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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 “아이들이 '아빠도 연예인이야'라고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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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직러’. 올해, 하늘의 뜻을 안다는 나이(지천명ㆍ50)에 접어든 배우 이성민에 붙은 별명이다. 그가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워낙 다양한 직업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의사(드라마 ‘골든타임’)에서 대통령(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을 거쳐 철야 근무를 밥 먹듯이 하는 회사원(드라마 ‘미생’)부터 퇴물 조직폭력배(드라마 ‘미스코리아’)까지. 이성민은 작품마다 새 ‘옷’을 입어야 하는 배우의 천직을 누구보다 묵직하게 수행했다.
1980년대 후반 연극 무대에 올라 연기를 시작한 이성민에게 올 여름은 폭염처럼 뜨겁게 기억될 듯싶다. 이성민은 이달 영화 ‘공작’(8일 개봉)과 ‘목격자’(15일 개봉)를 연달아 선보인다.
큰 작품이 쏟아지는 여름 극장가에서 그의 다작보다 눈 여겨봐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새로운 캐릭터와 장르에 도전한 이성민의 행보다. 이성민은 ‘공작’에서 북의 외화벌이를 책임지고 있는 대외경제위처장 리명운 역을 맡았다. 데뷔 후 첫 북한 공직자 연기다.
“절망감을 느꼈어요.” 지난 9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성민에게 ‘공작’은 30여 년 차 배우가 만난 큰 ‘산’과 같았다. ‘목격자’를 찍으면서는 새로운 연기 경험을 했다. “아파트란 일상적인 공간에서 스릴러를 찍을 수 있다는 게 처음에는 신기했고 나중엔 더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목격자’에서 평범한 중년 가장 상훈 역을 맡은 이성민은 살인 사건을 목격한 후 살인자로부터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영화는 범인 찾기에 방점을 둔 기존 스릴러와는 달리 ‘당신이 살인을 목격했다면?’이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스릴러의 새길을 걷는다.
인터뷰가 끝나자 이성민은 기자에게 악수를 먼저 권했다. 큰 숙제를 마친 듯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또 ‘짐’을 싸야했다. 10일 전북 무주에서 내년 개봉할 영화 ‘미스터 주’ 촬영을 한다고 했다. 다음은 무주로 내려가기 직전 프로이직러가 들려준 신작 그리고 소시민 이성민 얘기다.
- ‘공작’을 찍다 절망감을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
“대놓고 드러내지 않지만 리명운은 대북 간첩인 박석영(황정민)과 여러 방식으로 대화를 하며 날선 감정을 전달한다. 그 대화엔 긴장이 담겨야 한다. 나와 (황)정민이가 식탁 밑에서 표창을 날리며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을 말에 담는다면 이해가 쉬울까. 그런데 생각처럼 잘 안 되는 거다. 그러니 절망감이 생겼고. 일상의 연기를 주로 했는데 다른 연기의 결이 필요했으니까. 물론 ‘공작’에서 대단한 걸 했다는 건 아니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날 흔들었다. 관객을 배려하는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기존에는 ‘나 이런 상태야’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관객이 극 중 캐릭터의 심리를 따라 올 수 있게 이끄는 여지를 남긴 연기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절감했다.”
-‘목격자’는 체력적으로 촬영이 고됐을 것 같다. 영화 후반 아파트 뒷산에서 산사태가 난 상황에서 살인자 태호(곽시양)와 벌인 격투 장면이 힘들어 보였다.
“촬영을 지난해 12월 초에 했다. 초겨울이라 입김이 나는 상황에서 찍느라 고생 좀 했다. 경기 남양주 인근 야산에서 촬영했다. 흙탕물에 머리를 박고 있는 촬영 등을 사흘에 걸쳐서 하다 보니 생각지 못한 후유증이 있더라. 목욕하고 귀를 파면 계속 흙이 묻어 나왔다(웃음). 촬영 끝나고 한 달이 지나도. 병원에 가야 하나 싶었을 정도였다. 진짜 야산에서 찍다 보니 돌들이 이곳 저곳에 박혀 있었는데 사고 없이 잘 끝나 다행이다. 워낙 악을 쓰고 액션 장면을 찍다 보니 턱이 좀 아프긴 했다.”
-’목격자’에서 살인자는 목격자들이 침묵해 살인을 반복한다. 영화가 불의에 침묵하는 세상의 공포를 다룬 것 같다.
“영화에서 상훈은 범인이 살인하는 걸 보고도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고 목격 진술을 털어놓지도 않는다. 그러다 이웃이 숨지고 가족이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왜 신고를 안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감독과 대화를 하며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영화에서 살인자인 태호는 상훈이 범행 현장을 목격한 걸 알고 반려견을 훔친다. 그러다 상훈이 경찰(김상호)에게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자 개를 가족에게 돌려준다. 조용하면 살려주겠다는 신호잖나. 가장에게는 ‘내가 침묵하면 우리 가족을 지킬 수 있다’라는 생각을 들게 할 수 밖에 없다. 이기적이지만 자신이 입을 열었을 때 혹시 가족에게 올 수 있는 피해를 생각하면 말이다. 그리고 상훈은 보험 회사에 다닌다. 숱한 사건을 보며 경찰서를 왔다 갔다 하는 일에 넌더리가 난 상황이다. 괜히 살인 사건에 휘말리지 말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면 침묵할 수 있겠다 싶었다.”
-후반부 상훈은 사고가 난 아파트 단지에서 “살려주세요”라고 외친다. 역시 아무도 나와 보지 않는다. 세상은 듣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고 할까. 또 경찰서에서 가서 “당신이 우리 보호해줄 거냐?”고 소리치며 사회 안전망에 대한 불신을 보여줬다. 세월호 참사 등 여러 사회적 상처들이 떠오르더라.
“처음에 대본을 받았을 땐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워낙 이야기가 흥미로워 대본을 무척 빨리 읽었던 기억이 난다. 감독 만나고 자세한 얘기를 나누고 촬영을 해보니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적인 이슈들과 닿아있다는 생각도 촬영한 뒤 들기 시작했다. 배우로서 내 숙제는 침묵하는 상훈에게 어떻게 설득력을 부여하느냐였다.”
-상훈은 결국 침묵하지 않는다. 세상도 그럴까.
“한 달 전인가 자전거를 타던 한 어르신이 갑자기 쓰러졌다. 안양천 인근에서 나도 자전거를 타고 있을 때였다. 무더위에 약주를 하신 상태에서 자전거를 타 갑자기 정신을 잃은 것 같더라. 다행히 의식은 있었다. 그때 한 청년이 달려와 119에 신고하고 어르신을 챙기더라. 응급차 실려 가면 그 분이 타고 온 자전거를 못 가져가니 그 청년이 따로 맡아 챙겨주면서 전화번호까지 알려주고. 물론 그 때 나도 달려가 “선생님 괜찮으세요?”라며 어르신을 살폈지만, 그 청년이 참 대단하다 싶었다. 아직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있구나 확인했다.”
-생활 속에서 집단 이기주의에 따른 공포를 영화 중반까지 잘 우려냈다. 하지만 후반에 영화가 추격 액션 영화인 ‘테이큰’처럼 바뀐다. 일관성이 흐트러진다.
“처음엔 나도 과한 거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상훈이라면 범인을 쫓아 달려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가족이 죽음의 문턱까지 몰리는 위협을 당하는 상황이었잖나. 더는 당하고만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든 거라 봐 줬으면 한다.”
-‘목격자’ 초반 상훈의 모습에 오상식 과장(‘미생’)의 모습이 비쳤다.
“회식에서 술 취한 모습을 연기할 때 나도 오상식 생각이 나더라. 감독한테 안 그래도 ‘이거 ‘미생’ 아녜요?’라고 농담했다. 술을 마신 뒤 상훈이 맥주 한 캔과 과자(맛동산)를 들고 집에 들어간다. (동물원) 김창기씨 노래 중에 ‘난 아직도 외로워’란 곡이 있다. “SUV와 주말이 있어, SNS와 친구도 있어, 결국 내가 이것뿐인가 하는 의혹에 잠길 때도 있어”라는 노래다. 촬영하는 데 이 노래가 생각나면서 중년의 쓸쓸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 냄새’가 풍긴다고들 한다.
“작품을 고를 때 일상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내 취향들이 극중 캐릭터로 쌓여 그런 게 아닐까. ‘공작’ 등 몇 편을 제외하면 그렇게 극적인 작품을 많이 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일상에선 모든 걸 내려놓는다. 집에 당연히 내 사진 하나 걸려 있지 않다. 집에선 배우로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내가 대본을 보지 않는 이상(웃음). 가끔 아이들이 ‘아빠도 연예인이야?’고 물으면 ‘아빠도 연예인이야’라고 할 정도다.”
-출연작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를 꼽자면.
“아무래도 최인혁(‘골든 타임’)과 오상식(‘미생’)이 아닐까. ‘골든 타임’ 찍을 땐 진짜 주변에서 날 의사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의사도 촬영 장면 설명하면서 모니터 보여주며 ‘아시겠지만...’ 이런 식으로 말해 황당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웃음).”
-‘목격자’는 ‘신과 함께-인과 연’ 등 대작들에 끼였다. 흥행에 부담이 클 것 같다.
“‘공작’ 개봉한 뒤 일주일 뒤 바로 개봉이라 너무 부담스럽다. 그래서인지 ‘공작’ 배우들과 감독 들이 있는 단체 카톡 방에서 다들 ‘‘목격자’ 파이팅!’ 하며 응원해준다(웃음). ‘로봇, 소리’(2016)로 처음 주연을 맡았을 때 흥행에 대한 책임감이 엄청나게 커 ‘다시는 안 해야겠다’ 엄살을 부렸는데 이젠 좀 나아졌다. 여유가 생긴 건 아니고 ‘보안관’(2016) 등을 거치며 단련이 된 것 같다.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을 정도로 관객이 들었으면 하며 여전히 마음 졸이고 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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