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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신뢰 회복 수단” 美, 공식선거에 블록체인 투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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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권∙시민사회의 활력소로
# “부재자 투표 사각지대 해소”
웨스트버지니아 첫 실시
# 공화∙민주, 프라이머리서 적용
시민사회도 앞다퉈 신기술 도입
# 정치인은 암호화폐 후원 받으며
‘혁신’을 정치적 브랜드로 삼기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정부는 지난 5월 8일 치러진 예비선거에서 미 공식 선거 사상 처음으로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투표의 문을 열었다. 해리슨 카운티와 모농갈리아 카운티 유권자 중 해외에 주둔 중인 군인을 대상으로 한 부재자 투표에 블록체인 모바일 투표를 시범 실시한 것이다. 미국은 2016년 대선 때도 전세계에서 보낸 부재자 투표 30만여표가 법정시한 내 도착하지 못해 개표조차 하지 못하는 등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참정권 침해 문제가 심각하다. 블록체인 투표는 그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대안 차원에서 모색되고 있다.
웨스트버지니아주는 이번 블록체인 모바일 투표 시험을 성공적이라 판단하고 11월 본선거에서는 모든 카운티에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정부와 주요 정당에 블록체인 투표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는 보츠(Voatz)의 공동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니밋 소니는 지난달 미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보츠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블록체인 투표의 보편화를 향한 역사적 첫발을 뗐다”며 “더 많은 사람이 더 쉽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여정”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공화ㆍ민주당 프라이머리에도 블록체인 투표
블록체인을 이용한 투표권 행사는 더 이상 상상 속의 미래가 아니다. 블록체인 투표는 이미 공식 선거뿐만 아니라 미 정당정치의 꽃인 ‘오픈 프라이머리’의 모습도 바꿔놓고 있다. 매사추세츠 민주당은 6월 2일 우스터에서 열린 주지사 후보자 지명대회에 블록체인 투표를 적용했다. 이날 대회에는 4,400여명의 대의원이 투표권을 행사했다. 앞선 4월 열린 매사추세츠 공화당 주지사 후보자 지명대회에서는 2,000여명이 참여한 블록체인 투표로 현직 주지사인 찰리 베이커를 후보로 선출했다. 같은 달 6,000여명이 참석한 미시간주 민주당 대의원 총회에서도 블록체인 투표를 통해 안건을 의결했다.
블록체인 투표는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 2월 사우스 플로리아대, 지난해 9월 터프츠 대학 학내 선거에서 보츠의 블록체인 투표가 활용됐다. 지난 2월 미국 교사 연맹 노조 선거와 지난해 11일 열린 매사추세츠 성공회 관구 연례총회에서도 쓰였다. 소니는 “단순히 투표 참여를 늘리는 게 아니라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활성화 시킨다”며 “블록체인 기술은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다시 세우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참여와 관련해 “시민들이 ‘투표’ 제도에 느끼는 거리감이 가장 큰 문제”라며 “학교나 노조, 교회 등 자신이 속한 작은 집단에서부터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투표 보안이 핫이슈가 되면서 블록체인 투표에 대한 관심이 커진 측면도 있다. 러시아 정부 해커들이 2016년 대선 당시 미국 21개 주에서 유권자 명부를 빼내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미 국토안보부는 해커가 투표 기계를 통한 해킹도 시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때문에 오는 11월 중간선거 준비에도 비상이 걸렸다.
물론 보안 문제가 부각될수록 모바일 투표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웹브라우저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모바일 투표와 달리 블록체인 투표는 운용체계(OS)가 달라 하드웨어 안전성 측면에서 강점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정보 기록은 사실상 조작이나 삭제가 불가능하다. 또 대리 투표 등의 문제를 막기 위해 안면ㆍ지문 인식 등 생체인식기술이 적용된다는 점도 유권자 신뢰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소니는 “블록체인 투표는 특히 모두가 원한다면 개표를 포함해 투표의 전 과정을 직접 감시ㆍ검증 할 수 있어 유권자 스스로 투표를 통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암호화폐 통한 정치자금 기부는 2014년 이미 허용
블록체인 투표뿐만 아니라 미 정부와 정치권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블록체인 민주주의의 등장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비트코인 등 블록체인 암호화폐를 통한 정치자금 기부의 허용이 대표적 예다.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미 연방선거위원회(FEC)는 2014년 유권해석을 통해 1인당 최대 100달러 상당을 한도로 암호화폐 기부를 허용했다. 주식ㆍ채권 등과 같은 현물 기부로 판단해 같은 기준을 적용했다. 리 굿맨 당시 FEC 위원장은 유권해석과 관련한 성명서에서 “정부 규제의 변화를 기다리기에는 기술 혁신의 속도는 너무 빠르다”고 유권해석 배경을 설명했다. 물론 당시에도 암호화폐는 익명성이 커 불법ㆍ탈법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고 반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FEC의 판단은 달랐다. 굿맨 위원장은 “암호화폐가 다른 현물 기부보다 익명성이 더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암호화폐 기부를 통제할 수단은 충분히 있다”고 명시했다. FEC는 암호화폐가 그 자체에 수정과 삭제가 불가능한 거래 기록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후원금 기부시 거치는 신원 확인이 정확하다면 암호화폐는 오히려 다른 현물 기부보다 정치자금 흐름을 투명하게 파악하기에 더 용이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같은 해 공화당 뉴햄프셔 주지사 후보였던 앤드류 헤밍웨이가 미 선거 사상 처음으로 비트코인 기부금을 받은 첫 인물로 기록됐다. 암호화폐는 특히 소액다수 후원을 활성화할 것이란 기대를 받으며 미 정치의 고질적 병폐로 꼽히는 금권정치 문제를 해소할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FEC는 2016년 블록체인 기술 등장 등의 변화를 반영하는 선거관계법 개정 의견을 공식화하며 의회에 후속 입법을 요청했다.
최근 대중의 관심이 폭증하면서 블록체인은 미 정치에서 혁신의 상징으로 여겨질 정도로 위상이 커지는 모양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정치적 브랜드로 삼는 정치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블록체인 정치인임을 자처하고 있는 미주리주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오스틴 패터슨은 예비선거가 한창이던 지난 6월 지지자로부터 13만달러(1억4,000여만원) 상당의 비트코인 20개를 후원금으로 받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기부 상한액을 초과해 FEC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패터슨 측은 당장 무제한 정치자금 모금을 허용하는 슈퍼팩(PACㆍ정치행동위원회) 제도와 형평성을 문제 삼았다. 패터슨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기부 받은 비트코인은 FEC가 허용하는 금액을 제외하고 모두 기부자에게 돌려줬다”고 일단 물러섰다. 그러나 그는 “(암호화폐는) 미국의 창의성과 자유의 미래를 상징한다”며 “앞으로도 암호화폐 정치자금을 기꺼이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스턴=글ㆍ사진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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