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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 계엄령 검토 세부계획 문건 살펴보니

입력
2018.07.24 04:40
수정
2018.07.24 08:3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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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67쪽짜리 계엄 계획 국회 제출

“촛불집회 계엄령 때 주한 미국 대사에 인정 받도록 협조 요청”

1980년 5ㆍ17 비상계엄 확대와 유사 충격

‘간첩통신 출현’ 빌미로 계엄 선포 시나리오도 마련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 별관에 설치된 기무사 특별수사단 사무실 출입문이 23일 굳게 닫혀 있다. 배우한 기자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 별관에 설치된 기무사 특별수사단 사무실 출입문이 23일 굳게 닫혀 있다. 배우한 기자

국군 기무사령부가 지난해 3월 작성한 ‘촛불집회 계엄령 검토 문건’에 딸린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 문건이 23일 공개됐다. 이 문건에는 미국 정부로부터 계엄 인정을 받도록 외교적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적시하는 등 위수령ㆍ계엄 단계별 대응 방안, 계엄 시행 방안 등 계엄 선포 시 취할 조치가 세세히 담겨 있었다.

국방부는 이날 기무사 작성 계엄령 검토 문건(8쪽짜리) 부속 문건인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제출하라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요구를 받아들여 문건을 국회에 제출했다. 해당 문건은 자체적으로 2급 기밀문서로 분류돼 있으나 이날 보안심사위원회를 거쳐 평문으로 분류, 공개가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공개된 문건에는 계엄 선포 시 조치 사항이 두루 담겼다. 우선 국방부 장관은 주한 미국대사를 초청해 미국 본국에 계엄 시행을 인정토록 협조하도록 했다. 1980년 5·17 비상계엄령 전국 확대조치를 취하면서 미국 정부로부터 이를 인정받으려 했던 사례와 유사한 대목이다.

또 계엄사령관은 주한 무관단을 소집해 계엄의 불가피성과 신속한 사회질서 확립 등 계엄 시행 지지를 당부하도록 했다. 외교부 장관도 주요 국가 주한사절단(기자ㆍ기업인 포함)을 초청해 국내 상황이 왜곡돼 보도되지 않도록 협조하면서 계엄 시행 지지를 요청토록 했다.

전국 비상계엄 선포 건의 관련 상황에 묘사된 탄핵소추안 결정 이후 사회혼란 증가 예상 시나리오도 있었다. 기무사는 문건에서 ‘혼란한 시기를 틈타 약탈ㆍ방화, 사재기 강력범죄 증가’, ‘언론에서 경찰의 시위대 강력 진압 편파ㆍ왜곡 보도로 국민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유언비어를 확산하여 민심이 흉흉’, ‘북한에서 우리 정부를 비방하는 대남방송이 증가하고, 지령 하달로 추정되는 간첩통신 출현’ 등으로 예측, 묘사했다. 이에 따라 전국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한다는 시나리오다.

계엄 선포 시 총기 및 폭발물 탈취 예방 조치도 구체적으로 수립했다. 전군 탄약·총기관리 강화 등을 철저히 하고, 민간 총포사와 화약류 제조업체, 사격장 등을 폐쇄 조치하며, 해외로부터 총기·폭발물 등 밀반입자를 엄정 처벌하는 내용 등으로 구체화했다. 계엄사령부 설치 장소로는 B-1 문서고 등 7개 장소를 검토하고 각각의 장ㆍ단점도 명시했다.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근거도 마련했다. 문건은 계엄 선포 후 정부 기능 및 치안 질서가 마비된 상황에서 대북 억제력 발휘가 절실하다며, 계엄사령관은 군사대비태세 유지 임무에서 자유로우며 현행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이 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현행작전 임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육참총장, 연합사 부사령관, 합동참모차장 등을 거론한 뒤, ‘지구 계엄사령관 통제 및 계엄임무 수행군 운용 가능, 군사대비태세와 구분해 임무 수행 가능’ 등의 이유로 육참총장이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3일 공개된 기무사 작성 계엄령 검토 '대비계획 세부자료' 문건 일부.
23일 공개된 기무사 작성 계엄령 검토 '대비계획 세부자료' 문건 일부.

국회 법사위 소속 위원들은 국방부가 제출한 세부 문건을 검토한 뒤 24일 전체회의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이석구 기무사령관을 대상으로 관련 사안을 집중 질의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국방부 내부에서는 해당 문건의 국회 제출 여부를 두고 첨예한 의견 교환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으로는 기밀문서로 등록되지 않았으나, 자체적으로 2급 기밀로 분류해둔 문건을 어떤 절차로, 어느 정도나 공개해야 할지에 대해의견이 엇갈린 것이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앞서 “관련 프로세스를 확인하고 있는데 애매한 부분이 있어 내부에서도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며 “(세부자료는) 2급 기밀문서로 (자체) 분류돼 있기는 하나, 정식 기밀문서로 등재되지는 않은 상태라 보안심사위원회를 거칠지, 거치지 않을지를 두고 내부에서 논란이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국방부 보안심사위는 군 최고 관리자들이 참석해 보안정책이나 군사비밀 공개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는 기구다. 군사보안업무훈령 제196조는 군사기밀을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을 시 보안심사위가 국방부 장관에게 비밀 공개 승인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이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민군 합동수사본부 출범 계획 등을 발표한 이후 브리핑실을 떠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이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민군 합동수사본부 출범 계획 등을 발표한 이후 브리핑실을 떠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국방부의 문건 공개는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문재인 대통령이 기무사 특별수사단 구성을 지시하며 관련 사안에 대한 강력한 수사를 촉구한 데다, 국민적 관심도 커지는 상황에서 공개하지 않을 명분을 찾는 게 어려워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 대체적 의견이었다. 군사안보 분야 한 전문가는 “문건이 정식 기밀문서로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회) 요청을 거부할 이유가 더욱 없어 보인다”고 봤다. 또 다른 전문가는 “외국과 관련한 군사 기밀일 경우 관계 악화 등을 고려해 문건 제출을 거부할 수 있지만, 계엄 관련 문건의 경우 순전히 내부 정치적인 사안이라 비공개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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