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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노동에 숨이 턱턱 막혀도… 그냥 일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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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궈진 철근에 델라’ 옷 겹겹이
체감온도 50도에도 점심 휴식뿐
그마저 그늘막 없이 공사장에 깔판
폭염땐 작업 중단ㆍ규칙적 휴식 등
정부 폭염대책 현장선 무용지물
“체감 온도는 50도를 넘는 것 같지만 그냥 참고 견디는 것 외에 별 수 있습니까.”
서울 수은주가 36.8도까지 찍으며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혀오던 24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의 한 건설현장에서 만난 건설 근로자 이모(49)씨는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낼 생각도 않은 채 무심히 답했다. 이씨를 비롯한 건설 근로자들은 행여 태양빛이나 달궈진 철근에 화상이라도 입을까 팔토시에 마스크, 장갑, 그리고 긴 바지까지 챙겨 입은 터라 몸의 열기가 빠져나갈 틈조차 없어 보였다.
폭염 경보(35도 이상)가 발령되면 서울시는 낮 12시부터 오후 2시, 고용노동부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긴급작업을 제외하곤 작업을 중지하라고 각각 권고하고 있다. 두 기관의 권고를 모두 따르자면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5시간을 쉬어야 한다는 얘기다. 고용부는 또 폭염주의보(33도 이상) 시에도 1시간 일하면 10~15분의 휴식시간을 두도록 하고 있다.
당연히 현장에서 이 권고가 지켜질 리 없다. 매일 같이 폭염 경보가 이어지는 요즘 근로자들이 그렇게 쉬다가는 정해진 공사기간을 맞추는 건 불가능하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이 시간까지 점심시간 한 시간을 빼곤 내내 일했다는 이씨는 “벌써 20년을 현장에서 일했지만 덥다고 쉰다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러다 보니 건설 근로자들의 온열질환 사망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지난 17일에는 전북 전주의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근로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고용부가 작업을 쉬라고 권하는 오후 2시쯤 일어난 사건으로, 해당 근로자는 전날 폭염으로 탈진한 근로자가 나오자 회사 측에 “오전에 일하고 오후엔 쉬자”고 제안했지만 거부당해 작업을 이어가던 중이었다고 한다. 이보다 하루 앞선 16일에는 세종시의 한 교회 앞 보도블록 교체 작업을 하던 근로자가 열사병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최근 4년 폭염으로 인한 산업재해자 35명 가운데 절반이 훌쩍 넘는 23명(65.7%)이 건설 근로자다.
정부는 올해부터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고쳐 근로자가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에서 작업하는 경우 휴식시간에 이용할 그늘진 장소를 제공하고(567조), 목욕시설과 세탁시설(570조), 소금과 깨끗한 음료수 등(571조)을 갖추도록 했다. 위반 시 사업주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현장의 조치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이다. 이날 서울 중구 한 건설현장에는 그늘을 가리기 위한 천막 한 동이 입구 근처에 설치돼 있긴 했지만, 수백 명이 넘는 근로자들을 수용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대다수는 천막 대신 철골 구조물 틈에 깔판을 깐 채 벌겋게 익은 몸을 겨우 눕히고 있었다. 윤모(40)씨는 “휴식장소는 고사하고 수도 시설도 마땅히 없어 안전모에 물을 받아 겨우 세수를 한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건설 근로자 2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시간 일하면 10~15분씩 휴식시간이 주어진다’는 응답은 전체의 8.5%(18명)에 그쳤고, 휴식시간에도 그늘지거나 햇볕이 차단된 곳에서 쉰다는 응답은 26%(56명)에 불과했다.
고용부는 최근 열사병이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 작업중지 등 강력조치를 예고했다. 그러나 현장 근로자들은 사망자가 나와야지만 뒤늦게 작업을 중지시키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고 반발한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이날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폭염 관련 규칙과 가이드라인만 제대로 이행해도 무더위로 인한 산업재해가 줄어들 것”이라며 “정부는 폭염 대책을 이행하지 않는 건설현장을 처벌하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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