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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제 한 달… “유예기간만 벌고 달라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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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짱만 끼고 있는 기업ㆍ정부
하루 생산ㆍ배송 물량 그대로인데
회사에선 “일찍 퇴근하라” 닦달
‘9시 출근’이라 적고 8시 출근도
#처벌 유예 6개월 그냥 허비하나
포괄임금제 지도 지침 지지부진
유연 근로시간제 보완 조치도
정부 “실태조사 해보겠다” 느긋
지난 1일 도입된 ‘주52시간 근로시간제’는 과로에 시달리는 일상을 바꿀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동시에 정부와 기업, 근로자 모두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여서 현장의 혼란 역시 함께 예고됐다.
하지만 사실상 6개월 유예라는 정부 조치 때문일까. 시행 한 달이 됐지만, 기업 현장은 예상보다 훨씬 조용하다. “호들갑에 비해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러다가 본격 시행되는 내년 초에 또다시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 또한 적지 않다.
30일 재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주52시간제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는 예상했던 것만큼의 큰 혼란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준비가 잘 된 덕분이라기보다는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다들 팔짱을 끼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6개월 처벌 유예기간을 두면서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에 사업장의 분위기가 확 바뀌진 않았다”고 전했다.
특히 규모가 작은 기업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남의 얘기’라는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이모(30)씨는 “계약서는 오전9시 출근이라고 썼지만 다들 암묵적으로 8시까지 출근하는 분위기라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며 “주변만 봐도 출ㆍ퇴근 시간을 가짜로 쓰고 야근시간을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털어놨다.
업무를 줄이지는 않은 채 일단 근로시간부터 줄인 기업 측의 '관리감독 강화'로 근로조건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됐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한 제과업체는 점포 당 생산 등급에 따라 근로시간을 하루 30분~1시간 가량 줄이면서 정작 하루에 만들어야 할 생산량은 조절하지 않았다. 이 업체에 근무하는 제빵기사 A씨는 “이전에 하던 대로 정해진 물량을 만드는 중에 현장 관리자로부터 ‘근로시간이 단축됐으니 일찍 퇴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면서 “그렇다고 어떻게 만들던 빵을 그대로 두고 나갈 수 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번 법 개정으로 근로시간 특례에서 제외돼 내년부터 주52시간 근무가 적용되지만 올해부터 선제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인 유명 전자상거래업체도 사정은 비슷하다. 배송을 담당하는 B씨는 “하루 11시간 근무할 때도 배송물량을 다 소화하지 못해 연장근무가 다반사였는데, 일하는 시간을 줄이니 이제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일해도 모자를 지경”이라고 털어놨다.
시행 유예기간에 제도가 안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촘촘한 준비를 해야 하지만, 정부 또한 매우 느긋하다. 애초 근로시간 단축 시행에 맞춰 포괄임금제 지도지침을 수정하겠다던 계획은 몇 개월 째 감감무소식이다. 포괄임금제는 연장ㆍ야간근로 등 각종 법정 수당을 실제 근로시간과 관계 없이 사전에 정한 뒤 급여에 포함, 일괄 지급하는 제도다. 정부는 정확한 근로시간을 따질 수 없는 업무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돼야 할 포괄임금제가 ‘공짜 야근’의 수단으로 악용되자 이를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사업장 지도지침을 6월에 발표하겠다고 밝혔으나 “도입 사업장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운영실태를 조사하고 있다”는 답만 되풀이하고 있다.
고용부가 지난 6월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유연 근로시간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탄력적 근로시간제로 현행법 상 3개월로 제한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과 관련해 논란이 많은 상황에서 아직까지 본격적인 논의를 위한 준비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서도 “하반기 실태조사를 통해 단위기간 확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만 답했다. 그나마 특별연장근로제도에 대한 인가 기준을 내놓은 게 법 시행 후 이뤄진 조치이지만, 이 또한 원론적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정기간을 그저 흘려 보낼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법 준수가 불가능한 부분을 재정리하고 보완을 모색하는 시간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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