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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법 없어…” 경찰 손 놓은 새 피신처까지 쫓아온 스토커

입력
2018.08.16 04:40
수정
2018.08.16 09:1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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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가 피해 상황 입증하고 

 법원에 직접 접근금지신청해야 

 가해자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어 

 스토킹 처벌법 입법예고 했지만 

 실제 법 제정까진 ‘산 넘어 산’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12일 오전 5시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집으로 들어가던 최모(32)씨가 집 앞을 서성이는 낯선 남성을 발견했다. 남성은 집 앞 여기저기를 사진 찍더니, 급기야는 대문에 달린 고리를 만지작거리기까지 했다. 도둑인가 싶었지만 하는 행동이 워낙 괴상했던 터라 바로 다가가 “당신 누구냐”고 물었더니 “내 집인데 그냥 사진 찍고 있으니까 상관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황당해진 최씨가 남성의 휴대폰을 뺏으려다 벌어진 몸싸움으로 소란스러워지자 집 안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남성은 그 순간에도 집 안으로 들어가겠다면서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최씨 등에게 제압당한 남성은 곧 영등포경찰서에 주거침입 등 혐의로 입건됐다.

괴한의 정체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금세 드러났다. 바로 최씨 어머니 조모(55)씨를 3년 넘게 쫓아다니면서 괴롭혔던 스토커 홍모(56)씨였다. 둘은 대학교 친구 사이였는데, 2015년 10월 우연히 만난 뒤로 홍씨는 조씨를 집요하게 따라다녔다고 한다. 어찌나 심했던지 조씨는 기존에 살던 곳을 떠나 영등포 아들 집으로 옮겨와 살고 있었다.

홍씨의 스토킹은 집요했다. 2016년 11월부터 조씨 휴대폰으로 매일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두 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초범이고 폭행 등 물리적인 피해가 없다는 이유로 ‘구두 경고’ 조치만 내려졌을 뿐 별다른 제재는 없었다.

휴대폰 번호를 바꿔도 소용없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지난해 12월까지 1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일방적인 연락을 했으며 올 2월에는 아들 휴대폰 번호까지 알아내 조씨를 모욕하는 음란성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아들이 나서 홍씨를 고소했고, 현재 홍씨는 스토킹과 무관한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통신매체이용음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조씨 가족은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경찰을 포함해 누구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현행법상 스토커 접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피해자가 법원에 직접 ‘접근금지신청’을 하는 수 밖에 없는 상황. 가족들은 “이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을 뿐 아니라 누군가 알려주거나, 알았다 해도 피해 상황을 신청자가 직접 입증해야 해 보호를 받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경찰 관계자 역시 “당장 가해자와 피해자를 떼어놓으려 해도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5월 법무부가 재발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는 경찰이 현장에서 즉시 긴급 접근금지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스토킹 처벌법’에 대한 입법 예고에 들어갔지만, 밟아야 할 절차가 많이 남아 입법화가 언제 이루어질 지 기약이 없는 상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행법은 방지책도 없고 처벌도 경미하다”며 “중대 범죄라는 인식 하에 정부가 하루 빨리 보완된 법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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