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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의 실수로 전과자 낙인… 먼저 보듬을수록 사회는 더 안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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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했던 삶이 한순간에
술 마시다가 옆 테이블과 시비로…
여자친구 성추행 장면 보고 격분…
빚 갚으려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 마이너리티 중의 마이너리티
말다툼∙경범죄로 훈방될 사건도
전과자들은 유치장에 구금되고
주변에 전과 알려저 또 다른 피해
# 해마다 5만~6만명 돌아오는데
“출소자에 중요한 건 경제적 기반
숙식∙직업훈련∙취업 지원했더니
재범률은 0.3%에 머물러”
이철호(56ㆍ가명)씨의 삶이 달라진 건 36년 전 봄, 대학 신입생 때였다. 술집에서 군 입대를 앞둔 대학 선배의 송별회를 하던 이씨 일행 4명과 옆 테이블 남성 5명 사이에 싸움이 붙었다. 싸움에서 밀리던 이씨 일행 중 한 명이 술집 주방에서 칼을 가져와 휘둘렀고, 상대편 한 명이 사망했다. 이씨 일행은 모두 구속됐고, 이씨는 징역 3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출소 후 그에게 남은 ‘빨간 줄’은 넘기 힘든 장벽이었다. 대학에선 이미 제적됐고, 취업을 하려 해도 범죄경력을 적어야 하는 신원증명서 때문에 번번히 발목이 잡혔다. 결국 영세 인쇄 업체 등을 전전했고, 자신의 삶이 나락에 떨어진 것 같아 ‘울화통’이 터질 때면 다른 사람과 싸우기도 했다.
이씨는 지난해 사기죄로 30여년 만에 다시 수감됐다. 몇 해전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차리게 도와주겠다는 지인의 말에 속아 평생 모은 재산 4억여원을 사기 당해 빈털터리가 됐는데, 딸의 결혼 자금이 필요해 지인들에게 3,000만원을 빌렸다가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출소 후 갈 곳이 없었던 그는 출소자들에게 숙식을 지원하는 법무부 산하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의 한 생활관에서 지내고 있다. 이씨는 “장애인, 미혼모 등 다른 취약계층은 시민단체 등 여러 곳에서 관심을 갖지만 전과자들은 정말 어둠 속에 있다”며 “나처럼 나이 든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젊은 출소자들만이라도 장래성 있는 직업을 갖고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교도소 밖으로 나온 사람은 6만2,800여명(기결 수형자 기준). 매년 5만~6만명이 과거 잘못에 대한 법적 책임을 다하고 사회로 돌아온다. 하지만 ‘죗값’을 계속 치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전과자라는 낙인 때문에 직업을 구하거나 인간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공무원 공인노무사 법무사 등은 형 집행이 끝난 후에도 몇 년 동안은 해당 직업에 종사할 수 없고, 전과 사실이 밝혀질까 두려워 임시ㆍ일용직만 전전하는 전과자들도 적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를 이유로 고용 주거 교육 등에서 차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전과자에게 평등권은 너무 먼 이야기다.
다른 취약계층에 비해 심리적 거부감도 유독 심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민인권의식조사(2016년)에 따르면, 전과자의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71.7%에 달했다. 이는 장애인 비정규직 다문화자녀 미혼모 등 22개 취약집단 중 외국인 노동자(72.7%) 노숙자(72.6%)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전과자 인권이 “존중된다”는 답변은 4.3%에 불과했다. 전과자는 마이너리티 중에서도 마이너리티라는 얘기다.
실수, 생계… 전과자가 된 이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범죄는 언론을 통해 접하는 살인 강간 강도 등 강력범죄다. 그래서 전과자라는 말을 들으면 그런 범죄가 먼저 떠오른다. 물론 전과자 중에는 치밀하게 계획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있지만 단 한번의 실수, 생계형 범죄 등으로 인해 전과자 낙인이 찍힌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한기훈(35ㆍ가명)씨의 비극은 결혼 몇 주 전에 벌어졌다. 퇴근 후 신혼집 앞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던 중 여자친구가 다른 남성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한씨와 상대편 남성 3명 사이에 싸움이 붙었고, 격분한 한씨는 안주를 자르는 칼을 휘둘렀다. 상대 쪽 3명은 2,3주 상해, 한씨는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지만 한씨는 살인미수죄로 4년간 복역했다. 호프집 내부에 폐쇄회로(CC)TV가 없었던 데다 여자친구마저 사건의 충격으로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는 등 추행을 입증할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싸움 직후 두려운 마음에 친구가 사는 지역에 차를 타고 간 것이 ‘도주’가 돼 불리하게 작용했다. 대기업에 다녔던 한씨는 직장을 잃었다. 지난 달 출소한 그는 “눈높이를 낮춰 취업은 했지만, 앞으로 결혼할 생각을 하면 고민이 깊어진다”고 말했다. 당시 여자친구와는 가족의 반대로 헤어졌고, 새로운 사람과 인연을 맺자니 전과가 발목을 잡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진경수(27ㆍ가명)씨는 보이스피싱인 줄 모르고 일하다 붙잡혀 1년4개월 복역했다. 그는 지난해 한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렸다가 “도박사이트의 자금을 계좌 이체하는 업무를 해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불법인 것 같긴 했지만 분식집을 운영하다 진 빚 1,200여만원을 갚을 생각에 일을 시작했다. 업체의 지시대로 여러 은행을 돌아다니며 하루 9,000만~1억원을 계좌이체하고 100만~200만원을 급여로 받았다. 하지만 일한 지 일주일 만에 경찰에 붙잡혔고, 그제야 자신이 중국에 있는 보이스피싱 일당의 인출책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진씨는 “처음에는 나만 붙잡혀서 죄를 다 뒤집어 쓴 것 같아 많이 억울했는데, 앞으로는 착실하게 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른 불행들처럼 전과 역시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것은 아니며, 예기치 않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는 “교도소에는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고 들어온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며 “출소 후 범죄 위험성이 있어 사법적으로 지속 관리해야 할 사람들도 있지만, 보호와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전과자라고 반말, 주변에 전과 경력 알리기도
전과자들은 보호받아야 할 곳에서 되레 인권침해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전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과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반말, 폭언을 듣기도 한다. 한 전과자는 “경찰이 10년도 더 지난 전과를 언급하며 ‘화려하시네요’라고 비꼬아 무척 불쾌했다”며 “제발 더 이상은 과거를 들추지 말고, 정부기관부터 전과자 인권 보호에 앞장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과 경력을 주변인에게 알려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경찰은 관내에서 비슷한 수법의 범죄가 발생하면 전과자부터 혐의 대상에 넣는데, 이 과정에서 전과가 주변인들에게 알려지기도 한다. 실제로 2016년에는 경찰이 우범자 첩보 수집 과정에서 남편의 강제추행 사실을 부인에게 알려 부부가 이혼하게 됐고, 2012년에는 27년 전 남편의 성범죄 전과를 부인에게 얘기해 남편이 자살한 일도 있었다.
또 지난해에는 검찰에서 쌍방 폭행사건으로 피의자들 대질조사를 벌이던 중 한 피의자의 전과 사실을 다른 피의자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이 진정 사건에 대해 인권위는 전과사실 발설은 “진정인의 인격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해당 지방검찰청 직원들에 대한 직무교육을 권고했다.
또 가벼운 말다툼이나 경범죄 등 비전과자라면 훈방되는 사건도 전과자들은 유치장에 구금되는 일도 적지 않다. 전과자 3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인권위의 ‘출소자의 사회적 차별에 관한 연구’(2006년)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25%가 타당한 이유 없이 경찰서로 동행할 것을 요구 받은 적이 있으며, 3분의 2 이상이 형사사법기관 종사자들에 대해 '하지도 않은 범죄까지 덮어씌우려 한다'고 답했다.
사회가 보듬어야 사회가 더 안전
비전과자도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 낮은 학력, 빈곤, 복역으로 인한 경력 공백과 나이 등 불리한 조건을 가진 전과자에게 취업의 벽은 훨씬 더 높다. 불안정한 생활은 다시 범죄로 이어지기도 쉽다. 출소 후 3년 내 다시 교도소에 수감되는 재복역률은 24.7%(2017년 기준)나 된다. 현재 복역중인 전체 수형자 중 초범은 55.6%이고, 2~4범 31.1%, 5~9범 10.2%, 10범 이상 3.1% 등 범죄의 악순환을 끊지 못한 이들이 절반에 달한다.
사업 부도 등으로 두 차례 복역한 적이 있는 이명원(49) 한울배터리 대표는 “가족도 직업도 없으니 어제 출소했다가 오늘 다시 들어오는 사람들도 봤다”며 “전과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경제적 기반”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의 새 출발을 돕기 위해 현재 출소자 8명을 고용하고 있다.
실제로 주거와 일자리 등을 지원할 경우 재범률은 매우 낮아진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1만980명의 출소자에게 숙식ㆍ주거ㆍ직업훈련ㆍ창업ㆍ취업 지원을 해줬는데, 지원을 받는 동안 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0.3%(36명)에 불과했다. 법무부의 재복역률(24.7%)과는 재범을 계산하는 기간이 달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주거 일자리 등 안정적인 생활과 재범의 관련성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 지난해 공단의 취업지원 사업인 ‘허그일자리지원프로그램’ 수료자(2,288명) 중 79.2%가 취업에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일자리를 유지하는 비율이 낮고, 대부분 단순노동이라는 점은 한계다. 천정환 동서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법무부는 모범수들이 교도소 밖에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희망센터’를 만들어 운영하지만, 대부분 단순 업무에다 유해물질을 다루는 곳도 있어서 수용자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물론, 과거 물리적ㆍ물질적으로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협했고, 미래에도 그럴 가능성이 우려되는 전과자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지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전과자들도, 전문가들도 이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전과자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해야 모두가 더 안전해진다는 사실도 외면할 수 없다. 김영순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서울지부장은 “전과자들의 사회 복귀를 도와야 사회가 안전해지고 범죄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사회가 이들을 보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용서할 때, 과거를 바꿀 순 없지만 미래는 확실히 바꿀 수 있다” 미국의 라디오 진행자 버나드 멜처가 남긴 말이다. 전과자만큼 이 말이 잘 들어맞는 이들도 없을 것이다.
글ㆍ사진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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