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겨를] 행운 혹은 저주? 징크스와 루틴의 세계

입력
2018.08.01 04:40
구독
라파엘 나달. AP 연합뉴스
라파엘 나달. AP 연합뉴스

장면 1. 타석에 들어서 흙을 고르고 두 세 번 점프를 한다. 그리고 헬멧을 벗어 냄새를 ‘킁킁’ 맡는 듯하더니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다시 쓴다. 이어 왼 손으로 왼 허벅지를 탁 치고 방망이로 홈플레이트 옆에 선을 쫙 그은 뒤에야 타격 자세를 잡고 투수의 공을 기다린다.

장면 2.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1위인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경기 전 연습을 마치고 벤치로 돌아가다가 코트 라인을 밟지 않기 위해 보폭을 살짝 크게 한다. 그리고 물과 음료수를 마신 후에는 상표를 특정 방향 쪽으로 정성스럽게 정렬한다.

스포츠 선수들의 독특한 습관적 행동에서 접하는 단어, 징크스(Jinx)와 루틴(Routine)이다. 징크스란 미국 속어로 재수 없는 물건, 불운 등 명사로 쓰이기도 하고, 불행을 가져오다, 트집 잡다 등의 동사로 쓰이기도 한다. 징크스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William Lingard의 'Captine Jinks of the Horse Marines'라는 노래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노래의 내용은 훈련을 나간 기병 대장 징크스가 나팔소리 때문에 병이 나고 또 말에 오르는데 모자가 발판에 떨어지는 등의 불길한 일들이 계속 생긴다는 내용이다. 또 고대 그리스에서 마술에 쓰던 딱따구리의 일종인 ‘개미잡이’라는 새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원래는 불길한 징후를 뜻하지만 일반적으로 선악을 불문하고 불길한 대상이 되는 사물 또는 현상이나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인 일 등을 말한다. 서양에서는 13일의 금요일, 우리나라는 숫자 4 등이 불길함을 상징하고, 아침에 까마귀가 울거나 못 볼 것을 봤으면 재수 없다고 하는 것도 징크스의 일종으로 대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가령 수염을 기르던 선수가 어느 날 아침에 면도를 하고 그 날 경기에서 졌다면 면도 때문에 졌다고 믿게 된다. 이처럼 어떤 조건이 만들어져서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믿는 것이 징크스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로 인해 경기 전이나 경기 중에 느끼는 불안감이 실제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부정적인 결과를 예측하고 불안 심리의 악순환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는 인과 관계보다 우연의 결과가 더 많지만 과거 한 두 차례 실패를 근거로 좋지 않은 결과만을 추정한 불안한 심리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 징크스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또 다른 습관이 바로 루틴이다. 루틴이란 '특정한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일련의 명령'을 뜻하는 컴퓨터 용어이지만 스포츠에서는 어떠한 동작을 하기 전 긴장감을 떨치기 위해 습관적으로 행해지는 반복적 행동들을 통틀어 일컫는다.

즉 징크스는 부정적인 결과를, 루틴은 긍정적인 결과를 예상하고 행동하게 한다는 차이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박한이의 행동은 긍정적 결과인 좋은 타격을 기대하며 하는 행위이기에 루틴이고, 나달의 그것은 불안한 심리에서 비롯된 징크스인 것이다.

선수들이 루틴을 행하는 이유는 불안감과 초조함 해소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면 경기 내내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이 입 속 해바라기 씨앗이나 침을 뱉는 이유다. 불안할 때 생기는 무의식 행동을 그대로 놔두면 ‘버릇’이고 자기만의 규칙으로 만들어 거기에 염원을 담으면 ‘루틴’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행동을 꼭 해야 편하다는 선수들이 많다. 반대로 그 중 하나라도 빼먹으면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마음이 불안하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종목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특히 샷마다 제한시간이 40초인 골프 선수들은 불필요한 행동을 최대한 억제하고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루틴대로 샷을 하는 데 집중한다. ‘골프 황제’라 불리는 타이거 우즈(미국)도 승부의 순간 ‘방대한’ 루틴을 행한다. ‘징크스의 화신’이라 불렸던 김성근 감독은 과거 이 때문에 곤란해진 적도 많았다고 한다. 모자를 벗으면 지는 징크스가 있어서 예의를 갖추어야 할 자리에서도 절대 모자를 벗지 않아 오해 받았던 일 등이다.

보통 루틴과 징크스를 혼용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두 가지는 정반대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인간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버릇이 나온다. 늘 승패로, 성적으로 평가 받는 스포츠에서 유독 많이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환희 기자 hhsung@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