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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치매 아내 돌보다 쓸쓸히… 고령사회의 그늘 ‘노노케어’

입력
2018.08.07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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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 화장실서 숨진 상태로 발견 

 폭염에 홀로 남겨진 부인은 탈진 

 “독거노인,노인 가구 등 파악 

 정부^지자체서 지속적 관리 필요” 

[저작권 한국일보] 박구원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박구원기자

치매에 걸린 아내를 홀로 돌보던 70대 노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낮 최고기온이 34~38도를 웃도는 폭염 속, 집 안에 혼자 남겨져 며칠을 보낸 부인은 탈진 상태로 가까스로 구조됐다. 힘 없는 노인이 병든 노인을 돌볼 수밖에 없는, 사회의 무관심 속에 죽음조차 쓸쓸히 맞이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그늘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6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전 11시55분쯤 신천동 한 아파트 화장실에서 이모(79)씨가 쓰러져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거실 소파에서는 이씨 부인인 60대 박모씨가 가쁜 숨을 쉬며 탈진해 있었다. 이날 서울 낮 최고기온은 34도. 쓰러진 박씨 체온은 40.7도에 육박했다. 조금만 더 늦게 발견됐더라면 생명을 잃을 뻔했다. 소방대원과 경찰은 경증 열손상인 ‘열피로’ 증세로 판단, 박씨를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했다.

이들 노부부 집에는 에어컨 등 냉방기기가 없었다. 그 흔한 선풍기 하나 작동하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집 안의 모든 창문이 닫혀져 있어 흡사 비닐하우스를 방불케 할 정도로 실내는 푹푹 쪘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은 “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훅 몰려오고, 악취가 코를 찔렀다”고 말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남편 이씨가 지병으로 몇 년 전부터 다리가 불편해 거동이 힘들었다고 전했다. 그 와중에도 치매를 앓는 부인을 홀로 살뜰하게 돌봐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비원 홍모씨는 “할머니가 4년 전부터 분리수거를 헷갈리는 등 치매 증세를 보였는데, 이후 매주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항상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나와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노부부는 이 아파트에서 20년 넘게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발견 당일 오전 9시쯤 이웃인 A씨는 “화장실 환풍기를 통해 악취가 올라오는데 음식물 냄새는 아닌 것 같다”고 관리사무소에 말했고, 이를 수상히 여긴 부부의 가족들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다. 이틀 전인 3일에도 A씨는 “옆집 노부부가 에어컨이 없어 평소 현관문을 열어놓고 사는데 문이 안 열린 지 3일 정도 됐다”고 경비실에 연락했다고 한다. 당시 부부 집을 방문한 경비원은 문을 열어준 박씨에게 “남편은 어디 있냐” 물었고, “집 안에 있다”는 말에 그냥 돌아왔다. 이씨가 언제 숨졌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웃들은 1979년 입주를 시작한 해당 아파트에 둘만 사는 노부부가 많아 언제든 이런 비극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14%를 넘어서며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개념이 희미해지면서,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 케어’ 비중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치매 등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 혼자 사는지, 가족과 함께 사는지조차 제대로 조사되지 않은 게 우리 현실이다. 박명배 배재대 실버보건학과 교수는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 차원에서 독거노인이나 노인들만 거주하는 가구 등을 파악해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의 부패 정도가 심해 사망시점과 사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기는 힘들지만 화장실에서 이씨가 넘어져 변을 당했고, 치매를 앓던 부인은 이를 외부에 알리거나 도움을 청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박씨는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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