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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선언 100일] 역사적 한걸음 이후… 전쟁에서 평화로 패러다임 이동

입력
2018.08.03 04:40
수정
2018.08.03 16:26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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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월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시켜

北, 비핵화ㆍ평화 구축 약속 끌어내

종전선언 요구하는 北과 주저하는 美

로드맵 부재 속 남측 중재 역할 커져

#2

남북은 확성기 철거ㆍ통신선 복구

20일 이산가족 상봉… 교류 활발

안 풀리는 북미 협상이 최대 관건

그래픽=김경진 기자
그래픽=김경진 기자

남북, 판문점 선언 이행 의지 증명한 100일… 비핵화 협상 난항도 돌파할까

5일은 4ㆍ27 남북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을 도출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북한은 ‘체제 보장을 통한 비핵화’를, 미국은 ‘비핵화를 통한 관계 개선’을 주장하며 북미 협상이 난항이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한달음에 완성될 듯 했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교착 상태에 빠지자 한반도의 봄이 또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전쟁 가능성을 점치는 게 일상이었던 8개월 전을 생각하면, 평화를 논하는 지금이 더 나은 상황인 건 분명하다. 속뜻을 두고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남ㆍ북ㆍ미가 ‘한반도 평화’라는 공통의 목표를 두고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패러다임 변화라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손을 잡은 채 활짝 웃고 있다. 판문점=고영권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손을 잡은 채 활짝 웃고 있다. 판문점=고영권기자

전쟁에서 평화로… 물길 바꾼 판문점선언

변화의 단초는 판문점 선언이다. 김기정 연세대 교수는 4ㆍ27 남북 정상회담 직후 개최한 한국포럼에서 판문점 선언을 이렇게 해석했다. “위기에서 평화로의 (변화를) 급속하게 이뤄냈다는 점에서, 국제정치 영역에서 결정해 온 한반도 문제를 민족 내부적인 결정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현상 유지의 논법에서가 아니라 가보지 않은 길로의 전환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다.”

판문점 선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했다. 공고한 남북관계를 추진 동력으로 ‘핵 없는 한반도’라는 공동의 목표를 추진하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었다.

뒤이어 6월 12일 사상 최초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하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지속적ㆍ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했다. 북미 양국은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한다”는 문구를 공동선언문에 넣으면서, 북미 협상 과정에서 남한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그래픽=김경진 기자

北美 비핵화 협상 교착… 南 중재 기대↑

협상 우선순위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해지자 정부는 접점 찾기에 바쁜 행보다. 북한은 비핵화와 보상이 동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기본으로,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겠다’는 최소한의 성의라 여기는 종전선언을 서둘러 채택할 것을 끈질기게 종용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선뜻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비핵화의 끝이 어디인지도 불분명한데, 협상 초기 단계에서 미 행정부 단독 결정으로 제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당근’인 종전선언 카드를 내어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국내 정치적 부담도 상당한 데다, 남ㆍ북ㆍ미 3자에 중국이 참여하는 방향으로 기우는 상황도 마뜩잖다.

올 가을 개최키로 남북이 합의한 남북 정상회담을 이르면 8월로 앞당긴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난국 타개에 목적이 있다. 1차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 분위기를 조성하고 2차 회담(5ㆍ26)으로 취소됐던 북미 정상회담을 다시 궤도에 올려놓았던 것처럼 3차 회담을 통해 더딘 북미 협상 시계에 속도를 붙이겠다는 심산이다.

우선 정부는 종전선언을 추진하되,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로 수위를 낮추는 방식을 유력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판문점 선언에 명기된 ‘연내 종전선언’을 위해서는, 거의 유일한 모멘텀이라 할 수 있는 9월 유엔총회를 활용해야 하고, 남한도 보다 적극적으로 중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북미 간 비핵화ㆍ체제안전 보장안 교환을 위해서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현재 북미 대화가 진전되지 않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로드맵 부재’”라고 진단하며, “우선 한미가 일정표에 합의하고, 중국과 공감대를 형성한 뒤, 미중과의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달 31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남측 수석대표인 김도균(왼쪽 두번째) 국방부 대북정책관이 북측 수석대표인 안익산(오른쪽 두번째) 육군 중장과 악수하고 있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31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남측 수석대표인 김도균(왼쪽 두번째) 국방부 대북정책관이 북측 수석대표인 안익산(오른쪽 두번째) 육군 중장과 악수하고 있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판문점선언 이행 의지 확고한 남북, 돌파구 마련할까

비핵화ㆍ평화체제 구축 외에도 남북관계 발전, 군사적 긴장 완화를 두 축으로 하고 있는 판문점 선언의 이행 상황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후한 편이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대북제재와 상관없이 이행 가능한 부분들은 잘 추진되고 있으며, 북핵ㆍ평화체제 문제도 소강상태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봤다.

남북은 우선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후속회담을 군사ㆍ철도ㆍ도로 등 분야에서 7차례에 걸쳐 개최했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도 8월 중순 개소를 목표로 시설 개ㆍ보수 공사에 한창이다. 8ㆍ15를 계기로 한 이산가족 상봉행사도 20~26일 금강산에서 열 예정이다. 판문점 선언 이후 민간 방북 횟수는 총 7건, 북한주민 접촉수리 건수는 총 206건(7월 31일 기준)으로 제한적으로나마 민간 교류도 이뤄지고 있다.

군사 분야에서도 진전을 보이고 있다. 군사분계선(MDL) 지역 확성기 철거를 시작으로 남북은 6월 8차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동ㆍ서해지구 군 통신선 복구에 합의한 뒤, 서해 군 통신선 복구를 완료했다. 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ㆍ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의 상호시범적 철수ㆍDMZ 내 공동유해발굴 등에 대해서도 협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남북이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당초 정부 구상대로 남북ㆍ북미 대화의 선순환 구조를 통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아직 확고하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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