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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째 놀고 있는 남편, 어떻게 일하게 만들까요

입력
2018.08.06 04:40
수정
2018.08.06 13:32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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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원기자
박구원기자

결혼 9년 차 워킹맘입니다. 10년 전 만난 남편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회 생활을 거의 하지 않아요. 남편의 회사 생활은 1년 6개월 만에 끝났습니다. 남편은 자주 어지러움을 호소했어요. 여러 병원을 다닌 끝에 부정맥이라고 해서 심장 박동기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아마 당시에 12시간 넘게 일하면서 과로가 생기고 흡연과 음주가 영향을 준 건 아닐까 싶어요. 집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남편은 완치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시작했어요. 중소기업에서 경리로 일했습니다. 남편은 건강을 회복한 후에도 취업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저희에겐 무엇보다도 소중한 쌍둥이 아들이 태어났고요. 한 번에 돌봐야 할 아이가 둘이다 보니 부모 중 누군가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했죠. 더 높은 연봉을 받는 회사로 이직한 제가 계속해서 일을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고, 저는 출산 100일 만에 다시 출근했어요. 남편도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작은 아이들을 어떻게 혼자 돌봤는지 기특하기도 해요.

문제는 아이들도 어느덧 다섯 살이 됐고, 한 달에 40만~50만원씩 적자가 난다는 점이에요. 2년 전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처음 갈 때부터 남편에게 사회생활을 권해봤어요. 남편도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 자동차정비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하지만 나이 서른 아홉에 다시 들어간 일터에 남편은 적응을 못 했어요. 첫 정비소는 공장장과 성격이 맞지 않는다며 한 달 만에 그만뒀어요. 두 번째 회사에서도 사수와 관계가 좋지 않아 6개월을 넘기지 못했어요. 그게 벌써 1년 전입니다. 결국 제가 주말에 식당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까지 생계를 이끌고 있어요.

남편은 굳이 자신이 돈을 벌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아직도 시댁에 가면 어머님이 남편에게 5만~20만원씩 주머니에 찔러주시곤 합니다. 반대로 제 친정은 너무 가난해요. 저는 매달 생활비 30만원을 드리기 위해 일을 할 수밖에 없어요. 제가 그만큼도 못해 드리면 친정 엄마 약도 못 사 드시니까요. 어렸을 때 술에 취한 아빠는 엄마를 때렸고, 엄마는 저 때문에 도망을 못 가는 거라고 했어요. 저는 그런 엄마를 배신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견뎌왔어요. 그래서인지 생활력이 없는 남편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남편이 전업주부로 육아와 살림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제 성에 차지 않습니다. 남편이 살림을 잘하면 그냥 제가 돈을 벌면서 살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유치원 선생님과의 연락도 저에게 떠맡기고, 퇴근 후엔 저에게 저녁을 차려달라고 합니다. 공과금 처리, 아이들 옷 챙겨 입히기, 냉장고 청소 등은 기대할 수 없어요. 단순한 청소와 빨래, 아이들 밥 먹이기가 남편의 역할입니다. 저는 주말에 반찬을 만들고,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똑같이 살림을 해야 해요. 그렇다고 남편이 돈을 많이 버는 걸 원하는 것도 아니에요. 남편이 한 달에 100만원이라도 번다면 그 돈을 모아서 나중에 저희 가게라도 차리고 싶은 소망이에요. 그런데 둘 다 하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언제까지 남편의 무능력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언제까지 주말도 없이 일하며 집안을 책임지고 살아야 하는지 너무 답답해요. 남편에게 미래를 설계해보라고 해도 취업에 관한 대화는 늘 회피합니다.

남편은 경제활동뿐 아니라 사교 활동도 거의 하지 않아요. 친구들도 일 년에 두 번 정도 만납니다. 매일 저녁 술을 마시고, 아이와 제가 잠들면 새벽까지 컴퓨터 게임을 해요. 제가 남편을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결혼적령기에 만났던 남편은 다혈질인 제 성격을 다 받아준 착한 사람이었어요. 다만 제가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최근에 병원에 갔더니 자궁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건강도 나빠졌어요. 혹시 제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일을 못 하게 되거나 제가 남편을 떠난다면 독립하지 못하는 한 남자가 인간으로서 가엽고 답답해요. 어떻게 해야 남편이 일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할 수 있을까요?

오주원(가명ㆍ40ㆍ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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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씨,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는 걸까요?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 무엇을 채우려고 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언제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까요? 무엇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 결혼생활이 불행해지는 걸까요? 저는 주원씨와 함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찬찬히 생각해보고 싶어요.

주원씨는 지금 남편에게 화가 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너무나 이해가 갑니다. 남편이 단지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남편이 전업주부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주원씨가 이렇게까지 화가 나진 않았을 거예요.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녀 오면 씻겨 주고, 동화책도 읽어주고, 반찬도 만들어 놓았다면. 하지만 지금 남편은 가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어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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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함께 손을 잡고 가는 인생의 행로입니다. 결혼식의 마지막 순서는 부부의 행진이에요. 함께 손을 잡고 가는 인생의 첫발을 함께 내딛는다는 의미예요. 미래에 대한 계획, 앞으로의 비전, 가정의 경제상황, 자녀 교육 등을 함께 논의하고 좋을 때나 힘들 때나 서로를 지지하겠다는 뜻이 포함돼 있어요. 그런데 주원씨는 남편에게서 그런 점을 충족받고 있지 못한 것 같아요. 남편의 경제적 무능함보다 더 큰 상실감을 주는 건 무력감이라고 생각해요. 남편은 앞으로 자신이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놔버린 사람처럼 무력하고 의욕이 없어요.

남편의 입장에서 변명을 굳이 해보자면, 남편은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어요. 부정맥으로 인해 느끼는 불규칙한 심장 박동은 마치 생명을 곧 잃을 수도 있겠다는 좋지 않은 기분을 남겨요. 심장 박동기 이식 수술을 했다면 괜찮아졌겠지만, 심장은 생명과 직결되는 장기이기 때문에 남편은 아직까지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원씨가 남편과 함께 병원에서 전문의를 만나볼 것을 권합니다. 심장내과 전문의에게 부정맥 예후에 대해 정확히 듣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남편이 스스로 공황장애가 있다고 느낀다면 그 점에 대해서도 함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어요. 병에 대해 주원씨와 남편이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주원씨에게는 게으른 남편으로 느껴지지만, 남편은 ‘갑자기 또 건강에 이상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당신은 건강하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남편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 볼게요. 왜 결혼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많은 대답은 사랑일 거예요. 기쁨은 물론 어려움에 대한 감정을 나누며 살아야 사랑이 지속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저는 이걸 ‘인생의 대화’라고 표현합니다. 어릴 때 고통부터, 결혼 전 갈등은 물론 현재 삶에 대해서도 고통을 나누고 위로받는 대화가 중요해요. 그런데 남편은 미래의 삶에 대한 대화를 회피합니다. 인생의 대화가 두 사람 간에 이뤄지고 있지 않아요.

남편은 결혼 전에도 부모님으로부터 대부분 경제적 도움을 받을 정도로 자기주도적이지 못했어요. 한 사람의 성인이 자신의 인생을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살아가려면 성장과정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사람은 누구나 존엄성을 가진 존귀한 존재이지만 모든 사람의 능력이 같지는 않아요. 그건 인정해야 합니다. 능력을 떠나 자기주도적인 사람은 가정을 이루면 본인이 주체가 되어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겠지요.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가족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노력할 거예요. 그런데 남편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아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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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에 자세히 나와 있진 않았지만, 남편은 ‘건강한 좌절’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거 같아요. 건강한 좌절을 경험시키는 양육방식이란 마음대로 충족되지 않는다는 걸 건강한 형태로 경험시켜주는 거예요. 자녀를 일부러 괴롭히지 않고, 자녀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한 단계 더 애를 써주는 것을 의미해요. 그런데 지금도 용돈을 받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그런 좌절의 경험을 해보지 못한 거 같아요. 건강한 좌절을 겪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 인생을 살면서 겪는 좌절을 극복할 힘도 생기지 않습니다. 남편은 사회 경험이 별로 없어요. 취업도 잘 되지 않습니다. 성인으로 겪는 좌절입니다. 어린 시절 건강한 좌절을 경험한 사람은 체면이 구겨져도 여기저기 이력서를 쓰고 ‘뭐든지 시켜만 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해요. 그런데 남편은 그렇지 않아요.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남편은 유순한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심약한 사람이에요. 좌절과 포기도 빠르고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시도하지 않는 것 같아요.

반면 주원씨는 굉장히 자기주도적인 사람이었어요. 오히려 모든 것을 주도하고 강압적으로 대하는 사람과도 맞지 않았을 가능성이 커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보다는 현재 남편이 마음에 쏙 들어왔을 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렇기 때문에 남편으로부터 위안을 받는 부분도 있었을 거라는 점이에요. 그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주원씨가 남편에게 느끼는 답답함은 주원씨의 어릴 적 경험으로 인해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친정 어머니가 “너 때문에 내가 이러고 산다”라고 표현한 건 자녀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입히는 독설이에요. “내 결혼생활이 불행하지만,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는 네가 어른이 될 때까지 소임을 다 할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천지차이의 표현이에요. 주원씨는 그런 어머니에 대해서 자신이 죄책감을 가졌을 거예요. 어머니의 불행이 자신 때문이라는 미안함을 느낀 거예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자신이 소중한 사람에게 혹처럼 느껴지는 경험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주원씨는 어린 시절부터 가까운 가족을 버릴 수도 없고, 본인이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짐덩어리로 느꼈을 거예요.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고 무기력함을 느꼈을 까요? 상황은 다르지만 남편의 경제적 무능함이 어린 시절부터 해결되지 않은 높았던 갈등 덩어리를 건드리게 되어 무력감과 불행감 그리고 좌절과 분노가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는 두 사람이 부모로서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주원씨의 어린 시절과 독립적이지 못한 남편의 특성을 쌍둥이 아이들에게는 물려주지 않아야 하니까요. 두 분은 한발 물러서서 스스로를 바라보세요. 특히 남편에게는 더는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좌절을 극복해야 할 나이가 됐음에도 못하고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하면 됩니다. 전업주부 역할을 하기로 했다면 제대로 하세요. 게임 하는 시간을 반으로 줄여 아이들과 놀아주세요. 밖에 나가서 신체놀이를 하거나 집에서 퍼즐놀이라도 하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세요. 아마 스트레스를 받을 겁니다. 그게 좌절이에요. 사랑하는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통해 이전에 겪지 못했던 건강한 좌절을 이제라도 경험해 보길 바랍니다.

주원씨도 남편이 건강한 좌절을 경험할 수 있도록 힘을 합치기를 바라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견디고 극복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온 주원씨는 그 과정에서 억울함과 한이 맺혀 있는 것 같아요. 주원씨의 삶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어린 시절 고통이 남편 어깨에 올라가 있는 면도 없지 않아 있어요. 그걸 올려둔 채로 보면 남편의 문제가 더 무겁게 느껴질 거예요. 남편과 인생의 행로를 같이 걸어가겠다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 무게를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정리=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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