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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프가 사는 세상] 그림보다 더 그림같은 갤러리북 찍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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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아니라 마술인가 싶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담은 ‘갤러리북’ 이야기다. 1888년 그린 ‘생트 마리 해변의 고깃배’가 실린 페이지를 펼쳤다. 거칠거칠 두툼한 유화 물감의 마티에르(질감)가 분명 느껴졌다. 미술관 조명이 반사되는 듯, 화면이 시원하게 환했다. 말 그대로 그림 같았다. 그런데 반전. 만져 보니 매끌매끌한 종이였다. 책 만드는 종이보단 조금 두꺼운, 흔한 종이. ‘프린트 디렉터’, 풀어 쓰면 ‘인쇄 감독’인 유화(45) 유화컴퍼니 대표가 종이 위에 부린 마술 아닌 마술이었다.
‘갤러리(화랑)를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한 책’이라는 뜻의 갤러리북은 유 대표의 발명품이다. 그림이 정말로 그림처럼 보이게 하는 인쇄 기술을 개발해 만들었다. 올 봄 책이 나오기까지 15년이 걸렸다. 고흐의 고향인 네덜란드 미술관 사람들에게 먼저 보여 줬다. 그런 기술을 먼저 개발한 누군가가 있다면 네덜란드부터 찾아 갔겠지 싶어서였다. 경기 고양시 오피스텔의 방 하나짜리 사무실에서 만난 유 대표의 이야기. “책을 본 사람마다 깜짝 놀랐다. 크뢸러-뮐러 미술관 사람은 대화한 두 시간 내내 책을 아기처럼, 보물처럼 품에 꼭 안고 있었다. 이 기술은 지구에서 나만 갖고 있구나, 확신했다.”
프린트 디렉터라는 이름은 유 대표가 만들었다. 그에게 인쇄는 영화 한 편 찍는 일과 같다.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공정을 지휘한다. 분업의 시대에 모든 걸 혼자 하다니. “책의 질(質)을 위해서다. 미래의 책은 나처럼 만들어야 할 거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엔 책의 목적이 정보 전달이었다. 이제 정보는 스마트폰에서 전부 얻는다. 책은 존재 자체로 남겨질 만한 가치가 있어야 남는다. 그 가치는 질이다. 질을 높이려면 책 만드는 모든 과정을 알고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이토록 자신만만한 괴짜, 유 대표의 인생 이야기부터. 그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나고 자랐다. 미술이 좋아서 디자인 전공으로 미대에 입학했다 한 학기 만에 중퇴했다. “미술을 워낙 잘했다. 교수가 유난히 아꼈다. 부담스러워서 그만 뒀다. 역시 학교가 안 맞는구나, 했다. 어릴 때부터 그만 두는 걸 잘했다. 출석일수로 따지면, 초등학교는 절반만 다녔고 중학교는 3분의 2쯤 다녔다. 학교가 상상력을 방해한다 싶으면 못 참았다. 고등학교는 교칙이 빡빡해서 그나마 좀 다녔다.” 학교 대신 책에서 세상을 배웠다. “아버지 친구가 사업이 망해 짐을 전부 우리 집에 옮겨 뒀다. 방 하나가 책으로 꽉 찼다. 3년 동안 책을 모조리 읽었다.”
대학을 그만 두고는 6년 가까이 놀았다. 스물 여섯 되던 해 책 디자인 회사에 들어갔다. “어머니가 칼국수 식당을 했는데, 벽에 걸어 둔 내 그림을 보고 회사 사장님이 일을 배워 보라고 했다. 낙하산 특채였다(웃음). 책 만드는 일에 푹 빠졌다. 주말도 없이 회사에서 먹고 자며 4년을 보내고 나니 벽이 나타났다. 인쇄 기술의 벽이었다. 벽을 넘어 보려고 회사를 나왔다.” 2002년 인쇄 선진국인 독일로 떠났다. 45일간 유명하다는 인쇄소는 다 다녔다. 실망했다. 독일도 그다지 다를 게 없었다고 한다.
귀국해 ‘나홀로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인쇄기 빌려 실험 한 번 하는 데 400만~500만원이 들었다. 6개월 만에 1억 원을 쓰고도 소득이 없었다. 자유로운 영혼은 스스로는 자유롭지만 주위 영혼들을 피폐하게 하는 법. 어머니, 누나에게 손을 벌렸다. 아내도 묵묵히 후원해 줬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한계에 다다를 즈음, 부업으로 전단지를 찍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라 전단지의 힘이 막강할 때였다. 통닭이 맛있어 보이는 전단지를 만들었다. 색만 잘 쓰면 되니, 그에겐 일도 아니었다. 전단지 업계를 휩쓸었다. 프로젝트 한 건에 수천 만원을 벌었다. 번 돈은 인쇄 기술 개발에 몽땅 쏟아 부었다. 15년 간 10억원쯤 썼다. “3대 독자다. 어머니는 나를 무조건 믿으신다. 어릴 때부터 ‘뭘 해도 될 놈’이라고 하셨다. 어머니, 누나, 아내와 고흐에게 감사하다(웃음).”
유 대표의 고생담. “인쇄소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인쇄 한 번 하고 나면 기술자가 인쇄기 고무 롤러를 벤졸 묻힌 걸레로 닦는다. 그래야 다음 인쇄를 할 수 있다. 하도 괴롭히니 기술자들이 걸레 집어 던지고 도망갔다. 인쇄소에서도 다시는 오지 말라고 했다. 나를 모르는 인쇄소를 찾아 전국을 다녔다(웃음). 인쇄소 100곳쯤 다닌 것 같다. 사기꾼, 미친놈 취급도 숱하게 받았다.” 대체 인쇄가 뭐기에. “인쇄의 본질은 대중성이다. 누구나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인류가 인쇄를 발명한 이유다. 책과 신문은 그래서 태어난 매체다. 그림책도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누구나 유명한 미술관에 가거나 그림을 집에 걸어 두고 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활자도 사진도 아닌, 왜 그림 인쇄일까. 유 대표는 그림에 허기진 어린이였다. 강원 인제 깡시골에서 자랐다. 그의 집 반경 2㎞에 집 한 채 없었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다. 어려서 본 그림은 아버지가 뚝딱 그려 준 참새 그림, 아름다움이 아닌 정보로 존재하는 교과서 속 그림이 전부였다. 1995년쯤 모네의 원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어린이들이 그림을 있는 그대로 즐기게 하고 싶다. 세계 최고의 인쇄장이가 되겠다는 류의 꿈은 없다. 동화책 속 모든 그림이 진짜 그림 같은 세상을 상상해 보라. 고흐가 말했듯, 나의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유 대표가 개발한 기술이 대체 뭐기에 눈을 홀리는 걸까. “비법이라 공개할 수 없다. 특허를 내기도 어려워 조심스럽다. 간단히 말하면, 안료를 특수한 방식으로 쓰고 종이 단면에 미세한 층을 만든다. 그러면 눈이 그 층과 색을 입체로 착각한다. 인쇄 원판은 미술관의 원화와 노트북 모니터에 띄운 원화 이미지 파일을 눈으로 대조해 만든다. 원화와 파일이 똑같아 보일 때까지 보정을 거듭한다. 미술관 조명에 따라 원화가 어떻게 보이는지도 반영한다. 몇 개월씩 걸리는 작업이다.” 그야말로 산고 끝에 올 3월 출간된 ‘갤러리북 1호- 고흐 편’은 한 권에 2만 8,000원이다. 여느 미술관 도록보다 싸다. “비싼 인화지, 복잡한 공정이 필요 없어서 그렇다. A4용지 기준 80원짜리 종이를 쓴다. 0.2초면 그림 한 장을 찍는다. 누구나 사서 볼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그게 아니었으면 15년이나 걸리지도 않았을 거다. 미술책과는 비교도 하고 싶지 않다. 비교 대상은 오직 원화다.”
네 달간 팔린 갤러리북은 3,000여권. 엄청난 적자다. “한국 시장만 생각했다면 미친 짓이다(웃음). 세계로 내보낼 거다. 정부 지원을 받아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나간다. 자신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 얀 베르메르 편도 기획 중이다.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우유 따르는 여인’,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에서 쓴 파랑을 세계 최초로 인쇄로 구현하려 한다.” 정말로 궁금한 것, 왜 그렇게 혼신을 다하는지를 물었다. “잘 만든 책을 사람들은 귀신처럼 알아 본다. 종이에 담은 정성과 마음은 정직하게 전달된다. 책은 영원히 남는다. 최선을 다해서 만들지 않으면, 부끄러움도 영원히 남는다. 최선을 다할 게 아니면 손도 대지 않을 거다. 나의 이 미친 짓을 사람들이 언젠가는 알아 줄 거라 믿는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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