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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낭 아래 댓돌…그 여름의 추억이 사라져간다

입력
2018.08.09 05:00
제주 애월읍 소길리 주민들이 폭낭 아래 댓돌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강정효
제주 애월읍 소길리 주민들이 폭낭 아래 댓돌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강정효

연일 폭염이다. 낮에는 폭염이, 밤에는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제주도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각종 기상관측자료가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요즘은 에어컨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지만, 예전 사람들은 삼복더위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먼저 음식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맘때 제주의 대표 음식으로는 ‘개역’을 들 수 있다. 개역은 보리 볶은 가루, 즉 미숫가루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식은 밥에 비벼 먹기도 하고 때로는 물에 타서 마시기도 한다. 또한 복날에 닭을 삶아 먹는 육지부와 달리 제주에서는 음력 6월 20일에 닭죽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를 ‘닭제골’이라 한다. 삼복더위 중에서도 특히 이날 닭을 잡아먹어야 보약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몸이 허약한 경우에는 오골계를 삶아 먹기도 했다.

요즘처럼 무더위가 심할 때 마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은 주민들이 폭낭(팽나무) 아래서 옹기종기 모여 더위를 식히는 것이었다. 마을의 정자목 개념인 폭낭 그늘에는 돌과 시멘트로 단장한 댓돌이 놓여 있다. 여름날 농촌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 최상의 인사말이 있다. “여기 왕 낭 아래 검불령 갑서(여기 와서 나무 아래 그늘에서 땀이나 식히고 가십시오)”라는 말이다. 당연히 나무 그늘에서 쉬는 사람이 길 가는 행인에게 건네는 인사다.

애월읍 상가리의 폭낭과 댓돌. ⓒ강정효
애월읍 상가리의 폭낭과 댓돌. ⓒ강정효
애월읍 유수암리 폭낭 그늘에서 한 주민이 쉬고 있다. ⓒ강정효
애월읍 유수암리 폭낭 그늘에서 한 주민이 쉬고 있다. ⓒ강정효

제주에서 팽나무는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마을의 정자나무가 팽나무이고, 마을의 본향당 신목 또한 팽나무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제주의 농촌 마을을 다녀본 사람은 느낄 것이다. 마을 중심에 우람하게 버티고 선 팽나무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그 아래에는 시멘트로 평평하게 단장한 대(臺)가 자리잡고 있는데, 바로 제주사람들이 ‘댓돌’이라고 부르는 휴식 공간이다. 육지부에서 댓돌은 집채의 앞뒤에 오르내릴 수 있게 놓은 돌층계 즉 섬돌을 이르는데 반해, 제주에서 댓돌이라 하면 마을 안 팽나무 아래 마련된 편편한 자리를 이르는 경우가 더 많다. 대(臺)를 쌓은 돌이라 해석하면 크게 틀리지 않다. 애초에 그냥 돌을 평평하게 쌓았던 것을 훗날 시멘트로 겉을 포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냥 대(臺)라고 불리는 곳도 없지는 않다. 현재 제주에 남아있는 유물로 정자는 조천읍 조천리 연북정(戀北亭), 대(臺)로는 한림읍 명월리의 명월대(明月臺)와 제주시 외도동의 월대(月臺)가 있다. 하지만 이들 유물은 지배계층인 양반사회의 유산이었고 이름 없는 모든 마을에서는 수많은 댓돌들이 정(亭)과 대(臺)의 역할을 담당했고 오늘날까지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의 마을과 주거공간에 대해 수많은 조사연구를 했던 김홍식 교수는 장자 위주의 가족제도가 희박한 제주지역의 특성을 그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와 함께 집성촌을 형성할 만큼 지주계급이 두드러지지 않아 정자나무 아래에 돌을 쌓아 쉴 수 있는 공간인 대를 쌓는 정도였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의 폭낭과 댓돌 ⓒ강정효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의 폭낭과 댓돌 ⓒ강정효
애월읍 어음리의 폭낭. ⓒ강정효
애월읍 어음리의 폭낭. ⓒ강정효

댓돌은 단순히 휴식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의 회의 장소인 공회당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지금이야 마을마다 경로당과 마을회관까지 만들어져 이곳에서 담소를 나누지만, 예전에 마을 어른들이 모여 대소사를 논의하고 걱정하는 곳은 다름 아닌 폭낭 아래의 댓돌이었다. ‘옆집 숟가락 숫자도 안다’고 할 정도의 세세한 정보교환이 제주에서는 댓돌에서의 담소 과정에서 기인한다고 봐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요즘은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언급되는 제주의 ‘괸당’ 문화가 시작되는 곳 역시 댓돌이었던 것이다.

댓돌은 또 바로 옆에 물통이 있어 무더운 바람을 식혀주는, 마을 안에서 여름철 최고의 피서지이기도 했다. 모기가 들끓어 다소 불편했지만 무더위를 식히기에는 안성맞춤이라 장기를 두는 노인들이 모여들었고, 저녁 무렵이면 더위를 식히기 위해 돗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하는 젊은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더불어 동네 아이들에게는 둘도 없는 놀이터였다. 더러는 팽나무 위를 오르내리며 담력을 자랑하기까지 했다.

마을의 실질적인 중심이었던 댓돌도 1970년대 새마을운동 이후부터 급격한 도시화로, 요즘은 도로와 주차 공간 확충이라는 이유로 점차 사라져 가는 추세에 있다. 마을 공동체의 중심인 댓돌이 사라지는 것만큼 이웃 간의 대화도 단절돼 가는 것 같아 못내 아쉽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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