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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회 중 부결은 단 한번… 시ㆍ도의회 해외출장 심사위원회는 '거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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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4년간 사실상 100% 가결
작년 충남에서 유일하게 부결
그마저 출장 목적 바꿔서 떠나
#2
위원 7~9명 중 현역이 3~4명
동료나 자신 출장에 반대 거의 안해
#3
명확한 심사 기준도 없어
엉뚱한 출장 계획도 ‘프리 패스’
“정부가 강력한 기준 마련해야”
광역의원들의 방만한 해외 출장은 거의 유일한 제재 장치인 ‘공무국외여행 심사위원회’가 거수기 역할에 머물고 있는 탓이 크다. 관광에 가까운 일정을 수정하게 하고, 부결할 의무가 있음에도 구체적인 심사기준이 없을뿐더러 의원들이 참여하는 구조적인 결함까지 안고 있다. 여기에 의원들이 사전 예약을 마친 뒤 취소 시 발생하는 위약금과 빠듯한 업무 일정을 핑계로 심사를 방해하는 관행이 자리 잡은 사이 심사위가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본보가 지난 4년(2014년 7월~2018년 6월)간 전국 17개 시ㆍ도의회에서 열린 공무국외여행 심사위원회를 전수 조사한 결과, 심사위가 총 277회 개최되는 동안 부결된 해외 출장 안건은 단 한 건에 불과했다. 사실상 100%의 확률로 안건을 올리기만 하면 출장을 갈 수 있단 뜻이다. 2017년 초 충남도의회 심사위는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이 절정에 달했다는 이유로 유일하게 출장을 부결시켰지만, 결국 해당 의원들은 그해 출장 목적을 변경해 해외로 떠났다.
심사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는 구조적인 한계점이 크다. 현역 의원과 민간위원으로 구성되는 심사위는 해외 출장을 가려는 의원 한 명이 대표로 출국 20~30일 전 계획서를 제출하면 열린다. 심사위에서 대표 의원이 출장에 대해 설명하면 표결을 거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외국 중앙정부의 초청, 자매도시 교류 건 등에 대해서는 아예 심사를 받지 않도록 되어 있어 전체 절반에 달하는 해외 출장은 아예 제재 장치가 없다. 구성도 허술하다. 7~9명으로 구성되는 심사위는 광역의원 3~4명에 나머지는 지역의 대학교수나 시민단체 임원 등 외부 민간위원들로 채워진다. 하지만 동료 의원의 출장이란 점과 자신들도 출장을 나가야 한다는 이유로 사실상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지는 일은 없다. 민간위원 중 일부 역시 전직 시ㆍ도의원 출신이거나 친분으로 얽혀 있는 경우가 흔하다. 한 도의회에서 4년간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던 A씨는 “말도 안 되는 관광 일정을 가져와 반대 의견을 강하게 피력해봐도 표결을 거치면 반대표가 절반을 넘은 적이 한 번도 없다”라며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자신이 가는 출장에도 영향을 줄까봐 의원 심사위원들은 동료 의원들의 출장에 쉬쉬하기만 한다”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애초 명확한 심사 기준이 없어 엉뚱한 계획도 크게 반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단순 견학 억제’, ‘필수인원 한정’ 등 모호한 기준만 있을 뿐 기간 내 최소 기관 공식방문횟수나 동선의 효율성 등을 따지는 기준이 없어 외유성 계획을 짜와도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A씨는 “사회적 경제라는 추상적 주제를 들고 와 해외의 도청과 도의회를 견학하는 수준으로 가겠다고 해도 이를 막을 뾰족한 명분이 없다”라며 “이를 이용한 일부 의원들은 서로 다른 상임위원회 소속이었지만 남은 출장 예산을 쓰기 위해 모여 엉뚱한 주제로 출장 계획을 만든 뒤 심사를 해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출장 일정 역시 주제가 결정되면 여행사에 위임돼 제대로 된 연구단체나 기관을 섭외하기보다 의원 입맛에 맞는 관광 일정으로 채워지기에 십상이다.
위약금과 촉박한 시간을 핑계로 드는 것도 심사위를 부담스럽게 하는 요소다. 대부분 계획서가 제출되는 시점에 이미 호텔, 항공권 등 예약을 마친 상태로 부결 시에는 적잖은 위약금을 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민간 심사위원 출신 B씨는 “거의 모든 출장이 심사위 개최 전 이미 다 예약이 돼 있는 상태로 최대 50%까지 위약금을 내게 되면 의회 예산에 타격을 주게 된다”라며 “여기에 의원들이 국외 활동에 나갈 수 있는 일정이 많지 않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 시간ㆍ예산 등을 고려해 어쩔 수 없이 가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라고 말했다. A씨는 “일부 의원은 관광 일정으로 가득한 계획서를 제출하면서 심사 통과를 위해 전에 갔던 방문지로부터 초청 공문을 제출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결국 계획 초기 단계부터 이를 제대로 평가할 장치가 필요하단 지적이다. A씨는 “의회 측에 심사 매뉴얼을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사무처 안에서 해결할 수 없다며 흐지부지됐다”라며 “행정안전부가 강력한 지침을 내려 계획에 대한 기준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B씨는 “그때그때 급하게 계획서를 내밀 게 아니라 연초에 계획서를 제출하게 해 꼼꼼히 일정을 수정하며 진짜 연구에 필요한 출장만을 승인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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