 냉동창고물품 분류 근무자로 발령받아 구례에서 200㎞ 이상 떨어진 충북 괴산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의 일터였던 구례드림자연파크에서 불거진 노사갈등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징계로 시작된 노사갈등
구례자연드림파크는 대표적인 소비자협동조합인 아이쿱생협이 기획하고 초기 투자한 농공단지다. 아이쿱생협이 운영하는 ‘자연드림’ 매장에 김치, 라면, 과자, 우유 등 식품을 생산ㆍ공급하는 파머스쿱의 자회사들이 모인 ‘식품산업클러스터’다. 연간 14만명 이상의 방문객들이 이 곳을 찾아 ‘자연드림’ 매장 상품이 생산되는 공방을 직접 견학하고 있다. 문씨가 소속된 오가닉클러스터는 이 곳에서 식당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문씨는 자신의 고초가 지난해 3월 시작된 ‘자연드림’ 매장의 이른바 ‘점간 이동’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자연드림’은 ‘신규개설 및 소규모 부진매장’의 경영 안정화를 위해 당일 입고 후 남은 물품을 매출이 높은 ‘안정화 매장’으로 옮기고, 남겨진 재고는 구례자연드림파크 식당의 식자재로 활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문씨를 비롯한 일부 직원들은 이런 정책에 문제제기를 했고, 이후 회사 측의 징계와 부당 노동 행위가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각지의 재고물품을 식당 한 곳에서 처리하기는 무리였다고 주장했다. 하루 20상자씩 들어오던 식자재가 80상자 이상으로 늘었고, 재고로 남겨진 물품이라 상태도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식당 매니저 이순규(55)씨는 “재료를 선별하고 반품하느라 매일같이 잔업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일손은 그대로인데 업무량은 늘어나 같은 회사 소속 청소노동자까지 식자재 분류 작업을 도와야 했을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친환경유기농 식당 프로젝트’에 대한 시각 차이라고 설명했다. 구례자연드림파크 방문객이 이용하는 식당 식자재의 친환경 재료 비중을 90%로 높이기 위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신선식품 유통 흐름은 ‘산지→매장, 매장에서 1일, 구례자연드림파크에서 선별→식당 식재료 사용’으로 이뤄지며, 이는 소비자가 매장에서 구입해 가정에서 조리를 하는 시간 주기와 동일하게 설계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불거진 갈등으로 지난해 5월 회사 측은 문씨를 팀장 직위에서 해제하고 청소 업무에 배치했다가 한달 만에 해고했다. ‘업무지시불이행 및 업무능력부족’이 이유였다. 지방노동위원회는 문씨에 대한 징계 수위가 지나치다며 ‘부당 징계’로 결론 냈고, 사측은 “식자재 폐기율이 급증해 사용자에게 5,200만원 상당의 비용 손실이 발생했다”며 재심을 신청했다. 문씨는 “회사의 문제를 지적했더니 수천만원 손해가 생겼다며 징계를 했다”며 분노했다. 매니저 이씨도 지난해 6월 직위 해제돼 미화 업무에 배치됐다. 이씨는 “회사가 ‘노조’ 결성 움직임에 징계의 칼날을 휘두른 것”이라 주장했다.
결국 문씨와 이씨 등은 지난해 7월 33명의 조합원과 함께 구례자연드림파크에서 노조를 출범시켰고, 이후 갈등이 본격화했다.
“회사가 범죄집단으로 몰아” vs “횡령 등 비위 있었다”
사측은 식자재 횡령 등을 이유로 노조 조합원들을 징계하고 고발하기도 했다. 이은정(25)씨도 그중 한 명이다. 지난해 11월 4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고 사측으로부터 사기, 횡령, 업무 방해 등 혐의로 고소당했다. 돈가스 등 식자재 재고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올해 1월 지방노동위원회는 징계가 부당하다고 결론 냈고, 2개월 뒤 검찰도 무혐의 처리했다. “연차를 거의 써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정신 없이 일했다”는 이씨는 징계 이후 청소 업무에 배치됐다. 3년 전 어머니의 권유를 받아 구례로 귀촌했을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이씨는 ‘청년이 돌아오는 농촌’을 기치로 내건 회사측의 홍보 영상에도 출연했었다.
사측은 “도둑질, 횡령 감싸는 게 노조 활동인가?”라는 내용의 대형 현수막을 건물 외벽에 걸었다. 딸 이씨보다 1년 먼저 귀촌해 구례자연드림파크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던 어머니 박인숙(61)씨는 “나쁘지 않은 직장이 아버지 고향에 있으니 내려와서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던 내가 원망스럽다”고 했다.
8년 전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온 김연아(35)씨도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의 두번째 직장인 구례자연드림파크에 대해 “주방 식구들을 잘 만나서 좋았다”고 했지만 노조에 가입하고 사측이 식자재 횡령에 대한 조사에 나서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그는 ‘대기발령’과 ‘정직 1개월’ 등의 징계를 받았으나 지방노동위원회는 부당 징계라고 인정했다.
노조 측은 노조 출범 이후 노조원에 대한 징계와 탄압이 잇따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회사 측은 징계가 노조 설립 이전인 2017년 5월 여성노동자의 제보로 시작된 횡령 조사 때문이라고 맞서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5월부터 진상 조사 및 징계절차가 시작됐고, 노조 설립시기는 7월이라 서로 무관하다”며 “당시 징계를 받은 직원 중에는 노조원이 아닌 직원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 설립 이후 노조원들에 대한 탄압이 진행됐다는 게 노조 측의 주장이지만, 회사 측은 횡령 등 비위 사건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직원들이 노조를 설립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구례에서 괴산 발령” vs “고용 승계 제안”
노사 갈등은 문석호, 이순규, 이은정, 김연아씨 등 노조원들이 구례에서 충북 괴산으로 발령받으면서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연고도 없는 곳으로 발령낸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두 아이를 키우는 김연아씨는 “엄마가 필요한 아이들을 회사가 대신 키워줄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분개했다.
회사 측은 충북 괴산군과 맺은 투자계약 이행을 위해 본사를 괴산으로 이전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구례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은 별도 회사로의 고용 승계를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전체 52명 직원 중 47명(노조원 2명 포함)은 고용승계가 이뤄져 구례에서 기존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승계를 거부하는 이들 5명은 “불이익이 있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옮겨갈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노조는 업무배치와 발령 등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지방노동위원회에 7차례 제소했지만 모두 각하, 기각됐다. 이 과정에서 문석호씨는 계속되는 징계와 고소ㆍ고발로 불안장애를 진단받았고,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신청 7개월만인 지난 16일 문씨의 고통을 업무상 발생한 질병으로 인정했다.
노조 활동을 둘러싼 구례자연드림파크의 갈등은 좀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장기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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