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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은 피서 명당…강원도 얼음장 여름 계곡5

입력
2018.07.24 18:00
수정
2018.07.2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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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진부면 가리왕산 북측 자락 장전계곡 최상류의 이끼폭포에 초록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물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차갑다. 평창=최흥수기자
평창 진부면 가리왕산 북측 자락 장전계곡 최상류의 이끼폭포에 초록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물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차갑다. 평창=최흥수기자

‘기상 관측 이래’ 혹은 ‘사상 최악’이라는 수식이 올 여름 더위에는 과장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전국이 폭염 경보이니 어디 숨을 곳도 마땅찮다. 그래도 잘 찾아보면 같은 지역 안에서도 실제 기온은 천차만별, 초록 그늘에서 잠시나마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강원 평창ㆍ횡성ㆍ영월의 잘 알려지지 않은 계곡을 소개한다. 모두 최상류에 위치해 오염이 없는 청정 계곡이다.

 초록 이끼 흘러 푸른 물줄기, 평창 장전계곡 

정선읍내를 지날 때 차량 계기판의 외부 온도는 35도까지 올라가 있었다. 정선에서 평창 진부면으로 이어지는 59번 국도를 달리며 서서히 낮아지던 기온은 장전계곡 상류에 도착했을 때 27도까지 떨어졌다.

장전계곡 최상류 폭포까지는 차로 갈 수 없고, 피서객들은 폭포 아래 마을에서부터 계곡에 들어가 더위를 식힌다.
장전계곡 최상류 폭포까지는 차로 갈 수 없고, 피서객들은 폭포 아래 마을에서부터 계곡에 들어가 더위를 식힌다.

평창 진부면은 월정사 전나무 숲길과 상원사 등으로 널리 알려졌다. 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나와 오대산 자락으로 거슬러 오르는 방향이다. 반면 아래쪽 정선 방면으로 내려가면 오대천의 웅장한 물소리와 나란히 국도가 이어진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좁고 구불구불하던 구간을 직선화하고 넓혔다. 상류 수항계곡에서 하류 숙암계곡까지는 협곡 래프팅을 즐기는 곳으로 유명하다. 거친 물살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오대천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절경이고, 여름 내내 더없이 좋은 피서지다.

진부면 장전계곡은 가리왕산(1,561m) 북측에서 바로 이 오대천으로 흘러 드는 작은 계곡이다. 국도에서 계곡으로 들어가는 약 6km 도로도 맞은편 차량을 겨우 비켜갈 정도로 좁다. 다소 불편한 만큼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한적하게 쉬어가려는 피서객들이 찾는다.

한 커플이 계곡 바위에 큰 수건으로 그늘을 만들고 물수제비 장난을 하고 있다.
한 커플이 계곡 바위에 큰 수건으로 그늘을 만들고 물수제비 장난을 하고 있다.
푸른 색깔이 감도는 계곡물은 한낮 더위가 아니면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차갑다.
푸른 색깔이 감도는 계곡물은 한낮 더위가 아니면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차갑다.
계곡 주변 오미자 농장과 자작나무 숲이 어우러진 모습.
계곡 주변 오미자 농장과 자작나무 숲이 어우러진 모습.

도로가 막힌 곳에서 약 700m를 더 걸으면 초록 물 잔뜩 머금은 작은 이끼폭포를 만난다. 그늘이 짙은 주변 바위에 온통 초록 이끼가 뒤덮여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하다. 폭포의 규모는 작지만 해발 900m가 넘는 지점이어서 바람이 불지 않아도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피서객들은 폭포 아래 마을에서부터 계곡에 들어가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힌다. 험한 바위 사이로 물줄기가 떨어지는 곳마다 푸른 물웅덩이가 형성됐다. 물은 한없이 차가워 한낮 더위가 아니면 온몸을 풍덩 던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워낙 깊은 골짜기이고 여름 한 철에만 외지인이 몰리기 때문에 띄엄띄엄 있는 몇 채의 펜션과 식당을 제외하면 편의시설이 부족한 편이다. 통행에 지장이 없도록 길가에 차를 대고 계곡으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장전계곡 바로 위 막동계곡도 비슷한 분위기다.

 세상과 단절된 곳, 평창 용수골계곡 

아름다운 여울이라는 뜻의 미탄면은 평창에서도 외진 곳이다. 용수골계곡은 사실 찾아가기도 쉽지 않은, 미탄면 회동리(바로 인근의 정선읍 회동리와는 다른 곳이다) 주민들의 피서지다. 미탄면 소재지에서 청옥산(1,255m)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오르다 보면, 중턱 즈음에 ‘수리재’라는 표지석과 함께 도깨비 조형물이 나타난다. 바로 ‘청옥산깨비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수령 350년이 넘는 커다란 떡갈나무가 서 있는데 그 왼편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면 용수골계곡이다. 더 이상 집도 없는 곳인데 도로가 난 이유는 계곡 상류에 미탄면 주민들의 상수원이 있기 때문이다.

용수골계곡 입구 청옥산깨비마을 안내판.
용수골계곡 입구 청옥산깨비마을 안내판.
햇볕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서늘한 용수골계곡
햇볕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서늘한 용수골계곡
세상과 완벽히 단절된 듯한 느낌이 든다.
세상과 완벽히 단절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 넓지도 깊지도 않은 계곡엔 햇볕 한 점 들지 않을 정도로 그늘이 짙다. 시원한 물소리와 매미 소리, 이따금씩 산새 소리만 청량하게 울려 퍼진다. 바깥 세상에 무슨 일이 생겨도 전혀 알 수 없을 것 같은, 완벽히 고립된 공간이다. 외지인의 발길이 없는 만큼 이곳에도 편의시절은 전혀 없다. 그늘에 펼 돗자리나 얕은 계곡에 들어가서 편히 쉴 수 있는 간이 의자 정도 있으면 더욱 좋겠다.

 머리 속까지 한기가 찌릿~ 평창 땀띠공원 

계곡은 아니지만 계곡보다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곳이다. 땀띠공원은 평창 대화면 소재지의 마을 공원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대화장(場)이 바로 이곳이다.

평창 대화면 땀띠공원의 자작나무 조형물.
평창 대화면 땀띠공원의 자작나무 조형물.
땀띠물 연못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들. 물이 너무 차가워 오래 버티지 못하고 튜브 위로 오르락내리락한다.
땀띠물 연못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들. 물이 너무 차가워 오래 버티지 못하고 튜브 위로 오르락내리락한다.
땀띠물에 발만 담가도 머리까지 시원한 기운이 올라온다.
땀띠물에 발만 담가도 머리까지 시원한 기운이 올라온다.

땀띠공원에는 자작나무를 소재로 한 조형물이 더러 있고, 한 편에 곧 꽃을 피울 해바라기 밭이 조성된 것을 빼면 여느 공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 주변은 볕을 피할 곳이 없어 따갑기만 한데, 공원을 안내하는 군청 공무원은 조금만 걸어가면 딴 세상이라고 자랑한다. 공원 아래 끝자락에 있는 작은 연못이 바로 비밀의 장소다. 깊지 않은 연못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는데, 여타 수영장에서와 달리 아이들이 모두 튜브를 하나씩 끼고 있다. 이 더위에 웬만하면 첨벙 뛰어들어 물장난을 즐길 텐데,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고 바닥에 잠시 내려섰다가 다시 튜브 위로 올라앉는다. 물에 발을 담갔더니 차기가 얼음장 같다. 겨우 30초를 버티지 못하고 나오고 말았다. 발목에서 전해지는 한기에 머리까지 찌릿하다. 실제 온도는 18도 정도라는데 연못에 드라이아이스를 풀어놓은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주민들은 예전부터 이 물을 ‘땀띠물’이라 불러 왔다. 한여름 무더위에 생긴 땀띠도 이 물에 담그면 말끔히 가신다고 해 그렇게 불렀다는데, 전혀 과장이 아닌 듯하다. 다만 연못이 크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가기엔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다. 대신 연못에서 마을 앞을 흐르는 대화천으로 오솔길처럼 물길을 내 바위에 앉아 발을 담글 수 있게 정비했다. 탁족(濯足) 명당인 셈이다.

더위사냥축제 기간에만 개방하는 광천선굴.
더위사냥축제 기간에만 개방하는 광천선굴.
동굴 내부 조명에 이슬 입자의 움직임이 보인다.
동굴 내부 조명에 이슬 입자의 움직임이 보인다.

이곳 물이 이렇게 찬 이유는 마을 위편의 석회석 동굴 지하로 흘러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신선이 산다고 해서 지역에선 ‘광천선굴’이라 부른다. 동굴 내부는 사시사철 14도 정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겨울에는 주민들의 사랑방이었다. 현재는 학술조사를 위해 입구를 막아 놓았는데, 1년에 단 한 번 ‘평창더위사냥축제’(27일부터 다음달 5일) 기간에만 개방한다. 동굴 내부는 조명이 비치는 곳마다 이슬 입자가 떠다니는 모습이 선명해 공포와는 또 다른 서늘함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축제 기간 땀띠공원에서 동굴까지는 트랙터 마차를 운행한다.

 푸른 계곡에 ‘풍덩’ 횡성 병지방계곡 

병지방계곡은 횡성의 북측 갑천면 어답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이다. 어답산과 갑천, 병지방이라는 지명은 모두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 전설과 관련이 있다. ‘임금이 친히 밟아 본 산’이라는 뜻의 어답산(御踏山, 789m)은 신라 박혁거세가 태기왕을 뒤쫓다가 들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갑천은 박혁거세에 쫓긴 태기왕이 재기를 꾀하며 군사훈련을 하다가 갑옷을 씻은 곳, 병지방(兵之坊)은 방어를 위해 병사를 모은 곳이라고 전해진다. 승자와 패자의 이야기가 뒤섞인 지명인데, 아무래도 패자인 태기왕에 대한 연민에 더 무게가 실려 있는 듯하다.

피서객들이 병지방계곡 초록 물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피서객들이 병지방계곡 초록 물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계곡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계곡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계곡에 몸을 담그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계곡에 몸을 담그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깊은 골짜기의 크고 작은 바위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은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바닥까지 비치는 맑은 물과 숲 그늘에서 풍기는 청량한 공기가 달콤하게 느껴진다. 헤엄을 치고 다이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곳도 여러 곳이어서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곳이다.

계곡은 6km나 되지만 피서객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은 병지방오토캠핑장과 선바위자연캠핑장 등 몇 곳으로 한정돼 있다. 좁은 길가에 차를 세웠다가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여름 한 철 마을에서 따로 주차장(하루 1만원)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계곡 주변의 민박이나 펜션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세상의 모든 캠핑, 영월 법흥계곡 

영월 법흥계곡은 무릉도원면 사자산(1,180m)에서 법흥사를 거쳐 주천강으로 흐른다. 약 10km에 이르는 계곡 양편으로 무려 60개가 넘는 캠핑장과 펜션, 식당이 포진하고 있어 가히 캠핑의 천국이라 부를 만하다. 물살이 한 굽이 도는 모퉁이마다 조성된 캠핑장은 단순히 텐트를 치는 곳부터, 캠핑카를 숙소로 이용하는 곳, 몸만 오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글램핑까지 다양하다. 각 캠핑장 앞으로는 바로 차고 맑은 물이 흐르는 구조다. 캠핑장마다 그늘이 넉넉하고, 수심은 깊지도 얕지도 않게 적당한 깊이로 관리하고 있어 아이들도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대신 캠핑장이나 펜션을 이용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계곡에 들어갈 공간은 거의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법흥계곡은 캠핑장 천국이다. 피서객이 솔 그늘 짙은 한 캠핑장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다.
법흥계곡은 캠핑장 천국이다. 피서객이 솔 그늘 짙은 한 캠핑장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다.
계곡물은 깊이가 적당해 안심하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계곡물은 깊이가 적당해 안심하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법흥계곡이 위치한 무릉도원면은 이름처럼 경치가 빼어나다. 원래 수주면이었던 무릉도원면은 기존의 무릉리와 도원리에서 각각 두 글자를 따 2016년 개명했다. (영월에는 무릉도원면 말고도 지형의 특징을 딴 한반도면,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병연의 다른 이름을 딴 김삿갓면도 있다.) 법흥계곡 상류 법흥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창건한 고찰이자,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 중 하나다. 경내의 울창한 소나무 숲이 운치 있고, 사찰에서 바라보는 구봉대산(900m) 능선도 웅장하다.

법흥계곡이 주천강과 합류하는 지점에는 강원도 문화재인 요선정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지방의 원ㆍ곽ㆍ이씨 주민들이 숙종의 어제시(御製詩) 현판을 모시기 위해 경치 좋은 언덕에 세운 정자다. 그러나 관광객에게는 언덕 위 정자보다 바로 아래 주천강의 요선암이 더 볼거리다. 오랜 세월 자연이 빚은 돌개구멍과 떡 반죽처럼 부드럽게 깎인 화강암의 풍광은 사진작가들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지질과 지리에 관심이 있다면 근처에 있는 호야지리박물관도 들를 만하다. 대동여지도 실사본과 독도를 한국 영토로 표기한 국내 유일의 일본 군용지도를 보유하고 있으며, 높이 6.39m에 이르는 4개면 광개토대왕비 탁본도 볼 수 있다.

법흥계곡 하류 요선정 옆 바위에 새겨진 무릉리마애여래좌상.
법흥계곡 하류 요선정 옆 바위에 새겨진 무릉리마애여래좌상.
요선정 아래 요선암의 돌개구멍.
요선정 아래 요선암의 돌개구멍.
요선암 인근 호야지리박물관의 광개토대왕비 탁본.
요선암 인근 호야지리박물관의 광개토대왕비 탁본.

법흥계곡에 가려면 주천면을 꼭 거치게 된다. 주천은 면소재지치고 제법 큰 편이다. 캠핑장 이용객도 식당을 이용하거나 물품을 사기 위해 이곳을 들른다. 주천(酒泉)은 술이 샘솟는 고을이라는 뜻인데, 요즘은 ‘영월 다하누’ 브랜드로 더 유명하다. 쇠고기를 구입해 상차림 비용을 따로 내고 구워 먹는 다하누 식당만 10여 곳에 이른다.

평창ㆍ횡성ㆍ영월=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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