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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는 없다] 비오는 날 여성만 노린 ‘홍대 살인마’… 골목 곳곳 덫을 놓다

입력
2018.08.21 04:40
수정
2018.08.21 16:4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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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김모씨의 한씨 살해 송정근 기자
범인 김모씨의 한씨 살해 송정근 기자

범인, 뒤에서 순식간에 습격 뒤 도주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2003년 9월 14일 새벽 5시. 어슴푸레 밝아오던 빛에 어울려 여름 습기를 잔뜩 머금은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연휴의 피곤함에, 또 다른 누군가는 곧 닥칠 이른 출근을 불평하며 각자 집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 시간 서울 홍익대에서 미술을 공부하는 한모(23)씨는 고향에서 추석을 막 쇠고 서울에 도착, 연희동 자취방으로 총총 걸음을 하고 있었다.

‘뚜벅뚜벅’ 한씨가 발걸음을 뗄 때마다 또 다른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한 번 돌아봤지만 보이는 건 없었다. 극도로 팽팽해진 긴장은 점점 공포로 바뀌어갔다.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온 몸에 힘을 주고 달음박질을 치려는 찰라,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비명소리가 한데 뒤섞여 연희동의 눅눅한 길거리를 어지럽혔다.

병원으로 옮겨진 한씨는 이틀 뒤인 16일 숨을 거뒀다. 누가, 왜 그랬을까. 마침 인터넷에는 신촌 대학가 인근에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살인마’가 출몰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대부분 비가 오는 날에 당했다는 ‘홍대 괴담’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연세대와 홍익대 등은 여학생들에게 혼자 밤거리를 돌아다니지 말라는 주의보를 내렸다.

신촌 대학가를 맡고 있는 경찰서가 눈에 띄게 분주해졌다. 한씨 사건 이전에도 7월부터 연희동과 북아현동 인근에서는 혼자 걸어가는 여성을 습격해 지갑이나 가방을 뺏어가는 ‘퍽치기’ 사건이 6건이나 발생한 상황이었다. 그 중 3건이 비가 오는 날 벌어졌고, 모두 둔기로 머리를 맞았다. 반항하기 힘든, 힘이 약한 여성만을 골라 벌이는 동일범의 연쇄범행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사망사건인 한씨 건은 더 이상 단순 퍽치기 사건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범인을 잡지 못하면 언제든 또 다른 사망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긴장이 경찰들 사이에 엄습했다. 이전 연쇄 사건 관할지인 서대문경찰서, 한씨 사건 관할지인 마포경찰서에서 형사 50명이 공조수사를 위해 투입됐다.

족적도 지문도… 증거 한점 없는 현장

“단서도 목격자도, 하나도 없었어요. 괴담과 소문은 퍼지고 있는데 정작 범인 흔적은 털끝만큼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마포경찰서 강력계 김문상(52) 경감은 지금도 당시를 떠올리면 고개를 젓는다. “은밀하게 다가와서 순식간에 뒤에서 내려치고는 도망가니까 피해자들도 범인 얼굴을 전혀 볼 수가 없었겠죠. 게다가 인적이 드물고 후미진 골목길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목격자도, 그 흔한 폐쇄회로(CC)TV도 없었죠.“ 그만큼 수사 여건은 최악이었다. “그뿐인가요. 비가 내린 날만 골라서 범행을 저지르니 족적이나 지문 같은 것도 남아있지 않았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니까 원한관계나 지인 조사도 의미가 없었고요. 정말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던 겁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먼저 피해자들 두개골이 함몰된 모양과 상처를 분석해 범인이 매번 같은 둔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장도리 혹은 벽돌공들이 사용하는 다용도 해머, 즉 한쪽은 뭉툭하고 한쪽은 날카로운 연장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수사팀에 전해졌다. 흉기 출처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나 을지로 등 철물점이 모여있는 곳을 며칠이나 수소문하고 다녔지만, ‘기억나지 않는다’는 맥 바빠지는 답만 돌아왔다.

수사가 제자리를 맴돌면서 모방범죄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증거가 없으니까요. 매일같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이런 저런 궁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범인이 영화를 보고 흉내를 낸 게 아니겠냐 그런 말이 오갔어요.” 실제 비 오는 날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연초에 개봉된 ‘살인의 추억’과 같았고, 미리 준비한 도구(쇠구슬)로 연쇄 퍽치기 범죄를 저지르는 수법은 역시 비슷한 시기에 나온 ‘와일드 카드’와 닮았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근처 동네 비디오 가게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어요. 인근에 있는 우범자들이 빌려보는 비디오 목록을 훑었고, 두 영화를 모두 빌려본 남성들을 대상으로 쫓기도 했죠.”

그런데 여전히 그 어디에도 범인의 자취는 드러나는 게 없었다. 경찰들 속이 타 들어갔다. 범행 수법을 볼 때 추가 피해가 불을 보듯 뻔했다. 하루라도 빨리 잡아야 한다는 초조함이 커져갔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한씨가 사망한 날로부터 3주도 채 되지 않은 10월 1일. 우려는 현실이 됐다. 또 다시 비가 내리던 새벽 연세대 인근, 8번째 피해자가 났다. 사망 사건이 아니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잠복 중 홀로 밤길 걷는 여성이…

수사팀 사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던 10월 13일, 그날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김 경감은 몇몇과 함께 서대문 근처에서 잠복하고 있었다. 이미 괴담이 퍼질 대로 퍼져 후미진 골목길에는 혼자 걸어가는 여성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 없다는 생각에 일행과 차를 타고 이곳 저곳을 수색하던 김 경감이 연희나들목(IC) 방면으로 가던 도중 황급히 몸을 곧추세웠다. 새벽 4시 30분이었다.

영화 '베테랑' 속 형사들이 잠복근무 하는 모습.
영화 '베테랑' 속 형사들이 잠복근무 하는 모습.

차창 밖으로 한 여성이 우산을 쓰고 걷고 있는 게 보였다. “소문을 못 들은 건가. 이 시간에 혼자 다니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먼저 들었는데…” 김 경감이 말 끝을 흐렸다. “차창에 빗물이 번지면서 여자 뒷모습이 희미하게 보이는 겁니다. 근데 이상한 게 우산 아래로 금색 머리칼이 반짝 빛나는 게 보이는 거죠. 아! 외국 사람이라 소문을 못 들은 거구나. 갑작스럽게 ‘어쩌면 오늘 범인을 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자가 한 건물 앞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러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담배에 불을 붙였다. 라이터에서 솟은 작은 불길이 얼굴을 비추던 바로 그 때, 건물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 사이에서 뭔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망이처럼 보이는 물건을 손에 들고 여성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는 남자, 7월부터 10월까지 신촌 일대를 겁에 질리게 했던 그 놈이 분명했다.

김 경감 일행이 있는 곳에서 그들 간 거리는 50m 정도였다. 반면 여성과 범인 사이는 5m가 채 안 됐다. 죽을 힘을 다해 뛰어도, 범인이 여성에게 쇠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을 막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경찰 코 앞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 있었던 위험천만한 순간, 갑자기 ‘부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범인은 멈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자신이 범죄를 막았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던 신문배달부는 그렇게 범죄가 발생하기 바로 직전, 새벽 공기를 가르는 오토바이 소리를 내며 비를 뚫고 범인과 경찰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경찰과 범인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연희동 후미진 골목길들 사이를 전력 질주하는 경찰과 범인 사이가 한 번은 멀어졌다 또 한 번은 가까워졌다. 100m 남짓을 도망가던 범인이 경찰 손에 붙잡히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3개월 남짓 신촌 일대를 공포에 떨게 했던 ‘퍽치기범’, 김모(32)씨가 마침내 검거됐다.

김씨는 범행과 검거 현장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다용도 해머로 추정되던 범행도구는 김씨가 청계천 공구상가에서 직접 주문 제작한 쇠로 된 야구방망이었다. 5㎏ 가량 되는 방망이를 그는 항상 두 개씩 가방에 넣어 다녔다고 했다. 한 개가 아니라 굳이 두 개를 갖고 다닌 이유도 있었다. 누군가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내면 ‘야구 연습 하러 간다’는 핑계를 대려 했다는 게 그의 진술이었다.

지갑만 뺏으면 됐지, 왜 죽였어?

범인은 잡혔지만, 사건이 끝난 건 아니었다. 범인 집에서 그 동안 뺏은 여성들 지갑과 신분증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정작 숨진 한씨 지갑과 신분증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에게 한씨에 대한 살인을 입증하는 건 중요했다. 단순 퍽치기, 즉 강도상해ㆍ치상죄로 끝낼 수는 없었다.

“김씨는 한씨가 숨졌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더군요. 애초 돈을 뺏는 게 목적이었지 죽이려는 게 아니었으니까. 한씨 지갑도 숨긴 게 아니라 그냥 버렸다더군요. 경찰에서는 일단 한씨가 죽었다는 사실을 숨기기로 했습니다.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발뺌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경찰의 집요한 추궁에 결국 김씨가 입을 열었다. 범행 직후 한씨 지갑과 휴대폰을 버렸다고 털어놓은 곳으로 지목한 곳은 연희동 철길.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돼 ‘연트럴파크’로 불리는 곳이다. 당시에는 철길 옆으로 풀숲이 우거져 있었다.

풀숲을 샅샅이 헤집고 다니기를 며칠. 철길 아래로 반쯤 부서진 폴더형 휴대폰이 눈에 띄었다. 액정 부분은 없고, 아래쪽 본체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액정이 날아간 휴대폰 단말기는 놀랍게도 멀쩡히 작동이 되고 있었다. 사용내역과 단말기 번호 등 휴대폰 주인을 추정할 수 있는 정보가 그 안에 모두 담겨있었다. 한씨 휴대폰이 확실했다.

“그런데 한씨는 왜 죽였어, 지갑만 뺏어가면 되지.” 김 경감이 묻자 김씨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계속 저항을 해서요. 보통은 한 대 맞으면 순순히 가방을 내주는데, 그 여자는 한대 맞고도 가방을 안 뺏기려고 버둥대길래 몇 대 더 때린 건데.…” 김 경감의 맥이 탁 하고 풀렸다.

퍽치기, 모방범죄 아니라 구치소서 배워

김씨는 한때 동대문에서 재단장사를 하다가 사업실패 후 2억5,000만원 정도 빚을 지고 쫓기던 상태였다. 아내와 별거하고 연희동 한 옥탑방에서 애인과 동거를 하던 그는 생활고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퍽치기를 떠올렸다. 영화에서 범죄를 모방했을 것이라는 경찰 추측과 달리 그는 7년 전 구치소 동기로부터 배운 기술이라고 털어놨다. 그렇게 한 명을 살해하고 7명을 중태에 빠뜨린 범행으로 그는 89만원을 주머니에 채웠다. 그 돈으로 이혼으로 떨어져 지내던 아이들 장난감을 산 게 전부였다.

법원은 김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사업 실패 뒤 빚 독촉에 시달리며 생활비가 떨어지자 범행을 저지르게 됐고, 범행 후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는 이유가 판결문에 적시됐다.

“그런 생각을 해요. 고인이 된 피해자도 안타깝지만, 살아남은 피해자 중에서는 여전히 후유증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들도 있어요. 피해자 삶은 완전히 망가졌는데, 범인은 15년 감옥에서 지내고 다시 사회로 복귀할 거라고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죠. 그런데 어떡하겠어요. 법이 피해자들 남은 삶까지 책임져 줄 수는 없는 거겠죠.” 김 경감 목소리가 잠겨 들어갔다. 김씨는 2004년부터 복역 중이다. 2019년, 내년이면 15년형을 채운 그가 사회로 돌아온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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